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이라는 빛
낭창했던 생활소음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시간이 찾아든다. 그 시간은 매일 어김없이 다가오지만, 날마다 다른 자극성을 지닌 개별적 시간이다. 나는 몇 년간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오늘과 내일이 맞닿아 시작되고, 내일이 활개를 치기 전 끝나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을 심야시간이라 부른다.
달빛이 만들어낸 어스름 속을 걷는다는 건 참 묘하다. 혼자의 시간이 정당화되어 설레면서도 혼자 맞이해 스산하게 고독하다. 제동 없는 설렘과 스산한 고독사이에 놓인 감정선을 타고 심야를 홀로 걷는다. 마음이 맑은 날에는 책을 읽고,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운동장을 뛰고, 열정과 불안이 한 몸으로 찾아온 날에는 연구에 몰두한다.
홀로의 세상에서 호롱불처럼 소박하면서도 명징한 빛을 내는 식당을 마주한 적이 있다. 나 혼자만의 시간 속에 들어온 그것은 경계의 대상인가, 아니면 반가움의 대상인가. 가슴이 울리고 호기심이 이는 것을 보니 그 존재는 반가움에 가까웠다.
아무도 찾지 않을 깊은 시간에, 저 식당의 주인은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먹잇감의 활개도, 먹이 사냥의 맹렬함도 멎은 시간 속에서 외로이 허기진 배를 달랠 혹자를 위한 마음인가?
영업시간에 대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곧은 의지인가?
더 매력적인 맛을 찾아내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일까?
내 마음속에 덜컥 찾아든 그 사유의 대상을 자본주의의 틀에 가두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의 의문은 이름없는 그 주인장의 정서 주위만을 서성거렸다.
그 심야식당을 마주하는 것이 이토록 반가운 일인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말을 건네지 않는 시기는 매일 찾아드는 심야시간처럼 자연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런 시기에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런 고독을 즐겼다. 하지만,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그 시간 속에서 쓰러져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25년 새해 첫 달 동안 내 하루는 예측할 수 없이 흔들렸다. 특히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동안, 정갈하게 놓인 새해 목표들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나는 쓰러졌다.
삶에 대한 생각이 선명해짐에 따른 허무함 때문었을까.
선택한 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책임감과 욕심 때문이었을까.
내 몸이 지쳐버린 탓일까.
그렇게 웃자란 이물감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과도한 개입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들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와 있을 때 그 사람의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 지쳐 쓰러지고 스스로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 일 때 나 자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약해지는 자신을 느꼈던 1월이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나가던 자기애와 인내심은 어디에 두고 온 것인가.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괴로움보다는 권태에 가까웠다.
1월의 끝자락인 오늘은 1월 31일이다. 권태에 쌓여 보낸 1월을 돌아봐야 한다는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지난 한 달 동안의 내 행적들을 톺아보았다. 놀랍게도 나는 목표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내고 있었다. 목표했던 내용들 중에서 간신히 해낸 것, 목표를 넘어선 것,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놓아버린 것은 없었다. 주변의 상황들이 예기치 못한 변수로 다가왔고 나는 상황에 따라 조율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왜 그 심야식당이 참 반가웠을까.
주변 상황이 어떻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결의. 그 인내 뒤에 확연히 찾아드는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 자신이 그리는 삶을 걸어가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라는 것은 목표한 바를 향한 굳건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걸어가다가 쓰러진 자신, 털고 다시 일어나는 자신, 처음이라 버벅거리는 자신을 기다려줄 수 있는 유연함 또한 포함된다. 인내하는 삶은 자신의 욕구를 거스르는 금욕적이고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찾아나가는 유연하고 능동적 삶인 것이다.
또 다른 날 보니, 그 가게의 불이 꺼져있었다. 순간의 의문이 스친 후, 내 마음엔 그 식당을 운영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번졌다. 불이 꺼진 가게 앞에 잠시 서서, 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의 오늘 하루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말을 건네지 않는 시기는 매일 찾아드는 그 심야 시간처럼 평범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심야의 나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책을 읽고 달리고 주어진 일을 했다. 그리고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며 도왔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나는 굳건하면서도 유연하게 내 안의 빛을 품으며 내가 그리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신과의 약속,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 맞춰 문을 열고 닫는 심야식당처럼 나는 매일 밤 그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
그는 머리를 질끈 묶고 큰 백팩을 짊어진 채, 스페인 세비야의 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세비야의 맑은 하늘 아래 예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그는 지금처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갔겠지.
조용하지만 강했던 그의 뒷모습을 닮고 싶다.
-2023년 가을, 스페인 세비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