정욱 처음에 빨리 뛰면 안돼. 그럼 나중에 못 뛴단 말야
(뭔가 생각하다가) 초원아... 세렝...케티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 뭐지?
초원 (숨을 몰아쉬며) 치타. 시속 113킬로미터.
정욱 그래. 하지만 치타는 오래 못 뛰잖아... 너무 빨리 뛰니까.
오래 오래 뛸려면 너무 빨리 뛰면 안 되는 거야.
초원 너무 빨리 뛰면 안되는 거야~
정욱 그래. 그러니까 천천히.. 너무 빨리 뛰면 지쳐서 쓰러져. 이동 중에 지쳐
서 무리에서 떨어진 얼룩말은 어떻게 되지?
초원 낙오된 얼룩말들은 사자와 하이에나 밥이 된다~
정욱 그래. 그러니까 있는 힘껏 막 뛰면 안돼. 자,호흡 고르고, 다시 뛰어.
초원이는 5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이다. 초원이가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주변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대사 일부다.
어릴 적 엄마의 거칠고 묵직한 손을 잡고 갔던 영화관에서 처음 말아톤을 봤다. 그 영화를 본지도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문득 그 영화가 다시 마음 속에 떠올랐다. 초원이처럼 풀코스 마라톤을 목표로 두고 있기도 하고, 그 따뜻한 정취를 어린 시절의 나보다 더 잘 느낄 수 있겠다는 용기 덕분이었다. 다시 본 그 영화에서 손정옥 코치와 초원이가 나눈 위의 대화가 내 가슴에 폭 안겼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선물 마냥 포옥. 인생이라는 기나긴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포옥 안겨버리는 말.
"오래 오래 뛸려면 너무 빨리 뛰면 안되는 거야."
너는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함께 뒹굴거리며 밥을 먹고, 고민을 터놓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다 사회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거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참 당연하면서도 관심 어린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다. 대화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질문자와 연결이 되기도 전에 던져진 그 질문이 나에게는 이미 선택지들이 각인된 시험지로 다가올 떄가 있다. 그 사람을 향해 나를 열어두기에는, 그리고 그제서야 그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꺼내놓기에는, 질문자가 너무 바삐 자신의 길을 가봐야 하지 않나. 그런 그 사람을 앉혀놓고, 나를 말해줘도 되나. 그런 마음이 찾아 들 때면, 나는 그저 입가에 미소만 지을 뿐이다.
너는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그 질문자들에게는 차마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냥 내뱉기에는 너무 뜬금없고, 그들의 질문과 맞지 않는 듯한 이야기.
이십대, 지난 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안겨준 선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시기동안 나는 내 정체성을 찾아 헤매며, 나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무언가, 나를 편하게 만드는 존재들을 제 발길로 걷어내며 살았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어느 정류장이나 정착지에도 있지 않다. 아직 떠돌이다.
떠돌이로 살아왔던 나에게 건네진 선물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려 하는지, 어떤 속도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마음이다. 함께 걸어가던 사람들, 달리던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나서야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깨달음. 지금의 나 또한 과거의 나처럼 다시 깨지고, 형성되면서 또 다른 과거의 내가 되어 갈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여정 속에서도 내 안에 무게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흔들리고 넘어져도 다시 벌떡벌떡 일어나는 사람. 느릴지라도 끈질기게 걸어가며 결국 해내는 사람. 나만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치타가 되든, 얼룩말이 되든 나의 방향과 속도를 놓지 않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나에겐 땀에 젖은 선물이다.
나의 친구들은 이십대, 그들의 청춘 동안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꿈과 야망을 마음껏 주변과 세상에 외쳤다.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떤 존재로서 세상에 나가야 하는 건지, 나가야 함에 집중해서 나가는 게 맞는지, 사회와 가정에 책임을 질만한 격을 형성했는지, 나를 드러낼 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를 감싸고 돌던 이름표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당장의 답을 안겨주지 않는 미지의 길을 택해왔다. 그 택함의 주체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꿈틀대던 나 자신이었다. 서툴지만 내 마음이 담겼던, 그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에게 도착했다. 좌절되는 순간에도 매순간 용기를 다짐하며, 행동해 나갈 수 있게 된, 이제야 나는 청춘을 맞은 것이다. 이런 나를 느린 청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초원을 자유롭게 걷고 달리기 시작했다.
떠도는 자의 유효기간이 좋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주변을 사랑하면서, 그 과정에서 받는 상처마저 오롯이 안고 다시 달릴 수 있는 나의 청춘기. 느리게 맞이해서 갖게 된 그런. 지금의 내가 들어서 있는 이 시기는 유효기간을 지녔다. 또 다르게 찾아올 청춘에게 미련없이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머물. 그 청춘은 그렇게 왔다가 깨졌다가, 다시 왔다가를 반복할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너는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저에게 찾아온 그때만의 청춘을 안고 저만의 초원을 초원이처럼 아니 저대로 달려보려구요!
각자만의 속도, 각자만의 청춘
정욱 초원아 ! 나 누구야?
초원 손정욱 코치 선생님...!
정욱 마라톤 하니까 좋아 안 좋아?
초원 좋아요~ !
정욱 좋지? 오케이! 오늘 완주할 수 있어 없어?
초원 없어.
정욱 끝까지 뛸 수 있어 없어?
초원 있어.
정욱 그래. 끝까지 뛰려면 처음부터 빨리 뛰면 돼 안 돼?
초원 안돼.
(...)
(초원을 보며) 조금 더 천천히 ! ( 속도계를 10Km에 놓고 ) 지금 이 속도로
천천히 계속 뛰는 거야 ! 알겠어?
초원 네 !
정욱 그리고 있다가 뛰다보면 나중에 비가 올거야. 뭐가 온다구?
초원 비!
정욱 그래. 그럼 그때부터 죽도록 뛰어. 치타처럼 !
초원 치타처럼 !
정욱 파이팅 !
초원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