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단순하게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으로만 나뉘는지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해피엔딩에도 조금은 심심한 해피엔딩이 있고, 새드엔딩에도 해피엔딩급의 찬란한 성장과 결실의 과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돌아오기 힘든 길로 떠난 님을 한없이 서서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렸다는 우리나라 전래동화 이야기는 익숙하다. 돌이 되어버릴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아리랑의 한의 정서를 품으며 지조와 정절, 의리를 지키던 그녀들...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이 어딘가 내 안의 그릇에 담겨 있던 아주 익숙한 모습 같다.
요즘 출퇴근길에 자주 반복해서 듣게 되는 음악선율이 있다. 뮤지컬 음악을 좋아해서 <웃는 남자>의 '그 눈을 떠'는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테이프이라면 늘어지게 들어 가사를 외워 따라 하는 수준이 되었다. 또 함께 듣다 보면 자동재생되는 <하데스타운>도 마찬가지로 직접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자주 듣고 있다. 하데스타운의 'wait for me'에서 전주와 간주에 들리는 하프 타는 것 같기도, 피아노음 같기도 한 소리도 좋고, 최재림 님의 랩 같은 노래, 오르페우스 박강현 님의 음색은 가히 중독적이다.
아니, 지하세계에 들어오려고 하는 오르페우스에게 헤르메스가 속사포로 그리 겁과 공포를 주는데도 오르페우스는 현타도 안 오는건가?
그런데 무엇보다 내게 이 노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그동안 내게 익숙한 망부석 서사와는 급과 결이 다른 새드엔딩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하데스타운 즐거리를 들었을 때 난 지하세계 탈출을 코 앞에 두고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가 애석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니, 돌아보지 말라고 했으면 돌아보지 말아야지 뭐가 못 미더워 그새를 못 참고 돌아본 거야?'
'사랑한다면, 그녀를 믿는다면 돌아보지 말았어야지.'
'오르페우스의 사랑과 믿음이 부족했네!'
'그녀를 지하세계 차가운 현실에 두고 바로 해피엔딩 결말 코 앞에서 그녀를 놓치다니 너무 아까워 어쩌냐.'
그런데 문득 그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르페우스 자신의 그릇에 담기에 너무나 넘치도록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스스로를 시시각각 크게 출렁이는 파도 위에 던져버려 사랑의 불꽃을 꺼뜨려버릴 것 같은 불안과 의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망부석과 같은 새드엔딩.
하지만 결이 다른 새드엔딩.
그 자리에서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외치며 한의 정서를 키우고 있을 그녀와 달리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고, 가장 좋아하는 악기를 매고 직접 지하세계로 그녀를 찾으러 간다. 직접 한 발 한 발 걸으며 의심과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어가며 걸어간다. Wait for me를 부르면서...
님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그는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결단했고, 그것을 찾는 여정을 통해 많은 이를 만나며 찬란한 성장과 성취감을 얻었을 것이다.
과정자체로 해피엔딩일 수 있다는 것!
물론 결말까지 해피엔딩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이겨내야 하는 장엄한 도전의 서사이며, 씨를 뿌린 자리에 새싹이 돋아날지는 비와 바람, 햇살이라는 우주의 도움이 결정한다.
신이 허락할 해피엔딩은 이미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오르페우스처럼 과정의 해피엔딩 결말을 선택할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MBTI 극 I이지만 뭐 어떠한가?
오르페우스가 'wait for me'를 부르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되었는데!
이제 <하데스타운> 재공연소식이 들리면 광클릭 속도로 자랑스러운 오르페우스를 만나러 달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