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2007년 12월 7일, 서해안 만리포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 예인선과 홍콩 허베이 스피리트 호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엄청나게 많은 기름이 유출돼서 그 주변의 바다가 심하게 오염되었다. 전문가들은 바다가 회복되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어 기름 제거 작업을 해서 18개월 만에 바다는 제 모습을 찾았다. 그 뒤로 10년, 태안에 유류피해극복 기념관이 설립되었고, 이곳은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성지로 역사에 남았다.
이 이야기는 당시에 자원봉사를 가서 인연이 되어 결혼한 부부의 아들 오만리와 신혼여행지로 자원봉사를 하러 태안을 찾은 부부의 딸 태소원에 대한 내용이다. 5학년 5반 오만리와 이 반에 전학 온 태소원의 만남으로 두 가족이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오만리와 태소원의 인연은 어떻게 될까?
<목차>
1. 내 이름은 오만리
2. 전학생, 태소원
3. 만리와 소원
4. 소원이네 이야기
5. 우리집 이야기- 태안 방문
6. 만리의 소원
1. 내 이름은 오만리
내 이름은 오만리.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을 따라 지은 것이다. 왜 하필 그 이름을 따라했냐고? 그 얘기를 하려면 2008년 2월 태안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때 만리포 앞바다는 끈적끈적한 검은 기름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 근처를 지나던 유조선에서 기름이 새는 사고로 주변의 바다가 심하게 오염되었던 것이다. 우리 아빠랑 엄마는 같은 회사를 다녔지만 서로를 몰랐었다. 회사에서 기름 제거하는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친해졌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아빠의 모습이 엄마는 엄청 멋져 보였다고 한다.
“내 이름인데, 엄마 아빠 맘대로 막 지으면 어떡해? 나만 이상한 이름 지어 주구. 쟤는 나보다 낫잖아.”
나는 정말 내 이름이 싫다.
“갑자기 가만히 있는 나는 왜?”
쌍둥이 동생 오진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별명대로 오! 질리는 애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 이름도 그렇게 괜찮은 것 같지 않다.
“첨에만 그렇잖아. 만리야, 너 이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또 얘기해?”
엄마가 내 불만을 받아줄 리도 없었다.
“아니, 제발! 그 얘기는 정말 지겹단 말이야.”
“엄마랑 아빠가 만리포에서 만났으니까, 오만리 너가 지금 살고 있는 거잖아.”
“알겠다구요, 엄마. 이젠 그만!”
내가 이름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면, 꼭 이렇게 정리되고는 한다. 내가 포기하는 것이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새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너무 괴롭다. 친구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에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것 같다. 이건 여러 번 겪어도 편해지지 않는다.
2. 전학생, 태소원
“엄마, 엄마! 집에 있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가방을 멘 채로 엄마가 있는지 확인했다.
“오만리, 잘 갔다 왔니?”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오늘은 집에 있네.”
“잠깐 들어왔어. 엄마를 봤으면 인사 먼저 해야지. 손도 좀 씻구.”
엄마가 주방으로 가면서 말했다.
“진리는 못 봤어? 좀 같이 오면 안 되니?”
“왜? 반도 다른데……”
“너가 오빠잖아.”
우리 아빠 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편의점을 한다.
2학년 때였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을 한다고 했을 때 나랑 진리는 둘 다 엄청 좋아했다. 편의점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 아빠가 편의점 사장이라니…… 내가 사장이 된 것처럼 신이 났었다. 편의점 물건이 다 우리 것이 된 것 같아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쓰지 못해서 엄마도 같이 일을 해야 했다. 오르막길 골목길에 편의점이 있는데 외진 곳이라서 밤에는 아빠가 일을 한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이나 학원에 가는 오후에 엄마가 자리를 지킨다. 두 사람은 같이 일을 하면서 자주 말다툼을 한다. 우리가 보고 싸운다고 뭐라고 하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아, 맞다. 여자애가 전학 왔어. 내 짝이 됐구. 근데 내 이름을 한참 쳐다 보더라구.”
엄마를 따라가면서 내가 말했다.
“쳐다볼 수도 있지 뭐. 걘 이름이 뭐야?”
“태소원.”
“이름 예쁘다!”
“누군 좋겠네.”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우리 아들 이름이 특이해서 봤나 보네. 특별한 이름이니까…… 알지?”
엄마는 왼손 엄지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했다. 나는 엄마가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엄마, 근데 걔 좀 이상해. 내 이름 보고 웃는 애는 봤어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 애는 처음이야. 정말 내 이름 이상한 거 맞나 봐. 제발, 이름 좀 바꿔 줘!”
“그냥 본 거겠지. 전학 와서 낯설 테니까, 우리 만리가 좀 잘해줘.”
