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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Jul 17. 2024

다시, '쓰는 사람'이 된 이유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브런치로 이어지는 '쓰는 사람'으로 살기

기가 막히게도 나는 미꾸라지형 인간이었다. 늘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두었고, 그 구멍을 기가 막히게 제때 찾아 잘 빠져나갔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완벽하게 이루었다고도 할 수 없지만,힘들고 괴로웠던 적도 거의 없었다. 자랑이냐고? 아니, 감사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늘 마음이 허전했었다. 왜냐? 문제는 늘 인싸가 되고 싶었던 것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나만 바라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것이다. 굳이 꼭 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시작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유아적 모습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20대 대학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결혼을 했으며, 30대에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며, 40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내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위기가 몰아쳐왔다. 45세였다. 마흔부터 생긴 이명이 심해졌고, 매일매일 피곤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도 그렇게도 힘이 들었고 짜증이 치밀었다. 물론 남들에게는 꾹꾹 참다가 남편과 두 아들들에게 인상만 쓰고 이유없이 막 화를 냈었다. 몸이 말을 안 들으니 그저 나쁜 생각만 들었다. 그때 독서 수업은 도대체 어떻게 했던 걸까?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암에 걸렸다. 암은 암인데 아주 착한 암이었다. 갑상선암의 아주 초기 단계. 수술만 하면 완벽하게 자국도 남지 않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때도 역시 미꾸라지 인생인 나는 지독히도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암이 걸린 몸만이 위기는 아니었다. 중3인 큰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다른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로 연결된 맘들의 관계가 자꾸만 어그러져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져 갔다. 낯빛이 점점 어두워져갔고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는 내 얼굴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왜 나한테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지 억울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누군가를 다른 어떤 것을 핑계 삼아 나는 다시 미꾸라지의 본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때는 구멍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자신을 미워하는 길을 택했다. 그냥 나를 내버리고 싶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밤에 다음 날 눈 뜨지 않게 해주세요 라며 빌고 또 빌고 하루를 마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고 이런 나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그때 나를 번쩍 일으킨 것은 둘째아이의 따스한 말과 곁에 있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둘째가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동안 아이는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장 미안한 부분이다. 우울해 하며 웃지 않는 엄마를 옆에서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하나 나를 일으켜 세운 말 한 마디가 있었다. "걱정하는 것은 원치 않은 것을 비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다. 그때 내가 걱정했던 그 많은 것들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허상이었다. 그걸 신경 쓰느라 왜 그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열심히 살았다고는 했지만, 그냥 정신없이 급한 일만 하느라 바빴고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었다. 나 자신을 돌보는 일 말이다. 방만하게 인간관계만 넓혔을 뿐,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었다.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삶을 단순화하고 내 가족들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의 눈과 입에 대해서는 관심을 껐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시간을 많이 갖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했다. 그리고 기억력이 쇠퇴하는 걸 막을 수 없기에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2007년에 개설했던 블로그를 다시 열어서 작년 말부터 매일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집중하고 싶은 걸 찾고 있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재테크를 해야 하나 하면서 관련 도서를 찾아 읽었다. 부정적 마인드가 문제니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하나 해서 유명한 책을 검색하고 추천을 받아 읽었다. 다 좋았다. 재테크 도서를 읽으니 경제 관련 뉴스가 귀에 들어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니까 뭔가 자극이 되어 좋았고 쓸데없이 감정 낭비와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어서도 유익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나는 재테크나 자기계발서, 소설이나 동화 그 어떤 책을 읽을 때도 '이야기'를 찾고 있구나.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가 살려달라고 울다가 주인 농부가 자신을 우물에 그냥 파묻어 버리고 죽이려고 할 때 농부와 이웃 사람들이 우물로 퍼부은 흙을 디디고 또 디디고 올라온다는 내용이다. 나는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자체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찾고 있다. 그래, 나는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고 싶은 거구나! 그렇게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고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도 아이들 안에서도 이야기를 찾아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고 모아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미꾸라지처럼 도망 가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그냥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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