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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혁 Feb 29. 2016

무서운 기획, 무서운 기세
프로듀스 101의 모든 것

엠넷 보고 있나? 애들 괴롭히지 말란 말야!!

  국민 프로듀서에게 미션이 떨어졌다. 새로운 국가대표 걸그룹의 멤버 11명을 선정하라. Mnet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프로듀스 101'은 과감히 국민에게 캐스팅을 맡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기가 거의 식은 지금, 신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101은 다시금 국민들의 선택으로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 짓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11명의 정예 걸그룹은 1년간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기획이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101명의 연습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이 무지막지한 서바이벌은 철저한 기획과 여론으로 움직이는 스타 양성소에 불과하다. 흘린 땀만으로는 아이돌이 될 수 없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그렇다. 


 이와 같은 전략은 대형 기획사 JYP의 '식스틴' YG의 'WIN'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먼저 엿볼 수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회사 내 새로운 그룹을 선발하기 위한 연습생 서바이벌로 화제가 되었던 기획이다. 기획사 내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왜 필요할까 싶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기획은 '트와이스'를 화제면에서 대형 신인으로 만들고 위너를 데뷔 6일만에 1위로 만들었다. 우선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을 조금 살펴보자. '슈퍼스타K'나 'K팝스타'와 같은 기존의 성공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국민이 가수가 되는' 가능성 발굴에 주안점을 둔다. 숨겨진 실력자들이 선보이는 개성 있는 음악과 이들도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해 개개인의 드라마와 화젯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방송가 대박 기획으로서 한동안 엄청난 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반면에 기획사 서바이벌 오디션은 '국민이 가수를 만드는' 철저한 팬덤 양산에 방점을 둔다. 개인의 사연이나 음악성보다는 팬들의 인기가 중요한 아이돌 그룹이기에 초기에 팬덤이 되어줄 소중한 '국민 팬'들이 필요한 것이다. 멤버 발탁이라는 소정(?)의 목적을 두고 참여하는 연습생들은 방송을 통해 각자 본인의 매력을 어필할 시간을 갖는다. 이들에게 극적인 드라마라던지 인생 역전의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먼저다 뿐이지 데뷔는 거의 기정 사실화고 그 시작을 함께할 팬들 역시 생긴다. 그렇게 시작부터 나름의 화제와 팬덤을 갖고 출격한 아이돌 그룹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높은 위상에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내 오디션과 약간의 차이는 있다. 여기서 선발되지 못한 연습생들은 데뷔를 보장받지 못하고 선발된 걸그룹도 프로젝트 그룹으로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한다. 하지만 이번 프로듀스 101 역시 멤버 알리기 기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1명의 국민 걸그룹을 만든다는 이 사람들은 사이에 0을 하나 더 넣어 역대급 스케일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동안 볼 수 없던 어마무시한 규모지만 결국 걸그룹이 되어 활동할 11명의 팬덤 만들기 기획이다. 나아가자면 각 기획사들의 팬 모으기 전략 정도가 곳곳에 깃들어 있겠다. 그렇게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걸그룹은 아마도 그들을 뽑아준 소중한 팬덤을 등에 업고 힘있는 출발을 할 수 있을테다. 그렇기에 최종 선발될 11명이 되기 위해 101명의 소녀들은 1시간 45분 남짓한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팬을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절실한 마음으로 붙잡았던 이 프로젝트에서, '방출'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참으로 복합적인 잣대인 '인기'가 순위의 중심으로 너무도 당연하게 제시된다는 점이다. 실력이나 외모, 매력, 이슈, 거기에 요즘은 인성까지 스타가 갖춰야할 요인은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이 곳에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단 하나, '인기'라는 척도에만 도달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엠넷의 은총으로 엄청난 방송 분량을 부여받아도 좋고 기존에 있던 인지도와 팬들로 승부를 봐도 좋다. 물론 타고난 외모가 있다면 예쁜 얼굴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예쁜 외모는 죄가 아니니 인정. 그래서 '진짜' 잘 하더라도 '무지막지' 하게 잘 하지 않는다면 치열한 분량 전쟁에서 자립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조용히 잘 할 바에 아예 못 하는 게 낫다. 그래서 1등부터 101등까지 개개인에게 붙는 잔인한 등수 딱지는 결코 정당한 척도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비운의 소녀들은 그렇게 생사를 진단받는다. 인기를 얻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사실 여기에 시청률을 갈구하는 '프로그램'이 과도하게 개입한다.