“내가 왜?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말씀은 안 듣고 내 필통만 계속 쳐다보더라니까. 이상해.”
“오늘따라 만리가 말을 많이 하네. 친구가 전학 와서 좋구나! 됐고, 손 먼저 씻고 간식 먹어.”
엄마는 내 얘기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주방으로 가버렸다.
그 뒤로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새 짝 생각이 계속 났다. 그 아이 이름은 태소원. 이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는 대부분 엎드려 있다. 머리카락은 얼마나 오래 길렀는지, 길이가 허리까지는 되는 것 같다. 뒷통수에서 끈 하나로 대충 묶었는데, 말꼬리보다 더 길고 진한 검정색이라서 밤에 머리를 풀고 나서면 딱 귀신 같을 것이다. 키는 나보다 한참 크고 깡말라서 전봇대 같다. 태소원은 수업시간에는 창 밖을 내다보고, 수업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 정말 이상한 아이가 전학을 온 것이다.
‘선생님은 왜 뭐라고 하지 않으시는 거지? 이런 애들은 혼을 내야 하지 않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가 뭐 아웃사이더야, 뭐야? 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3. 만리와 소원
청소 시간이었다. 우리 모둠이 청소를 할 차례였다. 나와 재윤이와 수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방을 정리한 후 청소할 준비를 했다.
“소원아, 오늘 우리가 당번이야. 같이 청소하자.”
수민이가 태소원한테 친절하게 말했다. 그런데, 태소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방을 챙겨서 교실을 나서려고 하는 것이었다.
“소원아, 내 말 안 들려?”
수민이는 당황하면서 말했고, 나랑 재윤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야, 태소원. 너 좀 심한 거 아니야? 너도 우리 모둠이잖아. 같이 해야 할 것 아니야.”
내가 태소원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심하게 말할 건 아니었는데, 평소에 걔가 마음에 안 드니까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말해버렸다. 그런데 태소원은 대답은커녕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메고 나가버렸다.내가 태소원을 따라 나갔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태소원 겉옷을 잡다가 걔가 밀어서 계단 난간 모서리에 부딪쳐 넘어지고 말았다.
“나한테 말 걸지 마! 나는 네 이름도,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처음으로 입을 뗀 태소원이 한 말. 정말 충격적이었다.
“뭐, 뭐라구? 야, 태소원. 내가 너한테 뭐…… 뭘 잘못했는데?”
나는 당황했고, 팔도 너무 아팠다.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막 쏟아질 뻔 했다. 하지만 거기서 울면 얼굴을 못 들 것 같아서 가까스로 참았다. 얼른 그 자리를 피해서 교실로 돌아가는데, 재윤이와 수민이가 나와서 보고 있었다.
‘에이씨, 짜증 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리고 집에 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샤워를 하면서 몸을 살펴봤더니, 왼쪽 팔이 보라색으로 멍이 들었고, 계단 모서리에 부딪친 엉덩이뼈가 아팠다.
‘뭔 여자애가 그렇게 힘이 세?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도대체?’
나는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났다.
‘엄마가 알면 또 이것저것 물어볼 텐데, 말하기 싫은데, 어쩌지?’
“오만리, 샤워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 계속 중얼대면서.”
엄마가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쫌! 그냥 막 들어오지 좀 마!”
나는 엄마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났다.
“어? 왼쪽 팔에 그거 뭐야? 멍 들었는데.”
“별 거 아니야, 엄마.”
“뭐가 아무 것도 아니야? 누가 꼬집었니? 좀 심한데…….”
“엄마, 그냥 모른 척 해줘.”
“어떻게 아들이 다쳤는데, 엄마가 모른 척 해. 얘기해 봐!”
“말하고 싶지 않아!”
엄마는 나를 흘겨보더니 욕실을 나갔다. 엄마가 나한테 서운해 하는 것은 알지만, 난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엄마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게 초인종이 울렸고 엄마는 현관 쪽으로 갔다. 재윤이가 놀러 오기로 했었다.
“안녕하세요!”
재윤이가 들어오면서 말하는 소리가 욕실 문 사이로 들렸다.
“잠깐만 기다려, 재윤아, 나 샤워 거의 다 끝났으니까.”
나는 욕실 문을 살짝 열어서 말했다. 그리고, 사워를 대충 끝내고 물기도 제대로 안 닦고 욕실을 나와 버렸다.
“재윤아, 학교에서 만리한테 무슨 일 있었니? 만리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단다.”
엄마가 재윤이한테 물어봤다.
‘이런!’
나는 재윤이를 막지 못했다.
“아……, 그거요?”
