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과장에게 깨진 날 편의점 도시락이 주는 기묘한 위로

박팀장의 이중생활과 찌질함의 기술

by 찐지니


박 팀장은 오늘도 2008년식 구형 아반떼를 타고 출근한다.

구청 앞 공영주차장을 지나 불법주차 단속이 되지 않는 교묘한 골목 구석에 차를 밀어 넣었다.

문을 닫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는 삐걱하는 소리는 그의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차에서 내리는 박팀장의 모습도 아반떼와 닮아 있다.

아침의 상쾌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몇 해를 입은 건지 알 수 없는 셔츠는 본연의 파랑빛을 잃은 지 오래이고,

목에 닿는 부분은 이미 회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10년 전 유행하던 촌스런 금테 안경은 콧등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누가 봐도 박팀장은 35년의 세월을 구청이라는 조직에 저당 잡힌 채,

정년퇴직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만년 팀장 그 자체였다.



월요일 아침의 사무실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나 눅눅한 서류 냄새와 주말 내내 환기되지 않은

탁한 공기가 납덩이처럼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직원들은 애써 미소 지으며

기계적인 아침인사만 주고받고 의미 없이 이메일을 확인한다.

그 와중에 아침 간부회의를 준비한 주무 부서만 분주히 움직였다.


"박 팀장님! 이리 좀 와보세요!"


간부회의 때 국장실에서 한바탕 깨지고 나온 조 과장의 목소리가

넓은 사무실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며 사무실의 정적을 깨운다.

사무실로 들어선 조 과장의 얼굴은 독이 잔뜩 오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같이 다려진 그의 듀퐁 화이트 셔츠는

그의 꼿꼿한 자존심만큼이나 칼 각을 유지하고 있었고,

구찌 로고가 빼곡히 박힌 넥타이가

아침햇살에 유난히 번뜩였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이번 사업비 깎이면 팀장님이 책임질 거예요?

오타는 왜 이렇게 많아?

아니, 명색이 팀장이면 판 돌아가는 눈치라도 있던가, 빠릿빠릿 움직여야 할 거 아냐!"


조 과장의 삿대질이 박 팀장의 코끝까지 다가왔다.

사무실 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제 막 들어온 MZ 세대 주무관들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메신저 창에는 이미 조스의 사격 개시를 알리는 메시지로 불이 나고 있었다.


김 주무관: 야, 조스 또 시작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스나이퍼 저격 성능 확실하네.

이 주무관: 박 팀장은 또 깨지네. 그래도 멀쩡해. 저 멘탈은 진짜 국보급이다.


박 팀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색 바랜 셔츠 깃 너머로 보인 그의 목덜미는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쪽팔림 때문인지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제가 노안이 와서 그런지 수치를 잘못 봤나 봅니다.

다시 한번 꼼꼼히 챙기겠습니다."


박 팀장의 목소리는 낮고 비굴했다.

그는 조스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디며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였다.

조과장은 혀를 차며 돌아섰다.


김 주무관 : 에휴, 박 팀장. 저렇게 욕을 처먹고도 아무렇지 않나 봐

이 주무관 : 그러게, 나라면 저렇겐 안 산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박 팀장은 터덜터덜 탕비실로 향했다.

직원들은 그를 보며 탕비실 하이에나가 또 사냥을 나간다고 비웃었다.

박 팀장은 능숙하게 종이컵 두 개를 겹쳐 들고는,

탕비실 구석에 비치된 맥심 모카골드 두 봉지를 털어 넣었다.

그러곤 무엇을 찾는 듯 탕비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어 없네.. 에휴'


그에게는 조스의 갈굼보다

탕비실에 최애과자인 로투스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더 뼈아픈 타격인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점심시간.

조 과장이 "오늘은 내가 쏜다!"며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승진과 과시에 목숨 거는 그 답게

근평기간이 다가오니 자주 지갑을 열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마저도 업추비 카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가 팀원들을 데리고 향할 곳은

인근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한 접시에 3만 원이나 하는 성게알 파스타를 먹으러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박 팀장은 슬쩍 대열에서 빠졌다.


