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이모의 추천으로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를 보고 오니 금요일 밤이 깊어간다.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괜스레 사과 반쪽, 천혜향 작은 것 하나, 내친김에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모처럼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붕어 싸만코까지 꺼내 한입 베어 물어본다. 좋은 영화는 끝난 뒤까지 쉬이 잠을 재우질 않는가 보다.
아무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한 적 없지만 스스로 군대 생활하듯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간 상태로 공무원 생활을 하는 영화 속 국희 씨 모습은 그냥 오랫동안 굳어온 내 모습인 것만 같았다. 춤 자체를 즐기나 스텝이 자꾸 꼬이는 몸치의 댄서가 있다면, 나는 하는 일 자체에 의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10년 넘는 시간 동안 조직에 섞이는 것을 부쩍 힘들어하는 '조직치'의 댄서였던 것 같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없이 온 에너지를 다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아야 했던 국희 씨처럼...
그러면서 내 안으로 스며드는 의심과 불안, 자책, 그리고 조직의 틀 안에 나를 끼워 맞춤으로써 자연 따라오게 되는 독특한 개인으로 존재할 개성의 상실과 바닥을 치는 자존감 등이 오래 나를 괴롭혔었다. 사람들은 내가 잘 웃는다며 때로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딱딱하고 거친 질감의 현실에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고 선 내 영혼을 깊숙이 꾹꾹 눌러 숨겨놓은, 그저 사회적으로 단련된 혹은 타고난 습성의 반사적인 발현이었던 것인지 나는 친구 혹은 이모에게 가끔 진지하게 그만두고 싶다고 상담을 했더랬다.
실제 그럴 용기와 대책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할 때마다 친구 정미가, 은지가, 이모가 말려주었고 난 매번 설득당해 다시 조직이라는 현실로 돌아왔다.
국희 씨가 플라멩코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고 안정과 자유를 찾아가듯 내게는 바로 일을 통해 만난 민원인들께서 이 일을 계속할 이유이자, 또 하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내게 주시려고 오는 길에 따셨다며 옷에 딸린 주머니를 한쪽 한쪽씩 벌려내여 반짝거리는 갈색의 광채를 발하는 밤들을 책상 위로 두두둑 쏟아내며 수줍게 웃으시던 어머님, 집에서 기른 배추 한 통을 들고 오셔서 다른 사람이 못 가져가도록 쓰레기통 옆에 위장하듯 숨겨놓으셨던 아버님, 군고구마를 따뜻한 상태로 먹게 해 주시려고 점심시간에 맞춰 구워 보조보행기에 싣고 양다리 균형이 맞지 않는 불편한 다리로 걸음 해주신 어머님...
당신들께서는 베풀어 주신 온정이 한 영혼에게 기쁨으로 즐기는 플라멩코를 추게 하여 주셨음을 알고 계실지!
국희 씨가 영화 끝 무렵 딸과 쏘울메이트 연경에게 고백하는 대사는 "추락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과 "난 이제 아무렇게나 춰도 플라멩코야."라고 하는 외침이다.
국희 씨에게 플라멩코라는 춤이 영혼으로 스며들어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를 자유케 했듯이 사랑의 온정으로 내 안에 스며들어 나를 치유시키신 분들이 내 영혼을 태생 시 받은 모습으로 회복시키며 내게 행복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셨음을 고백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 영화 속 끝 무렵 대사는 "10년 넘는 내 영혼의 방황의 끝이 지금 이 순간들을 위한 거라면 내 인생 영화는 마력의 해피엔딩!"이라는 것과 "저를 이 길로 이끌어 이 분들을 만나게 해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좋은 영화 추천과 함께 언제나 지혜와 응원으로써 이끌어주는 이모와 변함없는 우정으로 함께해 주는 고운 벗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오래 인생의 스텝을 함께 밟아나가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