나는 재윤이한테 눈치를 줬지만, 이미 우리 엄마가 옆에 있어서 재윤이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거 태소원이 그런 거예요. 태소원이 만리를 계단에서 밀었어요.”
“뭐라구? 태소원이 누구지? 아, 그 전학 온 아이. 근데, 만리랑 소원이랑 무슨 일 있었어?”
엄마는 계속 물어봤다.
‘큰일이군! 우리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태소원 엄마한테 전화하겠는데.’
나는 우리 엄마를 막을 방법이 없나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재윤아, 내 방으로 가자.”
일단 재윤이가 더 얘기하지 못하도록 내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수밖에.
“만리, 너. 이따가 엄마한테 자세히 얘기해 줘야 돼. 니가 뭘 잘못했으니까 걔도 그런 거잖아. 재윤이 놀러왔으니까 일단 놀아.”
“난 잘못 한 거 없다구, 엄마.”
“맞아요. 만리는 청소 같이 하자고 한 거 밖에 없어요. 태소원이 백퍼 잘못한 거예요.”
재윤이가 내 편을 들었다.
“고맙다. 김재윤!" 근데, 우리 엄마가 알았으니까 피곤해지게 생겼어. 에이, 모르겠다. 일단 게임이나 하자 했어요.”
두 시간 후, 재윤이가 간 후 엄마는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하라며 나를 엄청 괴롭혔다. 청소시간에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했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태소원 엄마한테 전화 할 기세였다.
“만리야, 엄마가 우리 만리가 다친 거 속상해서 태소원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어. 걔가 일부러 그랬든 아니든 간에, 걔는 나쁜 버릇이 있는 거니까 고쳐야지. 그리고 사과도 하라고 할 거야. 괜찮지?”
“태소원이 일부러 민 건 아니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일단, 그 엄마한테 말은 해야지. 딸이랑 잘 얘기하고 연락 달라고 할 거야. 엄마는 정말 화가 나지만, 잘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마!”
안녕하세요. 소원이랑 같은 반 짝 오만리 엄마라고 합니다.
소원이가 오늘 계단에서 만리를 밀어서 만리가 좀 다쳤습니다.
소원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조심하라고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소원이랑 얘기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우리 엄마는 다음 날 태소원 엄마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문자를 보냈다.
‘엄마들끼리 싸우면 어떻게 하지? 우리 엄마가 소리 지르면 안 되는데…….’
나는 걱정이 됐다. 태소원이랑 엮이는 건 정말 싫은데 말이다. 일이 커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4. 소원이네 이야기
엄마는 소원이 엄마랑 통화를 하고 그 다음 날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엄마가 얘기해 준 태소원네 이야기는 깜짝 놀랄 소식이었다.
태소원 네 부모님은 신혼여행으로 태안에 자원봉사를 갔었단다. 우리 엄마, 아빠처럼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이랑 인연이 깊으신 거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흥분하면서 반가워하던지, 우리 엄마는 못 말린다니까. 가까운 곳에서 태안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사람들을 만나다니, 정말 신기하다고 계속 얘기를 했다. 태소원 네 부모님은 원래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원이 아빠가 갑자기 태안으로 자원봉사 겸 신혼여행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고. 걔네 아빠 고향이 그 근처라서, 여행을 못 떠나겠다고 하셨다. 소원이 엄마는 신혼여행을 왜 자원봉사로 가냐고 아저씨랑 싸우다가, 엄마가 결국 양보하셔서 서해안으로 갔다. 소원이 엄마는 우울증이 왔고, 기름을 닦다가 두통이 심해서 약을 먹으면서 힘들게 버티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원이 이름이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태소원 엄마, 아빠에게도 그곳이 큰 의미를 가지니까, 기념으로 딸 이름을 소원이라고 지은 것이다 우리처럼. 소원이는 그래도 이름이 괜찮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나처럼 만리는 아니니까!
아, 태소원이 어두워진 이유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었던 거였다. 기름유출사고 10주년을 맞아서 태안에 유류피해극복 기념관이 생겼는데, 거기도 들르고 안면도와 만리포 해수욕장에 가기 위해 태소원네 식구가 작년 여름에 여행을 떠났었단다. 그런데, 거기서 음주운전을 하던 사람의 차랑 충돌사고가 나서 소원이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정말 섬뜩한 건 동생이 나랑 닮았다는 것. 나야 사진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원이가 보기에는 그랬나 보다. 동생이 키가 나 만하고 얼굴이 하얗고 닮았다나. 동생이 사라져서 그 충격으로 애가 이상해졌다는데,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태소원 네 엄마도 태소원도 그 근처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해서 여기 외가 근처로 이사를 왔다고.