"팀장님, 같이 안 가세요? 오늘 조 과장님이 쏘신다는데!"


김 주무관이 의아한 듯 물었다.

박 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슈퍼컴퓨터급의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조 과장이 점심을 사면, 직급상 커피는 내가 사야겠지.

팀원 일곱 명에 조 과장까지 여덟 명.

스벅에서 대충 시켜도 5만 원은 우습게 깨지겠지.

5만 원이면 치명적인 지출이다.’


박 팀장에게 조 과장의 "쏜다"는 말은 축복이 아니었다.

공짜밥을 먹는 순간 더 큰 지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 나는 속이 아주 더부룩하네.

그냥 산책이나 좀 하다가 들어갈게. 다들 맛있게 먹고 와."


조 과장은 그런 박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우월감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입가에는 숨기지 못한 비웃음이 살짝 걸렸다.

짐짓 가엾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팀원들을 챙겼다.


"자, 가시죠! 속 안 좋으신 분은 빼고

우리끼리라도 제대로 즐겨야지!"


조 과장은 보란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조 과장의 비릿한 비웃음을 뒤로하고

박 팀장이 향한 곳은 구청 후문의 낡은 편의점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그를 반겼다.

박 팀장은 망설임 없이 도시락 코너로 직행했다.


그의 눈이 사냥꾼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목표는 하나, 특가 행사 도시락이다.

‘3,900원. 제육이 가득 들어있는 도시락인데

스벅 커피 한잔보다 싸다.’


박 팀장은 스마트폰 앱에 숨겨둔

500원 할인 쿠폰까지 알뜰하게 챙겨 결제했다.


최종 가격 3,400원.

조 과장과 팀원들이 30만 원 가까운 식비를 쓰고,

그 뒤에 이어질 '누가 커피를 살 것인가'라는

미묘한 눈치 게임에 에너지를 낭비할 때,

박 팀장은 단돈 3,400원으로 완벽한 생존을 확보했다.


편의점 구석, 기름때가 묻은 좁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박 팀장은

갓 데워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훅 끼쳐오는 인공적인 제육볶음의 향기가

조 과장의 비싼 향수 냄새보다 훨씬 달콤하고 정직하게 느껴졌다.

그는 젓가락을 들기 전, 낡은 수첩을 펴고 오늘 오전의 지출을 기록했다.


[4.17 지출 기록]

점심: 3,400원


박 팀장은 제육볶음 한 점을 입에 넣으며 천천히 씹었다.

남들은 그를 탕비실 하이에나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박 팀장은 알고 있었다.


이 찌질한 5만 원의 방어가 모여 아파트 등기가 되고,

결국 내 미래를 책임져줄 거대한 성벽이 될 것이라는 것을.


조 과장이 오늘 점심 가오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박 팀장에게는 또 다른 자본주의적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웃음꽃을 피우며

돌아오는 조스와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지만

박 팀장의 가슴은 오히려 뜨거웠다.

‘그래, 조 과장. 너는 승진에 목매며

오늘 30만 원으로 찰나의 권력을 샀겠지.

나는 오늘 그 돈을 아껴 네가 꿈도 꾸지 못할 미래의 자유를 사는 거다.’


박 팀장은 도시락 용기 구석에 남은 양념 한 방울 밥알 한알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배가 부르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오전 내내 조스에게 당했던 모멸감은 도시락 찌꺼기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박팀장은 다시 사무실로 향하며 무능하고 존재감 없는 만년 팀장의 가면을 고쳐 썼다.

오후 1시. 다시 책상에 앉은 박 팀장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oo공인

[급매]

108동 8층 정남향

판상형. 상속 물건. 매매 2.6억

전세 대기자 있음. 갭 1.5천 가능.

사장님만 먼저 연락드려요


박 팀장의 눈빛이 다시 사냥꾼의 눈매로 변해 있었다.

월요일 아침의 비릿한 공기는 사라지고,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부의 지도만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