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고용된 대부 By Yudhijit Bhattacharjee | July 23, 2018 The New Yorker
2011년 2월 9일 오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시티 호텔 스위트룸. 러시아 군용 무기를 암시장에 팔고 싶어하는 두 사람이 한 60대 남자를 만났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 남자의 이름은 이아니(Yianni). 단정하게 턱수염을 다듬었고, 불룩한 배에 키가 작았다. 두 사람은 이아니가 탈레반의 무기 구입을 위임 받은 자산가라고 알고 있었다.
미 육군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30대 이란계 미국인과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50대 중반의 이스라엘계 미국인 두 사람은 수백만 달러어치의 불법 무기를 판매할 때 권장할 만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 뒤 그들은 이아니의 자신감 넘치는 사교적인 태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공급할 수 있는 무기 목록을 작성했다. FIM-92 스팅어, 재블린, M47 드래곤(이상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이었다. 호텔에서 이아니는 짙은 그리스 억양으로 그들을 맞았다. 그는 신선한 애피타이저를 주문한 뒤, 커피 테이블에 접시와 은식기를 손수 놓아줬다. 이란계 미국인이 일어나 도우려고 하자, 이아니는 손을 저으며 넉살을 부렸다. “엄마 역할 좀 하게 둬. 알았지?” 그리고 몇 시간 뒤, 이들은 첫 물량을 흑해 연안의 루마니아 항구 콘스탄차로 넘기기로 합의했다. 금액은 300만 달러였다. ‘탈레반은 무기가 아주 급하다’고 이아니가 설명했다. ‘이들의 헤로인 농장을 미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음날, 정오 무렵, 남자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 좀 ‘샤프’해 보이는데?” 이아니가 이스라엘계 미국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선금으로 건넬 25만 유로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탄약 구입과 탈레반에게 무기 사용법을 지도할 전문가 고용 문제, 돈을 예치해 둘 은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아니는 두 남자에게 자신이 건네준 블랙배리(스마트폰)가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당신을 100% 믿습니다.” 이란계 미국인이 말했다. 이아니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가 받았다. “자, 가방은 뒷 좌석에 남겨둬. 알았지?” 남자들은 돈을 가지러 방을 나섰다.
복도에 섰을 때 이들은 총을 든 십여 명의 루마니아 경찰과 마주했다. 남자들은 법정에 선 뒤에야 이아니의 진짜 이름이 스피로스 에노티아데스라는 걸 알았다. 그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위장 정보원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에서의 만남은 녹음과 감시 속에서 이뤄졌다. 2013년 이 남자들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징역 2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위장 수사(기만작전·Sting operation)는 종종 목표물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D.E.A.는 1973년 설립된 이후 전 세계적에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위장 수사에 의존해왔다. “어떻게 해서든 범죄 조직에 직접 뚫고 들어가 즉시 증거를 확보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습니다.” 전직 연방 검사인 랜달 잭슨(현 뉴욕 로펌 소속 변호사)이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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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에노티아데스에 대해 들은 건 2011년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벌어진 D.E.A.의 위장 수사 작전을 취재하면서였다. 나이지리아 밀매업자와 러시아인 파일럿을 체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작전이었다. 레바논의 금융 컨설턴트 역할을 했던 에노티아데스는 재판에 나와 증거 수집 과정에서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해 증언했다.
그가 밀매업자들과 나눈 대화 녹음을 듣고, 그가 얼마나 빨리 상대방과 신뢰(라포르·rapport)를 형성하는지 놀라웠다. 1990년대 중반 에노티아데스와 함께 일한 전직 D.E.A. 요원 로버트 러실로는 “경험에서 나온 노련함”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 덕에 그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완수했다고 말한다. 에노티아데스가 이아니를 연기했을 때, 그는 이란계 미국인에게 “내가 입양한 아들”이라고 불렀다.
