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해라 공중파여!! 라스 밑으로 전부 엎드려!!!
요즘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과감히 '아는 형님'이라고 답할 수 있다. 주로 잡식에 가까운 나의 시청 경향 덕분에 베스트를 꼽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지만 요즘 만큼은 확실하게 '아는 형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잘 생각해보니 요즘 즐겨 보는 방송들은 대체로 병맛이라 불리는 자유분방한 예능프로그램들. '아는 형님'부터 '음악의 신2'까지 보이지 않던 신생 포맷의 예능들이 다시금 티비 보는 맛을 살려놓고 있다. 오랫동안 예능계를 지배하던 리얼 예능이 점차 식상해져가는 시점에서 병맛이라는 신생 코드가 스튜디오 예능에 자리 잡는 양상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다. 자세히 보면 이러한 시도들은 공중파보다 케이블 방송에서 훨씬 더 많다. 더 이상 공중파가 갑이 아닌 상황에서 케이블의 야심 가득한 모험은 점차 대중들에게 신선한 콘텐츠로 인식되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이다.
아직까지도 방송가는 시청률의 지배 하에 있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시청률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중파와 케이블 사이에는 시청률의 장벽으로 인한 체급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공중파가 10%를 호가했다면 케이블은 고작해야 2% 내외의 성적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판도가 많이 달라졌다. OCN과 tvN이 자체 제작 드라마로 케이블의 리미트를 점차 무너뜨리더니 요즘은 공중파보다 유연한 제작 시스템으로 드라마나 예능 할 것 없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tvN 대박 드라마만 해도 공중파를 압살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케이블이 자체적인 시청률 한계를 많이 극복해내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공중파와 동등하게 겨룰만한 여건이 마련 된 것이다. 대중들은 재미만 있다면 11번 위로도 본방 사수 대우를 해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케이블 예능을 훨씬 다채롭고 모험적인 콘텐츠가 되도록 만들었다. 대중들이 케이블 채널을 찾을 가능성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마이너 방송국들은 공중파와 견줄만한 재밌는 콘텐츠가 있다면 수많은 시청자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지했다. 그렇게 시작된 케이블 예능의 혁명은 나영석 피디를 영입한 tvN에 의해서 야심찬 첫 발을 내딛는다. 이미 1박2일로 검증된 나피디인 만큼 이들이 거는 기대는 남달랐고 그에 부응하듯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는 보기 좋게 대박이 났다. 공중파보다 훨씬 트렌디한 '슬로우' 예능이자 대중들이 리얼 예능에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나영석의 기획이었기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슈스케가 있긴 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폭발적인 인기는 조금 다른 경향처럼 느껴지기에 배제하고 언급을 하겠다.)
나영석이 케이블 예능에게 준 깨달음은 프로그램 개별의 시청률보다 훨씬 지대했다. 그의 예능에는 철저한 기획 하에 운영되는 자유로움의 미학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발생한 화제성을 인기로 직결시키는 콘텐츠 전략이 있었다. 그는 SNS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경향을 간파해내면서 '신서유기'를 통해 흔히 '짤'이라 불리는 신세대의 콘텐츠 소비 경향을 제대로 공략했다. 네 캐릭터의 케미는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많았고 이들이 주로 보는 SNS나 tv캐스트의 몇 분짜리 짤방으로 유행하면서 소비층에 걸맞는 콘텐츠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나영석 피디는 그가 잘 하는 것을 잘할 뿐 아니라 잘 하는 것을 잘 보여줄 방법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예능은 연기자들을 신뢰하고 연기자들이 제작자를 신뢰하도록 만든다. 연기자들은 피디의 신뢰 아래 마음껏 기량을 뽐내고 피디는 이를 대중들에게 맛깔나게 전달한다. 이 이상적인 결합은 현재 케이블 예능을 지배하는 중심 철학으로 요즘 핫한 케이블 예능의 중심이 되었다.
