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교정에 대하여
작년 10월의 어느 날, 지금의 직장에 처음 방문했다. 입사하기 전 함께 일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 직장의 출입문 앞에 들어서니, 줄지어선 가로수길의 은행나무들이 금빛살을 내뿜으며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살은 너무도 아련해서 처음 마주한 내 마음마저도 따스하게 물들였다.
지금은 매일 출근을 하며 그 가로수길을 지나쳐 온다. 은행나무 대신 겨울나무들이 줄지어 섰지만, 변함지 않는 단정함으로 나를 편하게 한다.
참 예스러운 학교의 교정과 닮았다.
나는 교정을 좋아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시 방문하거나 지나칠 때가 있었다. 교정을 마주하면 시큰한 정겨움이 느껴져 몸과 마음이 저릿해져 오곤 했다. 괜히 뭉클해지는, 그런 곳이 학교의 교정이다.
급하지도, 괄괄 거리지도 않는 산들바람 같다. 빛살처럼 슬며시 살결을 감싸오는 아늑한 꽃 향 같다. 많은 것이 변해버린,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변해버린 시간의 무참함 속에서 교정은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교정에 대한 나의 감동은 아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뭉클함이었으리라.
교정에 대한 나의 첫사랑은 막내삼촌으로부터 시작됐다. 스무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죽기 전 삼촌이 남긴 한 편의 시는 어린 시절의 나와 막내삼촌을 묘하게 이어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의 방 한편에는 막내삼촌의 시가 액자 속에 담긴 채 걸려 있었다. 수묵으로 옅게 칠해진 녹색 풀밭과 그 위에 놓인 묵직한 바위 하나, 풀밭과 바위를 배경 삼아 바람처럼 휘갈겨 쓴 한 편의 시.
너무 오래되어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제목이 '바위에 앉아'였다. 서늘한 방 안에서 그 시를 볼 때면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저려오며 울렁거리듯 감동이 전해져 왔다.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다 보면 글씨들에 물망울이 졌고, 시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다시 글씨들이 맑아졌다. 그 시를 읽으면, 어느새 바위 옆에 학사모를 쓰고 학위복을 입은 얼굴 없는 삼촌이 미소 짓고 있었다. 왠지 모를 교정의 정취와 아늑한 묵향이 묻어있었다. 이 순간이 아마 교정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으리라.
'이 시에는 삼촌의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 걸까?'
내일은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10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온 학교의 졸업식을 간다. 그 어느 모교보다도 오랜 시간 정을 붙였던 교정이다. 이제는 내 마지막 교정이 될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추억을 남기게 된다.
문득 나의 첫 교정이었던 막내 삼촌의 '바위에 앉아'가 생각난다. 마음 둘 곳 없던 유년시절,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바위처럼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얼굴도 모르는 삼촌으로부터 마음의 평안함을 찾았다.
교정의 분위기를 가진 나의 직장은 아마 막내삼촌이 주는 졸업식 선물은 아닐까? 천천히 성장해 가는 나를 위해 지난 시절 내가 좋아하던 교정의 닮음을 주신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