에노티아데스는 키프로스인이다. … (그는 그리스인이나 레바논인 역할 외에도 이탈리아인이나 쿠르드인 행세도 했다.) 어떻게 보아도 그는 언더커버 정보원을 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3번의 뇌졸중을 겪고, 고관절 통증을 앓고 있다. 하루 두 갑의 담배를 피우고, 심장 건강 따윈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식생활을 한다. 날씬하고 상냥한 아내 루앤은 최근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 ‘계란 프라이’는 빼 달라고 웨이터에게 부탁했다. 에노티아데스는 자신의 브리스킷 요리에 그 계란을 함께 달라고 했다.
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에노티아데스는 오랜 친구처럼 나를 맞았다. 그는 날카로운 기억력을 지닌 이야기꾼이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는 종종 상대방의 말을 끊고 끼어들고, 그렇게 한 행동에 대해 극진하게 사과했다. 최대한 상냥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는 불만스러운 것이 있으면 종종 그리스어로 빠르게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가볍게 욕설을 뱉었다. 이런 행동들은 그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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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에노티아데스는 카르텔의 보스나 중개인, 자금 관리자를 연기해 D.E.A.의 목표물과 직접 전화를 하거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데 전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D.E.A.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적인 잠입 정보원이 되었다. 미국, 유럽, 남미,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10여 건의 마약·무기 밀매 수사에 참여했다.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들과 문화 속으로 녹아드는 그의 능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지난해 은퇴한 루이스 밀리온 전 D.E.A. 특수작전본부장이 한 말이다. 그는 라이베리아와 뷰챠레스트 등 에노티아데스가 참여한 여러 건의 작전을 지휘했다. “깡다구가 아주 남달랐습니다. (마약상과 만나는) 그 공간을 지배해버리죠.”
위장수사는 대단히 위험하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나 말 한 마디 모두 목표물에 샅샅이 관찰되고 있는 겁니다.” 루실로가 내게 말했다. … D.E.A.의 역할극에 고용된 이들은 공식적인 훈련도 받지 않는다. 정보원들은 목표물과 함께 있을 때 의심을 피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숙지해야 한다. 에노티아데스는 직접 일을 하면서 배웠다. 2000년대 D.E.A.의 작전 책임자 마이클 브라운은 내게 “당신의 머리에 총이 겨눠지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어려운 질문을 던지겠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마 좋을 겁니다.” 실수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실로에 따르면, D.E.A.를 도와 콜롬비아인 표적을 쫓던 한 정보원은 ‘콜롬비안 넥타이’ 상태로 발견됐다. 길게 잘린 목구멍 사이로 혓바닥이 밖으로 나와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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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 에노티아데스는 주로 마약 밀매 조직의 중간 간부나 카르텔 두목의 부하로 활동했다. 예순이 가까워지자 그의 역할이 바뀌기 시작했다. 2004년 9월, D.E.A.의 특수 작전 부서의 요원들은 ‘보야코’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콜롬비아의 코카인 밀매업자 호세 마리아 코레도르 이바게를 겨냥한 수사에 에노티아데스를 투입했다. 보야코는 미국 정부가 테러 조직으로 간주한 FARC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의심하는 인물이었다. D.E.A.는 에노티아데스가 엘 루소라 이름 지은 이물을 연기하도록 했다. 아르헨티나를 거점으로 여러 나라에 코카인을 공급하고, 개인 화물선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하는 거물이었다.
에노티아데스는 연구를 통해 맡겨진 역할을 준비했다. 샤워하는 동안엔 계속 연기할 캐릭터의 이름을 반복했다. “사건과 상관없는 생각들은 떨쳐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것에 집착했다. 두려움의 냄새가 풍겨나지 않도록 데오드란트를 뿌렸고, “은행원처럼 보이거나 외모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에 젤을 바를 것인지도 고민했다. 한번은 4500달러 짜리 스위스 명품 ‘코럼 요트용 시계’를 샀다. 목표물과 요트에서 만날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가끔은 값비싼 정장을 입습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라벨이 보이도록 –다양한 방법들있죠– 하는데, 그들이 ‘씨발 이 양반 2000달러짜리 양복을 입었어’하고 생각할 겁니다. 300달러 주고 산 양복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엘 루소를 연기하기 위해 그는 스타일리쉬한 스포츠 코트와 값비싼 신발을 신었다. 2004년 9월 어느 밤, 키 작은 남자 보야코가 에노티아데스를 만나기 위해 -과장된 권위 의식을 풍기며-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고급 호텔인 타마네코 인터컨티넨털에 들어섰다. 세 사람을 대동했고, 그 중 한 사람은 자신이 파일럿이며 이름은 ‘산드로’라고 소개했다.