앞서 가장 재밌는 프로그램이라 언급했던 '아는 형님'을 살펴보자. 아형은 방송 초기부터 포맷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온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방황하던 '해피투게더'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포맷 변화로 살 길을 찾아나가던 현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아는 형님은 애초에 자유분방과 막장을 모토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그 자유로움을 개성으로 버무려낼 틀을 찾아가고 있었다. 형님들이 궁금증을 해결해준다는 초창기 컨셉은 상당히 식상했지만 상황극과 몸개그로 어우러진 구성은 의외로 하이브리드에 가까운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큼 온전한 시너지와 재미로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중구난방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초기 컨셉은 형님들의 활약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렇게 정신없던 '정신승리대전'을 지나 요즘 어디서나 핫한 '형님 학교'와 '콩트 인사이드'가 탄생한 것이다. 저마다 다른 기량을 뽐내는 형님들을 버무릴 포맷을 찾던 여운혁 피디는 결국 '무대본 콩트'로 답을 냈다.
방향을 잡아가던 과도기를 지나 오면서 아는 형님이 내린 핵심은 '대본 없는 콩트'이다. 대본의 지배를 받는 일반적인 콩트가 아닌 오로지 연기자들의 재치에 웃음을 맡긴 올(사실은 올모스트) 애드립 방송인 것이다. 한동안 주가를 잃었던 스튜디오 예능에 콩트를 수혈한 다소 옛날 방식처럼 보이지만 아형에게는 비장의 무기인 병맛이 있었다. 살짝 회귀한 스튜디오 예능에 더해진 요즘 코드, 병맛(여기에는 막장에 코미디 심지어 아재 개그까지 들어간다.)은 신세대들을 공략한 굉장히 성공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지만 대세가 오래 이어져온 만큼 이제는 확실히 식상한 감이 있다. 리얼 예능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 오히려 스튜디오 예능은 역으로 생각해봤을 때 더욱 신선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콩트로 답을 내기까지 여운혁 피디는 앞선 시행착오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아는 형님의 주축이 되는 멤버들을 살폈다. 복귀 후 1박 2일 시절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이수근과 그와 호흡이 가장 잘 맞는 강호동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중심이 강호동인 만큼 그와의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오랫 동안 함께 해온 이수근과의 콩트 조합은 아형의 웃음 코드로 주요했다. 거기에 오늘만 사는 김희철과 또라이 민경훈의 공격적인 드립은 현재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아형만의 매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의 포지션을 확인한 그는 각자의 캐릭터가 온전히 살면서도 날 것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포맷으로 과감히 '콩트'를 선택했다. 같은 반 학생이라는 형님 학교의 콩트 설정은 김희철과 민경훈이 훨씬 선배인 강호동에게 막말을 할 수 있게끔 만든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로 나온 어린 친구들도 아빠뻘의 형님들과 편안하게 어울리며 장난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수직적이지 않은 예능이 얼마나 유연한 지는 보면 알게 된다.
아형은 그 재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즉각 보답해주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1퍼센트 초중반을 맴돌다 포맷 전환 이후 1퍼센트 후반을 기록하던 시청률은 드디어 2퍼센트 고지를 밟았다. 물론 게스트인 '트와이스' 빨이 조금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시청자들은 이제 아는 형님을 티비로 볼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티비로 본다는 말이 조금 의미심장할 수 있다. 버젓이 JTBC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시청자들을 티비 앞에 불러세울만한 저력이 없었던 것뿐. 애초에 웃음의 정서가 B급에 가까워서 전 시청층이 고루 시청하기보다는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웹으로의 접근이 더 많았던 것이다. 레전드 짤방을 타고 흐르던 화젯거리는 웃음의 색깔을 정확히 알고 공유층에 효과적으로 접근한 나영석 예능의 전략과 묘하게 상통한다. 다만 나영석의 신서유기가 이를 정조준한 전략이었다면 아는 형님의 경우는 시청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파된 입소문에 가깝다. 물론 벌써부터 시청률 꽃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입소문으로 떠오른 만큼 지금의 재미만 잃지 않는다면 한동안 사랑 받을 프로그램임은 확실하다.
