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해, 그래서 하루는 선물

행복이란 무엇인가

by 목하


드르륵드르륵. 겨울 아침, 고요한 연구실의 적막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재희야~ 연락이 없길래 뭐 하나 싶어서 전화했어."

"엄마, 나.. 너무 추워서 이틀 동안 얼어있었어 ㅎㅎ 덕분에 엄마가 먼저 전화를 주네. 앞으로 밀당 좀 해야겠어."

"ㅎㅎ 많이 춥제? 연구는 잘되나"

"음...아~니~~ 원래 인생이 잘 안 되다가 한번 잘되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면서 잘하고 있어 엄마 ㅎㅎ "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나의 인생론에 엄마와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와 통화가 끝나고 한 문장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다."

5년 전 이 말을 처음 들었다. 이십 대, 오랫동안 격투기를 배웠고, 오랜 배움의 시간만큼 도장의 관장님과 친한 사이가 되었다. 관장님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분이셨고,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제자였기에, 우리는 인생에 대한 얘기들을 자주 나눴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

인생의 고달픔과 미지스러움을 관장님은 이처럼 표현하셨다. 그 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베여들고 있다. 정말 인생은 함께였다가도 혼자가 되는 법이고,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법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관장님의 저 말씀 덕분에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됐다.


나는 인생의 바닥을 유년기 시절에 디뎠다. 모진 세상이 다가와 나의 살점을 도려내고, 마음마저 난도질해대는 상태를 어릴 적 느꼈다. 그 시절 덕분에 '현재'는 나에게 늘 선물처럼 다가온다. 일상에 익숙해지고 일에 치여 사는 시기에는, 그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허기진 상태로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지지 않은 상태. 그 상태에서 찬찬히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챙긴다. 그 과정을 거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복들을 새삼 깨닫는다. 인생에서 제일 바닥을 찍었던 시절엔, 무탈한 일상을 가지고 싶었고 꿈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무탈한 일상을 살아가고 하루하루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내게 잠시 방문한 고단함과 걱정조차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우리는 이미 많은 복을 가졌다. 하지만 정작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가지지 않은 것을 바라보기 보단 현재 가진 것들을 먼저 행(行)해보는 게 어떨까. 어쩌면 행복은 幸福 (다행 행, 복 복)이 아니라 行福 (다닐 행, 복 복)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가진 복을 소중히 다뤄야 다가오는 복들을 끌어안을 수 있고 비로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행복은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게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복이 많아 보인다고 해서 자신의 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남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며 사는 대신, 자신의 삶에서 이미 가진 복들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배가 고프면 맛있지 않은 음식이 없다. 행복도 음식과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하는 상태. 그 상태로 오롯이 시간을 보낸 후, 자신이 하고 있던 것,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톺아보고 챙겨본다. 감사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 홀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거라서, 어느 날 밤하늘에 보이는 별 하나가, 머나먼 수평선에서 한줄기 신호를 보내는 등대 하나가 그토록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 외로움 속 따뜻함을 아는 자라면, 제 때 찾아든 모든 복들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다.


"재희야, 엄마가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엇 엄마 그러면... 나 졸업시켜 줘 ㅎㅎㅎ"

"엄마가 교수님께 얘기하까~"


졸업은 언젠간 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늘은 이미 충분한 선물이 아닐까?

인생은 고해, 그래서 오늘 하루는 선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