남자들은 바에 모여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호텔 수영장 옆의 안마당’으로 걸어갔다. D.E.A.요원인 ‘D’는 수영장이 보이는 호텔 방에서 그와 다른 요원들이 쌍안경으로 이날 만남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수사관들은 사복을 입고 호텔 곳곳에 배치됐다. 에노티아데스와 그의 손님들이 앉아있는 곳 인근의 테이블에서 음료를 홀짝인 요원도 있었다. D.E.A.는 에노티아데스의 몸에 도청장치를 다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들이 그의 몸을 수색하거나 셔츠를 들어볼 것을 대비한 거였습니다. D가 설명했다.
어느 정도 소개를 마친 뒤, 에노티아데스는 보야코에게 새로운 공급선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에노티아데스는 보야코와 그의 파트너에게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이 변동되더라도 가격을 정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보야코의 부하 중 한 사람이 반대하자, 에노티아데스가 떠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야코가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엉뚱한 말을 한 부하를 꾸짖었다. 에노티아데스는 5000kg의 코카인을 kg당 5000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선 1000kg을 건네면 대가의 70%를 먼저 지불할 수 있다고 했다. 코카인은 포장해 루소를 뜻하는 ‘R’을 위에 찍어 달라고 했다. 보야코는 추가로 1000kg을 외상으로 주겠다고 했지만, 에노티아데스는 첫 거래로 우선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보야코에게 그들의 관계가 키워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주는 듯했다.
3시간 후, D.E.A. 요원들은 호텔방에서 바라본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그들은 50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팔짱을 끼고 걸어나오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더라고요.” D는 보야코의 몸동작을 보고 그가 다시 만나길 원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노티아데스의 초대로 보야코는 10월 1일 타마나코로 돌아와 두 번째 만남을 갖기로 했다. 그날 저녁 보야코와 두 명의 동료들이 에노티아데스가 기다리고 있던 호텔 바에 들어선 뒤, 세 사람은 베네수엘라군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은 에노티아데스에게 수갑을 채우고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했다.
보야코는 2005년 베네수엘라 감옥에서 탈출했고, 이후 2008년 미국으로 인도되기 전 콜롬비아에서 다시 체포됐다. 연방검사는 그에 대해 D.E.A.에서 수집한 증거를 제시다. 증거에는 에노티아데스가 타마나코 인터콘티넨털에서의 만남을 자세히 진술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다른 혐의들에 더해, 보야코는 미국 정부가 마약 범죄와 테러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2006년 마약 밀매 및 테러리즘을 다룬 새 연방법에 따라 처음으로 기소된 사람이 됐다. 2012년 국무부는 보야코 체포 작전에서 그가 한 역할에 대한 대가로 에노티아데스에게 50만달러를 지불했다. 에노티아데스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를 구입했고, 이름을 보야코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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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얘기를 시작했을 때, 에노티아데는 자신이 곧 은퇴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잘 알았지만, 그동안 해온 일이 인정받길 간절히 원했다. 에노티아데스는 때론 D.E.A.와 함께 일하는 것에 씁쓸해하기도 했다. 거액의 돈이 지불 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일도 있었다. 심장과 고관절 치료를 위해 매일 약을 먹어야 했다. 건강보험도 없었다. 에노티아데스는 그동안 투자했던 다른 일들에 자주 실패했다. 댈러스에 차린 주방용품점은 2009년 문을 닫았고, 그와 아내 루앤이 집을 팔아 친구 소유의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다. 에노티아데스는 계속 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하지만 낙관적인 태도는 유지했다. “만약 돈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뭘 했겠습니까. 바닷가 같은 데 앉아 있겠어요?” 그가 말했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죠.”
