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즐겨야 살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학기 중에 인턴으로 일했던 건설현장의 소장님이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3개월 정도 일을 하다 공무원 시험의 세계로 빠져든 지 2년 하고 반년. 대기업의 무지막지한 노동의 세계가 싫어 공무원을 도전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남는 건 조선왕들의 순서뿐이었다. 무얼 했고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참회를 거쳐 무슨 일이라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아는 지인분의 소개로 중소기업을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리 좋더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하고. 이렇게만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면 하고 싶은걸 다 하면서 지낼 수도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예전 건설현장은 정말 일이 많아 제때 퇴근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는 업무도 많이 없고 연봉은 반토막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란 걸 선물 받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올바른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3일이란 시간이면 충분했다.
회사의 조직도는 단순했다. 한 명의 대표와 두 명의 이사. 그리고 무역 회계 도매 웹디 CS 쇼룸 배송 7개의 부서가 있었다. 수입품을 수입하여 유통시키는 회사였고 난 배송팀에 들어가게 됐다. 대표는 쇼룸에 주로 상주하고 한 명의 이사는 사무실에서 배송을 제외한 모든 걸 신경 썼다. 나머지 한 명의 이사는 배송을 책임졌다. 대표의 와이프가 사무실 이사고 대표의 형이 배송팀 이사다. 즉 가족회사의 중소기업에 난 취직을 했던 것이다.
일은 굉장히 쉬웠다. 모든 일은 사이클이 존재하는데 대규모 프로젝트, 즉 아파트 재건축 현장 같은 곳은 적어도 8개월의 사이클을 가졌다. 한 현장의 시작과 끝의 기간이 8개월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의 파트는 조경이었던 지라 건축과 토목보다는 짧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사이클은 굉장히 짧았다. 물건 입고-검수-배송 이 세 단계를 거치는데 물건 입고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입고된 이후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돌아가는 상황, 즉 사이클을 알게 되면 업무가 굉장히 수월하다. 미래의 업무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이클이 짧은 대신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입사 후 3일이 지난 시점에서 정시퇴근이 불가능해졌고 야근은 정말 밥먹듯이 자연스레 진행됐다.
물론 한 군데의 중소기업을 다녔지만 이 중소기업에 대한 걸 한번 차근차근 써 보려 한다.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데도 버틸 자신이 있다면 도전하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