나는 사실 내 동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동생이 내 레고를 몰래 가져가서 놀다가 망가뜨리고 할 땐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얘가 없으면 심심하고 허전할 것 같다. 소원이는 동생을 엄청 예뻐해 주고 잘 챙기는 누나였다니까, 얼마나 슬플까? 다정했던 애가 저렇게 차갑고 무섭게 변하다니, 정말 많이 힘들었나 보다.
소원이 엄마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생활이나 나한테 했던 행동을 보면서 소원이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우리 엄마한테 얘기할 수밖에 없었겠지. 엄마는 따지려고 만났다가 얘기를 듣고 울면서 돌아왔다. 소원이 엄마도 울음을 참으면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미안하고 불편했다.
“만리야, 소원이네는 우리랑 인연이 깊다. 소원이가 원래는 아주 착한 아이였대. 동생이 그렇게 되고 나서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좀 잘해줘, 아들!”
엄마는 소원이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그러더니, 태소원 엄마랑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소원이 엄마는 엄마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원이를 데리고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사과를 시켰다. 나는 정말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다. 말도 잘 안하는 애가 사과를 하러 우리집까지 오는 데 얼마나 힘들었겠냐구!. 내가 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소원은 여전히 학교에서는 말을 많이 안 한다. 그래도 성격 좋은 수민이가 계속 말 걸고 급식 먹을 때도 같이 먹고 하니까, 얼굴이 좀 밝아졌다. 나중에 들었는데, 수민이한테도 그날 대답도 안한 것 사과했다고 하더라.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애인 것 같다. 수민이랑 둘이 학교 끝나고 떡볶이도 먹으러 간다고 들었다. 소원이가 밝아져서 다행이다. 계속 신경 쓰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5. 우리집 이야기- 태안 방문
어느새 여름 방학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태안을 가고 있다. 엄마, 아빠한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 두 분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곳이라는 것 말이야. 다시 찾은 만리포 해수욕장은 이제 서핑 천국이 되었다. 십 여년 전에 이 바다가 검은 색으로 온통 물들었다고 하면 그때의 소식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 바다가 된 건 다 엄마랑 아빠 같은 사람들이 와서 흡착포로 기름을 걷어내고, 맨손으로 천을 들고 기름을 닦아낸 덕분이지. 아들들아, 자랑스럽지?"
"아, 네. 그럼요 그럼! 그렇지, 동생?"
내가 동생을 보며 씽긋 웃었디.
"그럼, 우리 아빠, 엄마가 최고지!"
동생도 맞장구를 쳤다.
"우리 아들들이 오늘은 아주 사이가 좋네. 아이구, 예뻐라! 엄마가 뽀뽀를 날려주겠다, 발사!"
엄마도 빠지지 않고 말했다.
"이 바다가 회복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거라고 했는데, 2년도 안돼서 바다가 제 모습을 찾았었지. 우리 토종 돌고래 상괭이도 돌아왔다는구나. 웃는 고래, 상괭이 기억나지?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잊지 마!”
아빠는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간 채로 말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아빠한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도 힘들게 사는 어민들이 많아. 그때 사건으로 암에 걸린 사람들도 있다 하구. 여긴 조손가정도 많구.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엄마도 한마디 했다.
6. 만리의 소원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학교에 일찍 갔다. 첫번째로 잠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앗! 소원이가 그 다음에 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인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자리도 멀고 해서 모른 척 했다. 소원이도 아무 말 안 했다. 나는 곁눈질로 소원이를 살짝 봤는데, 긴 머리를 확 자르고 단발머리로 변신했다.
'왜 머리를 자른 거지?'
나는 정말 궁금했는데, 물어볼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다행히도, 수민이가 들어오면서 소원이한테 물어봤다.
"소원아, 머리 잘랐어? 무슨 일이야? 근데, 아주 잘 어울려. 예쁘다!"
수민이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줬다.
“응, 머리카락 잘라서 기부했어."
"엥? 웬 기부?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가 있어?"
"25cm 이상이면 기부할 수 있대서, 머리도 정리할 겸 기부했어."
소원이는 1학기랑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도 많이 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저렇게 쟤가 예뻤었나? 기특하네, 기부도 하구.'
나는 소원이와 수민이가 하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워서 엿듣고 있었다.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누구랑 결혼해서 자원봉사하며 살면 어떨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러는 거니? 어이 없네!’
나는 귀가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소원이가 좋았던 것일까? 아니, 무슨!
‘웃으면 나쁘지 않은데 제발 좀 웃고 다녀라!’
나 오만리, 소원이 생겼다.
<마무리>
서해안 바다를 살린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의 활동과 이 때의 기록물들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2022년에 등재되었습니다. 평범한 우리 한 명, 한 명도 역사의 한 장면에서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