코끼리 메모
-스피로스 에노티아데스는 카르텔 보스 역할을 전문적으로 맡기 위해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고용된 ‘배우’, 즉 위장 정보원이다. 비밀스러운 마약밀거래의 큰 손들을 적발하기 위해선 그들과의 위장 거래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에노티아데스는 범죄 경력도 없고, 마약을 다룬 적도 없다. 그렇다고 배우도 아니고, 그저 비즈니스맨일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독특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비슷한 인물을 발견했지만 에노티아데스 본인이라고 확인되지 않아 이 레터에 추가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까지 DEA 요원들이 직접 잠입 근무를 했다고 한다. 기사에 소개된 전직 요원 마이클 레빈은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러시안룰렛’을 했다”고 말한다. 정부의 사법권을 행사하는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마약상으로 위장해 잠입하는 일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수사기관들이 외부인들을 고용해 위장시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기사를 계속 보면, 일회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게 DEA의 입장인 듯하다. 그러니까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에노티아데스는 민간인이고, DEA 수사관도 아니지만, 마약상으로 위장해 그들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사에 소개된 한 단락을 보면, 2016년에 미 법무부 발표에서 2010~2015년 동안 DEA가 1만8000개 이상의 첩보 소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소스가 하나의 정보원이라고 한다면 1만8000명이 범죄 정보를 제공한 셈이다. 이 중 대부분은 자신의 범죄에 관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상사나 동료의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마약 수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약을 건네 준 ‘상선’을 차례로 쫓아 올라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상선에 대해 입을 다물면 꼬리가 끊긴다. 상선에 대한 진술도 수사관과 담배나 나눠 피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식 조서를 꾸밀 때 말해야 합법적인 증거로서 활용할 수 있다. ‘약쟁이’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 방식의 어려움 때문에 DEA는 정보원들을 활용하게 된 것 같다. 위장된 거래로 증거를 발굴해내는 것이다. 넷플릭스 <수리남> 등 대중매체에서 마약 수사물을 다룰 때 ‘위장’ 수사관 혹은 민간인 정보원이 등장하는 것도 증거 수집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작전은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와 같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 수사관들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한 대본을 만들고, 극의 진행을 연구한다. 이 연극의 문제가 있다면 연기자가 잠입한 첩보원 한 사람 뿐이라는 점이다. 수사관들은 프로듀서, 작가, 감독이 돼 배우인 위장 요원들을 ‘디렉팅’할 뿐,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이들은 상대 ‘배우’가 아니라 실제 마약상이다.
-첩보원들이 이런 위험 일에 뛰어드는 건 상당한 보상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콜롬비아 전직 마약상은 2008년 무기 밀매업자를 체포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두 건의 사건에 개입해 750만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한 건당 200만~300만달러 이상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건 연기의 대가는 유명 영화배우 수준이 아닐까 한다.
-기사에도 소개됐지만 이런 첩보 요원들은 개인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 에노티아데스 역시 자신의 애인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리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하던 사업 역시 불규칙한 작전에 투입돼 망해버렸다고 한다.
-목숨을 잃거나 다치면 곤란한 상황을 겪는 건 이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미 법무부 감사 결과 살해된 정보원의 가족 및 장애를 입은 정보원들에게 다양한 연방정부의 혜택이 제공된 사례 17건이 발견됐다. 일종의 연금인데 적용 조건과 입증 절차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실제 피해를 본 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를 쓴 유디짓 바타차르제에(Yudhijit Bhattacharjee)는 취재 후기를 설명한영상에서 "트럼프 시대에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걱정하고, 진실이 어떤 환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진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게 전문인 남자에 대해 소개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실 속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유디짓은 2015년 취재를 시작해 에노티아데스의 이야기를 검증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자기 삶을 모두 내팽개치고 마약상 검거를 위해 범죄자로 위장 잠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과거 경찰 중에도 잠입수사를 벌인 이들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잠입이 아니라 며칠 동안 하는 잠복 수사도 손사래 치는 경찰 수사관도 많다. 자기 삶을 던지면서까지 어떤 일에 뛰어드는 이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코끼리의 번역 노트는 롱폼 스토리텔링 텍스트를 다루는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 코끼리'가 해외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일부 번역해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