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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Jul 18. 2024

세기말, 시골쥐의 서울 적응기(1)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 20세기말 버전의 나의 이야기랄까?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여기서 시골이란 지방을 대표하는 말이다. 서울도 'Seoul'의 서울이 아닐 수 있다. 시골과 서울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지방에서 이사를 많이 다니는 아이 J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야기다. 어쩌면 덜 자란 어른이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여섯 살 J는 아빠와 아침마다 아빠와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는 게 좋았다. 엄마는 절에 다녔지만 작은 동네에는 교회 유치원밖에 없었다. 종교나 믿음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J는 유치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집에는 여동생들이 두 명이나 있는데, 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3세, 갓 1세가 된 여동생들이랑은 뭘 해도 재미가 없었으니까. J는 국민학교 1학년인 오빠가 월화수목금토 학교에 가는 게 부러웠다. J는 꽃무늬 원피스에 하얀 타이즈를 신고 반짝반짝하는 검은 색 구두를 신었다. 아빠랑 집을 나서며 팔랑팔랑 뛰었다. 유치원을 다니는 것 자체보다는 그 길이 좋았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랑 같이 어딘가로 나서는 것이 설레고 마냥 행복했다.


J의 집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양옥이라기보다는 한옥집에 가까운. 엄마는 마당에 봉숭아꽃을 주로 심어서 세 딸의 손톱에 물을 들여주었다. J의 동생들은 마당에서 아장아장 뛰어 놀았고, J는 세 발 자전거, 오빠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넓지 않은 곳에서 이러저리 엉키면서 마구 놀았다. 좋았겠다라고 생각하면 착각. 이 집은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서 밤에 급하면 엄마를 깨워야 했다. 아니면 요강이 필수인 곳이었다.



아직 20세기 말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서울도 꽤나 멀었다. 기억을 거슬러서 몇 달을 그리고 몇 년을 건너뛰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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