 물론 모두에게 동등한 방송 분량을 챙겨준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당연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방송은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알고 싶어하는 연습생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이는 분량으로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사실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 오디션보다 방송으로서 시청률을 높여야하는 '만천하에 숨겨진' 사명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연습생들을 찾아 이야기를 더하고 매력을 한껏 부풀려 노골적인 인기 양산에 힘을 쓴다. 방송되는 편집본은 10대, 20대에 집중된 시청층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꽤나 큰 힘을 갖기에 이와 같은 작업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닭 무리에서 학 한 마리를 찾는 건 쉽다. 하지만 학 무리에서 더 예쁜 학을 찾으려는 욕심이 생기고 이는 엠넷의 야심에 적중한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건 금요일 밤 11시 Mnet에서 방송되는 '프로듀스 101'이 만든다. 



 모두들 처음 'PICK ME'의 티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01명의 소녀들이 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그동안 한국의 방송가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었으니 말이다. 다소 징그럽다는 반응이 많았고 심지어 일본 방송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물론 연기가 더해졌겠지만 프로듀서 대표인 장대표의 스타일도 다분히 일본스럽다. 소녀들을 데리고 만든 일본 방송이라니 시선이 달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Mnet은 어쩌면 이와 같은 평가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인 '쇼 미 더 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사이에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자극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101이라는 수와 이를 시각적으로 생소하고 기괴하게 전달해줄 퍼포먼스, 그렇게 '나를 뽑아줘' PICK ME가 탄생했다. 픽 미를 외치며 춤을 추는 101명의 교복 소녀들은 확실히 낯설고 요상했다. 그렇게 무섭지만 악마 같은 엠넷의 전략은 얄미울 정도로 착착 맞아들어갔다.


 '악마 방송'의 본가라 할 수 있는 엠넷이 소녀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만행은 바로 치명적인 순위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로지 인기만을 척도로 해 매겨지는 순위기에 연습생들 앞에 붙은 등수를 볼 때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프로듀스 101은 현장 평가와 온라인 투표로 순위를 붙인다. 그렇지만 실제로 순위를 결정 짓는 건 온라인 투표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의 표 차이는 많아봐야 천 표 정도로 연습생들의 순위를 가르기에는 다소 미미한 정도의 점수이다. 반면에 온라인 투표는 전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많게는 몇 십 만 명까지 차이가 난다. 결국 연습생들은 온라인 표를 얻어야하고 현장에서의 뛰어난 실력은 방송이 주목해야 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진 매력을 수면 위로 확실하게 올려줄 편집의 마술, '방송 빽'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보통 실력은 외모라는 장벽과 부딪혔다. 하지만 101명에 순위제가 더해지니 외모보다 더한 인기란 놈이 가로막고 있다. 인기는 방송을 통해 소녀들을 '줄 세운'다. 그래서 순위제는 가혹하다. 

 그렇다면 '프로듀스 101'이 만들어낸 연습생은 누가 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 레드라인의 김소혜 연습생을 들 수 있다. 언제나 부족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현재 순위 11위로 데뷔 라인의 문을 닫고 들어간 행운의 소녀라 할 수 있다. 방송 초기부터 김소혜는 과도하게 많은 방송 분량으로 밀어주기 논란을 달고 다녔다. 실력 있는 연습생들도 주목받기 힘든 상황에서 김소혜의 실수하고 헤매는 모습이 비중있게 방송되는 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소혜의 계속되는 노력과 1등 김세정과의 케미는 방송이 만든 하나의 스토리가 되면서 순위에 직결됐다. 달갑지 않게 보던 대중들도 어느새 고생하는 소혜쪽으로 상당히 돌아서게 된 것이다. 매번 그랬듯이 엠넷은 시청자들이 방송을 찾을 만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번에는 나름 입덕 캐릭터를 지닌 김소혜가 초반을 견인하는 스토리로서 엠넷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이제 모든 건 방송이 아닌 김소혜와 그녀를 지지해줄 팬들에게 달렸다. 이미 뒤 이은 방송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들은 또 다른 스토리와 화제를 찾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악마의 편집으로 희생된 허찬미 연습생을 보면 방송이란 게 참 무섭다.



