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는다는 건
밥을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좋다. 서늘한 밥알도 국물을 입으면 속까지 간이 배고 이내 촉촉하게 차오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밥알은 국물에 휘감기는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한다. 소박하지만 충만한 그 감각이 좋다.
지난 주말, 마음속에 여러 국물음식들이 떠올랐다. 날씨가 부쩍 추워진 탓이다. 추위를 워낙 많이 타는 편이기에, 몸 깊숙이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국물음식이 고팠다. 이번 주가 시작되기 전, 일찌감치 장을 보고 냉장고에 국거리 재료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갑작스러운 소비욕구에 따른 묘한 죄책감이 들었지만,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지만 요즘 들어 집밥이 고팠다. 그래서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집에 잠깐 들러 집밥을 먹고 다시 출근한다. 도시락으론 해소할 수 없는 갓 지은 음식의 따뜻함. 요즘은 그것이 하루에 가장 큰 행복인가 싶다.
된장국은 어떤 재료를 메인으로 넣는지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쑥 된장국, 냉이 된장국, 달래 된장국, 미더덕 된장국, 차돌박이 된장국 등등....... 어릴 때는 된장국보다 김치찌개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서는 주기적으로 선호도가 달라져 왔다. 된장이 가져다주는 눅진함과 편안함이 고플 때가 있다. 왜인지 점점 더 그런 날이 많아진다.
나는 오징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징어를 딱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지난주, 불현듯 마음속에 오징어 뭇국이 떠오른 것이 신선했다. 내 인생 최초로 오징어 뭇국이 먹고 싶은 순간이었다. 평소에는 찾지 않던 재료, 그리고 그 재료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음식 중 하나. 그렇게 우연히 오징어 뭇국이 떠오른 것이다. 왜였을까. 나박하게 썬 무의 성긴 식감과 오징어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풍미로운 오징어 뭇국이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종종 생각날 만큼 행복한 한 끼였다.
어린 시절, 나는 특히 소고기 콩나물국을 좋아했다. 야들야들한 새송이 버섯과 작은 뭉탱이로 들어간 소고기를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보일러가 없던 싸늘한 방 안에서 국그릇에 머리를 박고 먹으면, 이내 얼굴에 김이 서리곤 했다. 서늘해진 내 몸을 감싸는 그 폭신한 따뜻함이 좋았다. 얼굴에 닿는 순간 식어버리는 김. 다시 서늘해질 새라 얼른 국그릇에 머리를 박은 채 허겁지겁 먹은 기억이 난다. 상황과 대비되는 따뜻함은 그렇게 더욱 깊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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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음식이란 존재다.
"너는 내 식구야."
"밥은 잘 챙겨 먹었어?"
"일단 밥부터 먹고 해."
하루에 듣거나 하는 말들 중 가장 따뜻한 말들이 아닐까. 그만큼 우리에게 밥, 음식이라는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 밥을 향한 마음을 공유하고, 진정으로 음미하며 먹고 있는가?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나는 그 감정들을 흠뻑 느낀다. 하지만 조금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는 다르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정작 밥맛을 느낄 새가 없다. 밥을 먹으면서 다른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밥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 쉽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맛있다는 표현이 주저 없이 흘러나오고,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며 먹는다.
밥이라는 것은 우리의 매일을 이루는 토대가 되면서, 우리의 매일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기도 하다. 밥 먹고 사는 것.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국물에 만 밥. 어떤 국물에, 어떤 온도로 절여지는지에 따라 다른 맛과 식감을 가지는 밥. 국물에 만 밥처럼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는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가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들 때 예민해지는 것, 행복할 때 너그러워지고 유쾌해지는 것. 그것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이 어떻든 우리 모두가 밥을 잘 먹고 다니면 좋겠다. 휘몰아치는 세상의 잣대에 깎여가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국물에 밥알을 적시면서 또다시 그런 다짐을 한다. 현재의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해서, 자신을 내 버리지 말자. 국물에 만 밥을 먹으면서도 나의 감각을 잊지 말자.
세상에 좋은 일도 많겠지만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 들려온다. 슬픈 소식들이 들릴 때면 마음이 서늘해지고 아프다.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가 밥을 잘 먹고 다니면 좋겠다. 국물에 만 밥을 먹으면서 스스로를 잊지 않고, 잘 보듬어 주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매일매일 세상이 1%씩 따뜻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