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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혁 Feb 17. 2016

남들과 다르게 달려온 시간
여자친구 '시간을 달려서'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거친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줄게

 2015년 1월, 이들은 '이름이 뭐 이래'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시작했다.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팀 이름 한 번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사라지는 동안 친근하지만,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 소녀들이 있었다. 소원, 예린, 유주, 은하, 신비, 엄지,  첫 사랑의 이름과 닮아 있는 이 여섯 소녀들을 한 데 묶어 과감히 붙인 팀명이 바로 '여자친구'이다. 비웃음도 있었고 응원도 있었다. 입에 잘 달라붙지 않던 '걸그룹' 여자친구는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기 위해 굉장히 먼 길을 가야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덧 데뷔 1년이 지난 여자친구는 수많은 음원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음원 강자들도 긴장시킨 여섯 소녀는 사람들 입에 여자친구라는 이름을 성공적으로 적응시킨 것이다.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을 지나 '시간을 달려서'로 돌아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팀 이름에 대한 달갑지 않은 시선도 있었고 데뷔곡 '유리구슬'의 표절 논란도 있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닮았다는 냉담한 지적에 '표절친구'와 같은 멤버들 여럿 울릴 안타까운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작게는 활동하던 몇몇 멤버들에 대한 무분별한 태도, 외모 비판이 따라다니 일도 있었다. 지금 보면 1년 만에 단 3곡 만으로 1위 가수가 된 여자친구지만 시작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생과 사를 빠르게  진단받는 아이돌 세계에서, 소형 기획사에 내세울 것 없던 이들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하지만 보기 힘든, 이들의 전략은 노력이었다.



 여자친구는 소형 기획사가 굉장히 훌륭한 마케팅으로 만들어낸 그룹이라 말할 수 있다.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하는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들 사이에서 원탑 멤버 하나 없이 세 번째 음원을 1위로 만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급변하는 걸그룹의 시류 속에서 갑자기 청순 컨셉 그룹들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에이핑크의 독자적인 영역이었던 순수 청순이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 4,5개월을 지나면서 신인 걸그룹의 대표 색이 된 것이다. 한산하던 블루오션이 순식간에 전쟁터가 돼버리면서 너도 나도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해 줄 필요가 생겼다.  이때 여자친구는 조용히 데뷔하던 다른 그룹들과 다르게 표절 논란이라는 나름의 노이즈를 시전 했다. 물론 조금 찝찝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네버랜드를 찾기 위해선 대중이란 길잡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네버랜드가 좀 그렇다.


 이들이 처음 대중들에게 각인된 건 앞서 언급한 '다만세'의 표절 논란 때였다. 청순 컨셉에 비슷한 멜로디처럼 느껴지는 도입부 때문에 한 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표절은 아니었고 이는 어느 정도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실 표절이란 게 법적으로도 굉장히 애매해서 멜로디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잘 공략하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마케팅이 나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리구슬은 표절이 아니었지만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만세'를 염두에 둔 컨셉인 건 사실이다. 멀찍이 지켜보는 대중들도 아는 사실을 아이돌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는 제작사가 모를 리 없다. 제작사가 원했던 그림은 여자친구의 컨셉이 소녀시대의 '그 시절'과 닮음으로 인해 얻는 어떠한 익숙함이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표절 논란을 보자면 '이 노래는 당시 인기 있던 다시 만난 세계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데뷔곡임에도  들을만하다'처럼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등장했던 러블리즈가 비슷한 여고생 컨셉으로 큰 재미를 못 본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자친구는 '유리구슬'을 중하위권이지만 차트 위에 안착시켰다. 그렇게 노이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호감 걸그룹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는 효과적인 미디어 노출이라 볼 수 있다. 노력하는 가수들은 많고 노력의 결실을 이루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자친구를 칭찬해주고 싶은 건 그들의 노력을 어떻게든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다는 데에 있다. 정말로, 지금은 조금 미안할 정도지만, 어울리지 않게 이들은 데뷔 후 '칼군무'로 슬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파워' 청순, 말로만 들으면 '뭐지' 싶지만 눈으로 보면 납득이 가는 나름 포인트가 있는 기획이었다. 다른 청순파 그룹과는 다른 여자친구의 칼군무 마케팅은 멋으로 포장되는 보이그룹의 경우와는 다르게 '노력파'의 인상을 강하게 줬다. 여섯 명의 뛰는 높이까지 같다는데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렇게 그들의 공연 영상은 미디어를 타고 흘렀고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포인트는 '누가 봐도' 잘 했다는 점이 되겠다.


 그렇게 나름의 상승세를 보이던 여자친구는 메인 보컬 유주의 예능 출연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물론 그전에 예린이 4차원 이미지로 나름 인지도를 닦아놓고 있었지만 유주의 복면 가왕과 7꽈당이 불러온 그룹  상승효과는  엄청났다. '복면가왕'이나 '불후의 명곡'과 같은 프로그램은 요즘 실력파 아이돌들에게는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실력만 있다면  방송뿐만 아니라 각종 SNS를 통해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오늘부터 우리는'의 출격을 바로 앞둔 시점에 방송된 '복면가왕'은 어리지만 실력 있는 소녀에게 귀를 기울이는 큰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 유주의 꽈당 영상은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플 정도로 많은 이들의 '부모 마음'을 자아내며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렇게 여자친구 나름의 스토리가 하나 생기게 된 것이다. 이들은 출연하는 방송마다 빼놓지 않고 팀의 칼군무와 넘어지는 유주의 노력을 언급했다. 그렇게 정직한 마케팅으로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랐다.



 그렇다면 세 번째 곡을 앞두고 이들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이번 '시간을 달려서'와 함께 화제가 된 건 여자친구의 2배속 안무 영상이었다. '주간 아이돌'에서 선보인 2배속 칼군무는 다시금 그들의 노력파 이미지에 적중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로 놀랍도록 잘한다. 아이돌 본연의 모습을 알리기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주간 아이돌'에서 이들은 놓치지 않고 흘린 땀의 결과를 대중들에게 알린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2배속 군무 영상은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 대중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활동을 재개할 때마다 연습으로 일궈낸 노력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여타 다른 문제들로 이슈거리를 만들어내는 소위 '연예인'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여태껏 노력에 대해 인정받는 걸그룹이 많지 않음을 감안할 때 이들의 노력파 이미지는 롱런으로 이어지는 가장 주요한 키워드가 될 지도 모르겠다.


 현재 여자친구는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을 입증받은 그룹 중 하나이다. 물론 가요계 지각 변동은 예측할 수가 없기에 끝까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는 멤버 개인보다 팀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얻어낸 값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참 끝내기 전에 자칫하면 놓칠 뻔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앞에서 이들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죽 늘어놓았지만 사실 이번 세 번째 타이틀곡 '시간을 달려서', 노래가 좋다. '오늘부터 우리는'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파워를 살짝 덜고 아련한 소녀 감성을 더한 이번 노래는 여자친구의 노래를 잘 모르던 이들에게 나름의 취향저격이 될 지도 모르겠다. 부디 앞으로도 남들과 다른 시간을 달리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끝내려니 적잖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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