이에 못지 않게 병맛으로 화제가 된 예능인 '음악의 신2' 역시 재밌다. 음신 이상민은 나름의 팬층으로 시작한 2편이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의외의 반응을 받아들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프로그램 밖에 존재해야할 이상민의 쓴웃음은 엠넷 제작진들을 만나 푸념을 늘어놓는 상황으로 방송을 탄다. 그러고는 시청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엠넷 마케팅팀을 몰아붙이며 특유의 적반하장을 선보인다. 음악의 신이 1편부터 나름의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막무가내 식 스타일에 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해 만든 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은 리얼해 보이는 상황 속 뻔뻔함과 어이없음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지금 대한민국의 티비에서 볼 수 있는 방송 중에 가장 병맛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든 대중의 만족시킬 수 없는 코드 상의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꾸준히 화제성을 이끌어내면서 아웃사이더 예능의 갑임을 입증했다.
애초부터 음악의 신은 시청률보다는 화제성이 훨씬 중요한 예능이다. 이번 음악의 신2는 tv캐스트로 방송되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엠넷 목요일 11시로 방송 편성이 된 케이스이다. 방송 편성이 된 이상 시청률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지만 사실 진정한 힘은 내용의 파격과 이에 준하는 화제성에서 나온다. 방통위의 심의 지적을 논하거나 국장에게 디스를 하는 병맛은 여기서밖에 찾을 수 없다. 이들이 데뷔시키려는 걸그룹의 이름은 CIVA(시바)고 90년대 인기 가수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응구스엔 쿨의 김성수뿐이다. 이들의 막장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리얼한 상황을 가장한 채 우스꽝스럽게 펼쳐질수록 누군가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짤은 순식간에 웹을 나돈다. 막장 코드에서 나오는 병맛과 이로 인해 파급력을 지니는 이슈거리가 음악의 신 시리즈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매력인 것이다.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는 레전드가 시청률 이상의 팬덤을 만들고 이게 음신의 핵이다.
음악의 신의 재미 역시 날 것의 애드리브에서 나온다. 자세히 보면 음악의 신의 참 재미 역시 설정 내에서 연기자들을 자유롭게 한 특유의 리얼함이다. 이상민과 탁재훈이 LTE란 회사의 공동 대표고 이에 소속된 이수민, 윤채경, 김소희가 CIVA라는 걸그룹으로 데뷔를 준비한다는 설정은 가짜지만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상황 속 개그는 리얼에 가깝다. 상황 속에 존재하는 이상민과 탁재훈은 대본 한 줄 없이 진짜 그 상황에 맞춰 말도 안 되는 애드립을 던진다. 그리고 LTE의 직원들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드립에 대한 리액션을 보여준다. 어이가 없으면 어이 없다는 듯 웃고 당황하면 정말로 당황한다. 페이크와 리얼의 중간 경계 속에서 톡톡 터지는 재미가 음악의 신2의 가장 큰 재미인 것이다. 참, 생각보다 많은 게스트들이 나와서 자신을 내려놓고 가는 것 역시 폭소를 자아낸다. 음악의 신2의 최고 게스트는 정진운이고 춤신춤왕은 그렇게 레전드가 되어 인터넷을 나돌며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사실 '아는 형님'과 '음악의 신2' 모두 지금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대세 예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중파와의 차별점을 보여주는 케이블 예능으로 점점 시청자들이 그 능력을 인정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모난 구석 없이 무난한 프로들이라고 시청률이 뒤쳐지거나 재미가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선 편안한 스타일의 유재석 예능이나 몸으로 고생하는 리얼 예능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시청 포맷과 경향에 발맞춰 가는 시도 역시 중요하기에 새로운 한 발을 딛은 프로그램들에 더욱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확실한 건 이들은 어디선가 요즘 대세라 불릴만한 업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아는 형님'과 '음악의 신2' 모두 초심을 잃지 않고 하던 대로 막 나가는 예능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이런 예능들이 초심 잃으면 큰일 난다. 그럼 노잼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