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할 그릇
첫 출근을 한 날,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고 처음으로 출근한 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난무해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여느 날에는 내리지 않던 눈이 유독 이 두 날에 맞춰 내렸다. 마치 나를 위한 축복같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는 낭만과 불편이 공존한다. 바라만 볼 때는 포실포실한 육감과 뽀얀 속살에 그만 넋을 잃는다. 하지만 내달리는 차 안에서는 도로에 깔린 블랙아이스가 큰 걱정거리다. 혹시 바퀴가 헛돌지는 않을까? 검은 물이 차에 튀지는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주변의 모든 차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다.
눈은 어쩔 땐 사랑스럽고, 어쩔 땐 성가시다. 성가신 마음이 들면 괜한 죄책감이 들어 그 마음을 밀어내려 한다. 눈이 가져다 주는 순수한 낭만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눈을 사랑해. 아니 사랑해야 해...'
사랑하는 존재와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는 어떤 연유로 갈라져버린 걸까?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 건 행복한 일이고,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가 있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일이다.
사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양극의 감정을 안겨주는 존재들이 떠오른다.
지난 월요일은 박사학위를 받는 졸업식이었다. 내 졸업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남자친구와 가족들이 함께 모였다. 그날은 남자친구와 가족들이 처음 대면한 날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훨씬 친근하게 남자친구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엄마를 보니 마음 한켠이 놓였다.
하지만, 졸업식이 끝난 뒤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는 태훈이(남자친구 가명)한테 궁금한 거 없어?"
내 물음에 엄마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내던진 한마디는 태훈이의 내적인 모습이 아닌, 외적인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태훈이는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인 모습이 더 빛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그의 외적인 부분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는 태훈이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멋짐을 사랑했다. 그런 나의 존중이 엄마의 한마디와 함께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야속한 마음에 엄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무 속상했다. 그날은 엄마를 향한 감정이 자라났다. 육친이라는 이유가 그 감정을 막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울컥울컥 감정이 솟아 올랐다.
그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남자친구였다.
그날, 나는 남자친구를 엄마보다 더 사랑했다.
그날, 엄마는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 일순의 감정들이 가라앉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이 자랐다.
나는 엄마를 남자친구보다 덜 사랑하는 걸까? 그래서 그날, 그토록 엄마가 미웠을까?
만약 그날, 엄마와 남자친구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나는 남자친구가 미웠을 것이다. 그날. 나는 남자친구보다 엄마를 더 사랑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엄마를 미워한 게 아니라, 엄마의 탈을 쓴 그 사람을 싫어했던 것이다. 자신의 솔직함을 중하게 여긴 나머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를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그런 부류의 사람이 엄마와 겹쳐 보였고, 그 점이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장면이 슬펐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 속상한 감정을 토로했고, 엄마는 미안하다며 침묵했다. 지금은 엄마에게 분노보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엄마는, 어쩔수없이 내가 사랑하는 존재였다.
눈은 낭만과 불편을 동시에 안겨준다.
사람도 그렇다.
나 또한 그렇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랑해야만 하는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존재를 기꺼이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했다.
온전히 내 마음의 그릇에 관한 질문이었다.
눈발이 펄펄 날리던 날, 나는 하얀색 후리스를 뒤집어 쓰고 가로수 길을 걸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후리스 모자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이내 축축한 물이 되어 나를 불편하게 할 눈들을 매정하게 털어냈다. 하얗고 낭만적인 세상을 만들어 준 눈이 좋았지만, 내 살갗에 닿는 순간 그것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이제는 축축하게 사그라드는 눈마저 사랑해 보기로 했다. 눈이 주는 아름다움을 지키려면 눈의 사그라짐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