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감이 잔뜩 묻은 물건들을 통해, 문득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과 물 한 모금으로 몸과 정신을 깨운다. 그리곤 책상 앞에 앉아 스케줄러와 일기장을 펼친다. 여느 때처럼 두 노트를 나란히 놓았는데, 그 위로 작은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어... 내가 꽃을 좋아하네?'
나는 언제부터 꽃을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늘하늘한 꽃무늬 쉬폰 원피스를 입고 다닐 때, 나는 단색 셔츠 원피스를 즐겨 입었고, 꽃이 총총 박힌 핸드폰 케이스 대신 묵직한 가죽 케이스를 고집했다.
조금 더 거슬러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들은 캐릭터와 알록달록한 색의 문구들을 골랐지만, 나는 마트에서 묶음으로 파는 실용적인 샤프와 노트를 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소품샵에서 아기자기한 물건을 집어 들었다가 가격에 놀라 아련히 내려놓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 종일 손때가 묻는 노트며 물통, 케이스 같은 것들은 마음이 이뻐지는 빛깔과 무늬들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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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맞은 요즘은, 꽃잎들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꽃놀이를 갈망했던 것도, 일부러 찾아 나선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내 볼을 스치며 흩날리고, 내가 걷는 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꽃길을 이렇게 만들어주시다니요.
오늘은 아는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원에 갔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잠시 여유가 생겼다. 근처 공원의 한적한 놀이터에서, 초승달처럼 늘어선 공원의자 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마침 그 의자는 벚나무 아래에 있었고, 나무는 봄의 끝자락을 축하하듯 바람에 이끌려 꽃잎을 흐드러지게 흩날렸다. 내 발치에 꽃밭이 차려졌다. 이쯤되자 '꽃이 내가 고픈가?' 싶은 행복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그 기분에 젖어 일기장을 꺼내 글을 쓰던 중, 또 한 번의 벚꽃비에 고개를 들었다. 이끌린 시선엔 옆 벤치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털 옷을 입고, 개구리색 인형이 달린 백팩을 멘 채, 활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계신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셨다. 벚꽃비와 솜털 옷을 입은 할머니. 그 찰나의 우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꽃비가 멎고, 할머니는 벚꽃잎처럼 살포시, 천천히, 한 걸음씩 제 길을 걸어가셨다. 할머니는, 벚꽃이셨다.
"엄마도 젊었을 땐 꽃이나 나무에 별 관심이 없었지. 근데 나이가 드니까 그 시간의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매화, 산수유, 진달래, 벚꽃, 철쭉... 이렇게 겹쳐 흐르듯 피는 게 보여."
지난주 꽃놀이를 갔을 때 꽃과 나무들에 편견없이 막 이름을 붙여대는 딸을 보다가, 엄마가 무심히 꺼낸 말이었다. 정말 엄마는 길가의 화단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산에 핀 들꽃 앞에서도 한 무릎 한 무릎 굽히며 눈길을 고정한다. 고향집에는 엄마가 정성껏 키우는 꽃들과 식물들이 가득하다.
꽃무늬가 담긴 물건들을 좋아하게 된 나. 나이가 들며 꽃과 나무를 좋아하게 된 엄마. 그리고 벚꽃비를 맞으며 떨어진 꽃잎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길을 나선, 오늘 놀이터의 할머니. 꽃같은 인생들이 제각기의 방식으로 겹쳐 흐르듯 피는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면, 내 시선에도 점점 더 사랑스러운 것들이 담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담긴 것들이 쌓여, 결국엔 ‘벚꽃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오늘 그 벤치에서 마주친 할머니를 떠올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벚꽃잎 같은 걸음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