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기댈 곳 하나 없고, 빛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몬스터 콜스』의 주인공 코너 오말리는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병이 깊어서 위태롭고, 아빠는 이혼 후 다른 가정을 꾸려서 먼 나라에 산다. 보통의 그저 포근한 할머니만큼만 돼도 괜찮을 텐데, 외할머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엄격한 분이었다. 마음을 터놓을 가족이 없었다. 게다가 이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와 학교폭력의 희생양이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믿었던 릴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퍼뜨려서 코너를 혼자로 만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코너는 매일같이 낭떠러지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모든 현실을 한꺼번에 감당하기에 코너는 너무 어렸다. 작가는 왜 이렇게 가혹한 현실을 열두 살 아이에게 던져준 것일까? 몬스터가 처음 나타나서 성난 울음소리를 냈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고 더한 것도 봤다고 하는 코너의 말은 안쓰럽다 못해 끔찍했다. 몬스터보다 더 무시무시한 현실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어놨구나 싶어서 작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주목! 몬스터는 왜 코너를 찾아온 것일까? 아니, 코너는 왜 몬스터를 부른 것일까? 다행히도 여기서 희망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할머니와 갈등을 겪으면서 코너는 어쩌면 몬스터가 자기를 도우러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몬스터는 코너를 구해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코너가 끔찍한 현실과 맞닥뜨려서 ‘진실’과 ‘진심’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려던 것이다. 코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라는 등의 교훈 같은 것을 담고 있지 않다. 모두 복잡하고 모순적인 짐승인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사악한 마녀이면서 좋은 왕비일 수도 있는 사람, 살인을 저지르고도 구원자가 될 수 있는 사람,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은 바를 수 있는 사람,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으면서도 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괴로워 하다가 마침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코너와 그 주변 사람들에 해당하는, 그리고 어쩌면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책에 나오는 그림만 보면 정말 두렵고 무섭지만, 잡아먹겠다고 코너를 위협하는 천상 괴물이지만, 몬스터는 코너의 든든하고 따뜻한 친구가 된다.
몬스터는 코너 마음의 병을 낫게 하려고 온 것이다. 엄마가 떠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던 마음이 함께 나타나면서 코너는 고통스러웠다. 그 그통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과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는데 인정할 수도 없었던 아이는 괴로웠다. 몬스터는 이 모든 마음이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라고 위로해 준다. 그 위로를 듣고 싶어서 코너가 몬스터를 부른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서,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결국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말이다.
몬스터가 나온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다. 하지만 이 어둡고 캄캄함은 밝고 빛나는 것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 주었다. 캄캄한 밤이 없다면 밝은 낮이 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코너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코너를 최악의 상황에 치닫게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코너는 하나 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외할머니와는 ‘엄마’라는 사랑하는 존재를 공통적으로 가졌다는 점을 깨달으며 화해를 한다. 엄마가 떠나려는 순간에 엄마를 꽉 붙잡으면서 마침내 엄마를 보낼 수 있게 된다. 너무 늦지 않게 말이다. 늦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몬스터가 그 자리를 함께해 준다. 친구 릴리와도 좋아질 것이다. 코너의 엄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코너가 똑똑히 보인다고도 하는 친구를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 열두 살 어린 아이에게 이토록 가혹한 현실을 던져 주었냐고 작가를 원망했었다. 이것 역시 모순이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 앞 부분에서 인용한 것처럼, 젊음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한순간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시간이 꽤 오래 계속된다.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말이다. 그걸 채워나가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다면 몬스터를 불러 보자. 엄마가 곧 떠날 수도 있는 힘든 상황에서 등 뒤에서 따스하게 지켜줄 수 있는 몬스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아, 책에서처럼 검고 무시무시한 겉모습 말고 좀 따뜻한 이미지라면 더 좋겠다. 밤에 이런 존재가 나타나면 그 속도 모르고 기겁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말고, 어딘가에 꼭 있을 몬스터를 불려보자!
“자, 이야기를 들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