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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24)'빈처(貧妻)'

가난한 예술가와 아내의 삶과 사랑

by 동화샘 지연

[작품 정보]

단편소설, 사실주의 소설

1인칭 주인공 시점

현진건 자신과 아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한다.



[줄거리]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무능하게 살 수밖에 없는 지식인 작가와 아내의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그렸다.

근대화 문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주인공 '나'는 적응하기 어렵다. 중국과 일본에서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셨지만 현실에서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처가 덕으로 집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살림을 시작했지만, 2년 여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부부는 궁핍해졌다. 세간과 옷 등을 저당 잡혀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나의 친척인 T가 집에 와서 자신의 아내의 것이라며 보여준 양산을 보고 부러워하는 아내를 보며 안쓰럽기도 하지만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한다. 처형이 사다준 신발을 보며 '나'는 아내에게 했던 행동들에 미안함을 느끼고 아내의 믿음과 사랑을 깨닫는다.



[등장 인물]

K: 주인공 '나'. 결혼을 하고 중국과 일본을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반거들충이(무엇을 배우다가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로 돌아왔다. 창작과 독서에 전심력을 바치나 남에게 인정될 가치가 없어서 근 2년을 벌이가 없다.

아내: 부잣집 딸이었지만 K와 결혼한 이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되어 세간과 의복을 팔아 생활을 이어간다. K를 유일하게 응원하고 믿어주는 사람.

T: 주인공의 친척. 처세술이 좋고, 한성은행에 다니며 밥벌이를 잘 하고 있다.

처형: 남편이 돈을 잘 벌어 비단을 두르고 다닌다. K의 아내인 동생이 안쓰러워 신발을 사다 준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 늘 불만을 안고 산다.

처형의 남편: 사업 수완이 좋으나, 요리집과 기생집에 드나들며 문란한 생활을 한다. 이를 탓하는 아내를 걸핏하면 때린다.



[인상깊은 문장]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주인공 '나'가 아내를 보며 두 번 마음속으로 부르짖은 생각. 첫번째는, 아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헌신적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밤이 깊도록 다듬이를 하다가 그만 옷 입은 채로 쓰러져 곤하게 자는 파리한 아내의 얼굴을 보며 감격이 극하여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두번째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무명작가인 나를 인정하고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T가 집에 왔다가 가고, 짓고 있던 소설의 결미를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양순했던 아내가 한 말이다. T의 아내의 양산에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하느라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는 않지만 불쾌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워 T는 이렇게 말한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어! 저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 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빈 말이라도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진작에 좀 하지! T의 아내의 양산을 부러워했을 때도, 처형이 아내 신발을 사왔을 때도 비난하거나 서운해하지 말고, 이런 희망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감상이라기보다는 뒷담화]

가난한 예술가와 그 사람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이다. 특히 이렇게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아내' 같은 사람이 존재할까 의문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 여전히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진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 사는 자신의 모습과 아내에 대한 마음을 담아본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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