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팀장의 이중생활과 찌질함의 기술
탕비실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눅눅한 믹스커피 향과 버려진 쓰레기들에서 나는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뒤섞여 있다.
매일 오전, 오후 탕비실을 찾는 박팀장에겐 너무나 익숙한 냄새다. 오늘 오후도 역시 탕비실을 찾은 박 팀장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인간 사료라 불리는 대용량 과자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부스럭부스럭
과자봉지 소리가 탕비실 너머까지 새어 나온다. 조스에게 박팀장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난 뒤 찾아오는 허기를 과자를 흡입하는 것으로 채우는 중이다.
그때, 탕비실 문틈 사이로 조 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국장실 앞 복도를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아니, 정확히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 타이밍을 보는 충견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홍삼세트가 들려 있다.
순간 조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엔 노골적인 경멸이 스쳤다.
"박 팀장, 이제 속은 괜찮나 봐? 밥 안 먹었어?"
박 팀장은 입안 가득 찬 과자를 어색하게 씹으며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입이 좀 심심해서요. 허허헛."
조 과장의 눈에는 그가 만년 팀장의 현실에 안주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패배자일 뿐이다.
조 과장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박 팀장은 자리에 가서 과자를 더 먹을 요량으로 종이컵에 과자를 듬뿍 채웠다.
하지만 박 팀장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투자금에 이만한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건 없겠지?'
점심 때 온 부동산 사장님의 급매 문자를 곱씹어보며, 진정 이 투자가 최선인지 계속해서 고민해보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선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 채 회사에서 숨만 쉬고 있는 박팀장이지만, 그의 진짜 전장은 지방 부동산 시장이었고, 최종 목적지는 단 하나—잠실 엘스였다.
종이컵 뒤로 숨긴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기린의 목처럼 쭉쭉 뻗은 잠실 엘스의 실거래가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다.
[잠실 엘스 84㎡: 2016년 1월 10억 → 2021년 11월 26억]
‘5년 만에 16억이라니…’
입안의 과자는 달콤했지만, 눈앞의 숫자는 속을 시리게 하기 충분했다. 조 과장이 국장님 비위를 맞추며 얻어낼 승진 자리보다, 이 아파트 한 채의 상승분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16년에 부동산 투자를 했더라면… 그때 갭 2억이면 엘스를 가질 수 있었는데. 아쉽네.. 아쉬워’
박 팀장은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다짐했다. 지금은 비록 지방에서 푼돈을 굴리지만, 투자가 성공하기만 하면 이 지루한 복도를 벗어나 엘스의 주인공이 되겠노라고.
그때, 화장실을 다녀오던 김 국장이 복도에 나타났다. 엉거주춤 서 있던 조 과장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국장님! 아이고, 국장님!"
조 과장은 세상 밝은 미소와 함께 허리가 90도로 꺾일 정도로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홍삼세트를 내밀었다.
"어, 조 과장? 이게 뭔가?"
"별건 아니고요, 고향 다녀오는 길에 국장님 생각이 나서 홍삼 좀 챙겨 왔습니다. 하하!"
"오, 조 과장! 아니, 조 과장 고향이 진안이었나?"
"국장님도 진안이세요? 이런 우연이! 국장님,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탕비실 안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박 팀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조 과장의 저 필사적인 '고향 마케팅'
저렇게 애써서 승진하면 연봉이 얼마나 오를까. 아마 세전 700만 원 남짓일 것이다. 저 마케팅이 성공하더라도 동기들보다 고작 1년 먼저 승진하는 건데 말이다.
국장님 방 문틈사이로 조 과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국장님, 요즘 많이 바쁘시죠?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아, 그래 보이나? 일이 좀 많아서."
"아이고, 그러시면 안 되죠. 건강이 제일이십니다. 이거 드시고 기운 좀 차리셔야죠."
말끝마다 묻어나는 과장된 걱정과 웃음.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계산된 아부 타이밍.
박 팀장은 입안의 과자를 천천히 씹었다.
입 속에서 바삭한 식감이 사라질수록 묘하게 씁쓸한 맛이 올라왔다.
‘저 정도면 거의 국민배우 해도 되겠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믹스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과자 먹느라 식어버린 미지근한 믹스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속은 전혀 개운해지지 않았다.
복도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내 국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철컥.
"조 과장, 다음에 우리 소주나 한잔 하지."
"아, 네! 국장님! 언제든 불러만 주십쇼"
짧은 한마디였지만, 조 과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허리를 다시 한번 깊게 숙이며 문 밖으로 나오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까지 했다.
박 팀장은 텅 빈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가득 차 있던 과자는 어느새 바닥만 남아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남은 부스러기를 쓸어 담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작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애쓴다, 조 과장. 그래… 열심히 해라. 형은 말이야, 네 연봉의 100배를 벌어줄게.’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