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와 낯선 공간
첫 출근을 하고 한 주가 지났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주말 공주 밤축제에서 먹었던 밤파이의 달콤함이다. 밤으로 만든 파이의 달짝지근한 맛이 아직 혀끝에 맴돈다. 그 달콤함이 만들어지기까지, 밤은 오랜 시간을 익고 또 한 번 불 위를 지나야 한다.
사람을 알아가는 일도 어쩌면 밤파이를 만드는 과정과 닮아 있다.
첫 출근 날 새벽, 눈이 소리 없이 내렸다.
아침에 창문을 열어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눈길 운전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첫 출근 날인데 눈이라니.’
잠시 걱정이 앞섰지만, 이내 하얀 풍경을 바라보며 괜히 시작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뽀송한 눈처럼 마음도 조금 밝아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피스에서 자리를 배정받았다. 기대와는 달리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낯을 가리시는 걸까. 바쁘신 걸까. 아니면 낯선 사람을 조심스러워하시는 걸까.’
나 역시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라 그 공기 속에서 조금 작아졌다.
하지만 올해 마음속에 새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매일 두려운 걸 하나씩 하자.”
이번 주의 두려움은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었다.
어색한 마음을 안고 먼저 말을 걸고, 연락처를 물었다. 어떤 순간에는 아직 내가 그들의 무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 같은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 그럼에도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갔다.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도 나를 경계해서라기보다 그저 낯설어서 조심스러웠다는 것을.
나는 하루라도 빨리 팀원으로 녹아들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기존 구성원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천천히 익는 과정이니까.
주말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공주에서 열린 밤축제에 갔다. 밤을 좋아하는 나에게 축제 음식들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밤파이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서 조용히 녹아내렸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새로운 직장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밤처럼 익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알밤은 처음엔 단단하지만 천천히 익으며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밤은 가시 껍질, 갈색 껍질, 떫은 속껍질,
그리고 달콤한 속살까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짧은 시간 안에 마음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조급하게 다가가기보다 시간과 정성을 차곡차곡 쌓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천천히
서로의 껍질을 벗겨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일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근 5년만에 새로운 집단에 들어오며 오랜만에 떠올린 사실이 있다. 누구나 낯선 사람 앞에서는 경계와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진다는 것. 돌이켜보면 예전 공동체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도, 또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도 조심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다. 이 시간을 잘 지나가는 일이 앞으로의 사회생활과 새로운 도전들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공기 속에서도 나는 작아지지 않으려 애썼다. 먼저 말을 걸었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다가오는 주에는 조금 더 편안하고 차분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려 한다.
밤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달콤해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