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이자 40대 엄마에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이건 6학년이 읽기 힘들겠는데……."
“뭔데?”
내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6학년이 못 읽을 책이 어딨어?”
“남편은 읽었어?”
“아니. 내용은 알지.”
“읽지도 않고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해? 모르는 말이 많아서 나도 찾아보면서 읽었는데……우리 아들 그냥 엎드려서 읽던데, 무슨 내용인지 알까?”
“어른하고 똑같이 할 거 다 하는데, 책은 왜 못 읽어? 6학년이면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어야지.”
“읽기만 하면 다야? 이해를 해야 말이지.”
“나는 저 나이에 초한지를 읽었는데, 무슨 소리야. 그냥 읽으면 되는 거야.”
“뭐야. 잘난 척이나 하구. 자기가 그랬다고 아들도 그래야 해?”
남편과 내가 이 책이 초등학교 6학년이 읽기에 어떤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쓰고 보니 부끄럽다. 결론도 없는 말다툼으로 끝났다. 작은아이가 옆에서 들었으면 엄마와 아빠는 또 싸운다고 했을 것이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가 어떤 걸 느꼈을지 궁금했다.
학교에서 한 학기 한 책 읽기로 6학년 전체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다. 나도 읽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함께 읽었다. 아들에게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라고 물어봤더니, “아니.” 라고 했다. “엄만 재미있던데, 넌 어땠어?” 했더니, “글쎄...” 라고 짧게 답하고 말았다. 아들이 나와 함께 감동을 나누지 못해서 속상했다. 그런데 나도 이 책을 알고 있었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다 읽었으면서, 열세 살 아들에게 그 재미와 감동을 함께 나누자고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싶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이 책에서 느끼는 만큼, 기억하는 만큼 간직하고 있으면 될 것이다.
다만, 유년 시절 이야기에서 보여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작가의 유년기 모습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다릴 때 조바심 내지 않고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집에서 먼 학교를 다니느라 혼자 산을 넘어서 다니면서도 외로워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을 잘 찾아냈으면 한다. 그 방법으로 책을 읽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며 공상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건 엄마의 몹쓸 욕심이니까 접어두기로 한다.
이 소설이 엄마인 나에게 특히 좋았던 건, 성장소설답게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준 것 때문이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엄마가 하는 모든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서울에서 개성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찾아오신 할머니를 모른 척 하려고 했다. 그리고 가족끼리 서로 챙기고 끈끈한 것조차 싫어했던 사춘기 박완서 소녀를 보면서, 그런 모습이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구나 하며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른다. 이 부분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이 되어 주었다. 부쩍 짜증이 늘고 말대답도 많이 하는 우리 아이들은 잘 성장하고 있으니까, 몰아세우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내용 파악하기 바빴는데, 다시 읽을 때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야성의 시기’ 부분이 제일 좋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할아버지, 올케언니, 숙부의 죽음 등 가족의 슬픈 이야기 그리고 이념 갈등과 6·25 전쟁으로 혼란한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과거가 나와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야성의 시기’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좋았다. 나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원주, 영월, 삼척에서 보냈다. 1980년대 초에는 원주에서 다세대주택 2층에 살았다. 1층은 고기를 파는 식당이라 고기 냄새가 솔솔 우리집으로 올라올 때면 입에 침이 고여서 참기가 힘들었다. 하루는 2층에서 계단에 기대서 엄마가 언제 오나 기다리다가 계단 난간 사이로 떨어져서 1층 대문에 부딪힐 뻔 했다. 얼굴에 멍이 들었는데도 울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고 했다. 정신없이 나를 업고 엄마는 병원으로 달렸다. 다행히도 큰 이상은 없었다. 그 때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내 머리가 그 사건 때문에 나빠진 게 아닌가라고 자주 말한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삼척에 살았을 때는 아빠와 손을 잡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유치원에 다녔었다. 우리집은 1층 단독주택이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우리 4남매는 밤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하늘땅 게임으로 짝을 지어야 했다. 2층 집에 사는 친구네 갔다가 그랜드피아노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고 부러워했던 일도 있었다. 영월에서는 그야말로 야성의 시대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9시까지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저녁을 안 먹었을 리가 없는데, 밥 먹은 기억은 없고 어둑해지도록 집 근처에서 숨을 곳을 찾아 돌아다녔던 장면들만 남아 있다. 송충이가 팔에 붙어 소리를 질러서 술래한테 걸린 일도 있었다. 1980년대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그때가 독재에 맞서 싸우던 시대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저 1988년 올림픽만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어린 시절도 일제시대만큼 혼란한 시대였지만 나는 꿈에도 모르고 그저 행복했었다. 자연과 더불어 신 나게 뛰어 놀았던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선물을 주지 못해 속상하다.
작가의 엄마를 보면서 우리 아빠와 엄마도 생각이 났다. 자식들을 서울에서 공부시키려는 교육열은 우리 부모님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고 특히나 공부가 특기였던 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의 외고로 보냈던 극성스러우신 분들이다. 자식 네 명을 사립대를 보냈으니 지금은 그나마 있던 땅도 다 팔고 남은 게 없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엄마는 친구들을 만나면 오빠야 장남이니까 두고라도, 딸들 셋은 그냥 여상이나 보낼 걸 그랬다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우리들한테 서운한 일이 있으면 특히 더 그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 남매는 살기 바쁘기도 하고 태어나길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엄마한테 살갑게 대한 적이 거의 없다. 반성 좀 합시다!
이 책이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는 박완서 작가님의 기억력에 감탄했고, 필력이 정말 부럽다. 일제시대에 개성 근처 박적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야기와 조부모와 숙부네 가족들, 그리고 작가의 세 식구들을 통한 가족 이야기, 1945년 광복을 지나 어수선한 세상을 살면서 1950년 대학에 입학한 해에 6·25를 겪는 등 격변의 시대 이야기를 어떻게 다 담을 수 있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분명히 작가는 매일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뚜렷한 기억력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더 오래 간다.” 라는 말이 있듯이, 기록이 없이 이렇게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수선한 세상에서 피난을 다니면서 어떻게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이렇게 눈에 선하게 그려지도록 글로 옮겨 놓다니, 타고난 작가인 것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쌓아놓은 독서의 힘일까?
나는 이렇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길 수 있을까? 뭐 대단한 인생이라고 그걸 글로 남길 생각을 하는 건지…… 사십 대가 되면서 그동안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서야 말이다. 나의 십 대는 너무 먼 미래를 동경해서 멍한 상태였고, 이십 대는 허공을 향해 뛰어 다니느라 실속이 없었다. 삼십 대는 엄마로 살긴 했으나, 힘들다고 울부짖으면서 육아를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게을렀었다. 그렇다면 이미 시작된 나의 사십 대와 그 뒤로 이어질 삶은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까? 고민이다. 아니 걱정이 앞선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걱정만 하고 말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떤 뇌과학자가 우리의 뇌가 사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 초반에 가장 활발히 움직인다고 했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찬란한 희망을 안겨주는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황폐한 곳에서 홀로 남겨져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다가 극적으로 사고의 전환을 겪는 내용이 나온다. 자신이 그동안 겪어왔던 것들을 글로 남기겠다는 책임감과 집념이 보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고 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 떠올랐다. 박완서 작가는 벌레였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나온 세월들을 언젠가 글로 표현할 것 같은 찬란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똑바로 정신 차려서 깨어 있어야겠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록하고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