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에게,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
중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이 대뜸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도 했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 이제는 본격적으로 공부도 좀 하고 제 길을 찾아가려나 기대했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보다 오히려 게을러졌고,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에 가질 못하니 학생인지 아닌지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하는 나이에 무기력을 먼저 배우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사춘기니까 기다려줘야 하나. 누군가 그랬다. 사춘기 아이들은 임산부 같다고. 자꾸만 늘어지고 지쳐있다고 말이다. 우리 아들이 딱 그 상태였다. 안쓰러워서 그냥 지켜보자고 다짐하다가도, 걱정과 조바심에 등짝을 몇 대 후려치고 싶은 순간이 자주 왔다
이런 나의 현실 속에서 『이 땅에 태어나서』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엄마인 나에게는 아산 정주영의 인생이 그저 남의 집 잘난 아들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었다는 정주영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아침잠을 못 이겨서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여는 우리 아이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솔직히 나도 아이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래서도 나는“잘난 아들을 낳아놨으니 산신님은 그저 내 아들이 돈을 낳게 해주시오.”라고 당당히 빌 수 있는 정주영 어머니가 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그의 어머니가 대단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아이를 보면 불안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콕콕 쑤시는 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 아이의 모습이 지금의 나 아니면 예전 그맘때쯤의 내 모습이랑 닮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가. 나를 바라보는 불만과 경계의 눈초리는 그동안 내가 저 아이에게 보여준 눈빛과 행동이 아니었을까 되짚어 보게 된다. 아이를 걱정할 일이 먼저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면서, 내 인생부터 점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산 정주영은 방정환의 동화 『만년샤쓰』의 주인공 창남이와 닮았다. 양복바지가 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을 붙이고 다녀도 늘 쾌활한 그 아이가 떠올랐다. 티셔츠를 못 입고 맨몸이어도 학교에 씩씩하게 가는 창남이처럼 정주영은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핍을 통해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야겠다면서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동네에 불이 나서 헐벗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창남이처럼, 정주영은 어느 날 새벽 남대문 근처에서 리어카를 미는 부부를 보며, 그 사람들의 엄숙한 삶에 대해서 유대감과 존경심을 놓치지 않았다.
가난과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 아이에게 창남이와 정주영은 너무도 낯선 사람들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걸 채워나가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런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하면 아들은 그 말을 들을까. 강원도에서 4남매 중 둘째로 자라면서, 부유했던 적은 없지만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 역시 해보지 못했던 것을 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엄마의 행패일 수도 있다.
정주영의 살아온 이야기에는 1945년경 스무 식구 대가족이 모여 살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울 돈암동에 집을 마련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네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함께 살았다. 맏아들의 의무감과 숙명이란 엄청난 것이구나 하며 존경심이 든다. 그리고 대가족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하는 맏며느리인 부인과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여덟에 시집을 온 둘째 며느리를 상상해 보면, 그 시절을 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생각난다. 여기에도 돈암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기하게도 정주영과 박완서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가까운 공간에서 살았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우리나라의 암흑기를 겪었던 사람들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혼란한 미군정기를 지나, 1950년 6·25 전쟁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면서 그때의 기록을 남겨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왕에 이 땅에 태어났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잘 가꾸고 만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먼 훗날에 돌이켜 보면, 지금이 비록 사소하더라도 소중한 우리의 역사가 될 테니까 말이다.
정주영은 매일 해야할 일이 즐거워 설레고, 소풍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그리고 현대중공업 등 굵직한 회사를 만들고 경영하면서 늘 그렇게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대로만 가득찼을까?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는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도 계속 좋기만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완공 후에는 정말 뿌듯했겠지만, 그 어깨에 짊어진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텐데 그걸 감당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긍정적인 사고와 시련을 겪어도 실패는 없다는 뚝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가르치거나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게 알려주면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분야라면 열심히 배워서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말이다. 말도 안된다는 것을 나도 안다. 이거야말로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기주도학습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뻔하지만 가장 어렵다는 그 학습법 말이다.
정주영은 하늘이 점찍어둔 운이 좋은 사람인 건 아닐까. 그런 핑계를 대 본다. 그런 운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내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산은 운도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때’를 알고 잘 잡아서 성공하고, ‘나쁜 때’는 그동안의 성실성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잘 수습할 수 있어서 운이 따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했다. 사람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만 하면, 운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한강의 기적’속에 기적이란 없었고, 다만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었을 뿐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
정주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옛날 이야기라고 하며 귀를 막을 것이다. 그래, 시대가 정말 다르긴 하다. 정주영이 한창 일을 할 때는 근대화로 들어서는 단계이고 고속성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저성장시대 속에서 더욱이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뒤엎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예견한 듯 미리 준비한 기업이나 사람들은 이 틈에서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살다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정주영 같은 큰 회사 회장님이 될 수 있다며 장밋빛 희망을 안겨주는 게 맞을까? 아이들이 먼저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이 커버린 아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전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 뻔하다. 오히려 사춘기의 반항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내 인생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가꿔 나갈지 고민할 시간이다. 물론 아이들과 가족 곁에서 말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엄마만으로는 살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만들어가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어야겠다. 엄마는 자식을 마음대로 끌고 가려고 해서는 안 되지만, 쉽게 포기하고 놓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주변을 맴돌면서 부지런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면, 그 영향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비웃을 테면 비웃어라.”라며 자신의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당당하게 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먼저 나부터 그렇게 살아가기를……. 오늘은 이만큼이니까, 내일은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자꾸나!
“어? 너 들으라고 한 말이 아냐. 혼자 중얼거린 거야. 오해하지 마!”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게 뭐냐고 물으면 아이는 그저 웃으며 대답하겠지.
“게임.”
이 답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어렵고도 헤쳐나가기 힘든 길이 나에게는 바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기꺼이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