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명예의 삶 VS 지혜와 미덕의 삶
내 남자친구는 MBTI로 보면 ST이고, 나는 NF다. 더 정확히 말하면 T와 F 비율은 둘 다 반반쯤 된다. 하지만 그는 극단적으로 S 성향에 가깝다.
MBTI가 과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우리는 생각하는 방향이 꽤 다르다.
그렇다고 감정이 상하거나 싸운 적은 없다. 오히려 서로의 사고방식을 신선하게 느끼며 흥미로워한다.
어느 날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남자친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금 자기가 걸어갈 수 있는 삶의 길이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부와 명예로 풍족해지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와 미덕으로 존경받는 삶이야. 자기는 어떤 길을 선택할 거야?”
“뭐든 좋을 것 같은데?”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지혜와 미덕의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있지…’
그 순간, 우리는 정말 다른 성향의 사람이구나 싶었다.
최근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는 초반이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여러 윗사람들과 함께 조율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각자 입장이 분명했고 그 입장들이 서로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디까지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다 보면 내가 너무 양보하는 것 같았고, 내 입장을 강조하려 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나에게 ‘많은 입장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 답을 찾고 싶어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ST인 남자친구는
진지하게 책을 읽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또 뭐가 그렇게 복잡해~”
웃음과 귀여움이 섞인 표정으로 내 손을 가볍게 잡았다. 나는 책을 읽게 된 이유를 조금 길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남자친구는 늘 그렇듯 담백하게 말했다.
“일단 자기 입장을 먼저 말하면 되잖아. 그러면 상대도 자기 입장을 얘기할 거고, 그 다음에 서로 조율하면 되는 거지.”
“만약 조율이 안 되는 사람이면?”
“자기는 그런 사람 만나본 적 있어?”
“….”
“웬만한 사람은 대화로 다 풀려.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돌아서면 되는 거고.”
“그렇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며칠 동안 고민하며 정리했던 생각들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남자친구와 있으면 삶을 깊게 파고들던 마음이 금세 가벼워진다. 내 고민을 가볍게 여긴다는 느낌보다
두통약을 먹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개운함에 가깝다.
‘그러게…나는 또 혼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몇 달 전 나눴던 그 질문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부와 명예의 삶과 지혜와 미덕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뭐든 좋을 것 같은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 말은 어쩌면 삶의 방향보다 함께 걷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가치관은 나와 반대라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나는 삶을 의미와 해석으로 이해하려 하고, 그는 삶을 현재와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단순하지만 정직하다. 남자친구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보다 서로에게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여전히 신선함을 느낀다. 나는 생각을 통해 삶을 넓히고, 그는 현실을 통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최근『도덕감정론』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을 읽고 난 뒤 또다시 그에게 내가 느낀 것들을
신나게 풀어놓고 싶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대답을 할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