 정말 민망한 얘기지만 나는 매번 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훔친다. 무대 위에서 활짝 웃는 소녀들이 뒤에서 눈물을 흘릴 때면 마치 동생같기도 하고 친구같기도 해서 함께 마음이 아프다. 가수라는 꿈을 안고 하루 하루를 살아온 어린 친구들이 방송에 나와 순위를 받아가면서 얼마나 감정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한 등수 올라 힘이 나다가도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순위에 걱정도 참 많이 했을 거다. 가족 생각, 동료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방송을 떠나 다들 얼마나 힘든 경쟁을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날 수 밖에 없다. 상위권 연습생들이야 순위로라도 위로받을 수 있겠지만 방출을 앞둔 연습생들은 그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할 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어느새 나도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있나보다.


 프로듀스 101, 참으로 나쁜 기획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있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연습생이란 건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참으로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길임은 분명하다. 데뷔라는 막연한 목표는 잡힐듯 잡히지 않고 이는 결국 조바심을 만들기에 더욱 그렇다. 언제쯤 사람들이 날 알아줄까, 잠 못이루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서바이벌은 참으로 고약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 속에서라도 자신을 알릴 수 있다면 안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절박한 소녀들이 무려 101명이 모였다. 누구는 그 덕을 톡톡히 보겠지만 누구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방출된다. 덕을 보는 이들에겐 고마운 프로그램이겠지만 방출되는 이들에겐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냉정한 프로되겠다. 절대로 이 기회가 전부가 아니니 노력하는 수많은 연습생들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수라는 꿈을 위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프로그램도 약았으니 다들 조금 약은 마음 먹고 프로듀스 101을 본인들의 커리어로 잘 써먹었으면 좋겠다. 


 막상 '모든 것'하고 거창한 제목을 붙여놨지만 실제로 모든 걸 담지는 못한 것 같다. 매회 챙겨보는 시청자로서 데뷔를 바라는 연습생들도 생기고 글을 통해서라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지만 '프로듀스 101'을 더 잘 알고봤으면 싶은 마음에 따로 응원글을 쓰지는 않겠다. 사실 프로그램에 대해 가열찬 지적을 했지만 나 역시도 시청자로서 끝날 때까지 연습생들의 행보를 지켜볼 예정이다. 다만 프로그램의 장난에 놀아나는 시청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들에 대한 평가보다는 노력하는 모두에 대한 진심 어린 팬심으로 보도록 하겠다. 악마의 편집에 희생된 연습생들을 미워하지도, 인기 많은 연습생들을 시샘하지도 말자. 꿈을 위해 뭐든 노력하는 고생하는 이들을 그저 열심히 응원하는 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글을 올리기 직전에 일이 또 하나 터졌다. 큐브 연습생 권은빈 양이 CLC 새 멤버로 합류하는 놀랄 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 프로그램 외의 활동은 할 수 없다는 협의 사항에 따라 당장 컴백에 합류할 수는 없겠지만 오디션 중간에 벌어진 갑작스런 데뷔 결정 통보는 그녀에게 투표하던 많은 팬들을 당황시키기엔 충분했다. 조심스럽게 예측 해보자면, 소속사 큐브는 CLC를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101을 선택했을 것이다. 팬덤 양산에 초점을 맞춘 101의 기획 의도로 봤을 때 서바이벌 상위권에 속한 새 멤버 권은빈의 CLC 영입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참으로 유리한 전략이다. 가뜩이나 인성 논란이 따라다니던 그들이었기에 권은빈을 비롯한 새 멤버의 영입은 'REFRESH'의 시도로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겠다. 참 다들 대단한 머리다. 엠넷도 기획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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