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집 근처 탄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천국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숯과 같은 검은 물이 흘렀다는 탄천은 많은 정화작업을 거쳐 지금은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온갖 생물들이 공생하는 1급수를 자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생명을 키울 수 있는 물을 생명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걷다 보면 수달, 너구리, 오소리가 살고 있으니 놀라지 말고, 놀라게 하지도 말라는 현수막을 만나게 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나처럼 그들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다. 현수막 문구를 단 공무원도 실제 만나본 적이 있을지를 궁금해해 본다.
법화산 자락에서 시작된 샘물의 물줄기와 성복천이 만나 탄천을 이루고 한강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흘러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 듯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그리고 그 물가로는 아름다운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다. 수양버들은 긴 탄천의 역사만큼 자라 곱게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끼워 빗질해주고 싶은 기다랗고 고운 머리칼을 가졌다. 아름다운 여인 같은 수양버들 중에는 유한양행 로고와 똑 닮은 나무도 있어 지난 때마다 특별히 의미를 담아 눈인사를 보내본다. 너에게서 나온 아스피린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구원받았는지 넌 알고 있는지...
물고기의 터전이 되어주는 탄천에는 백로, 왜가리, 가마우치, 청둥오리와 같은 수많은 새들도 각자의 둔탁한 성대소리를 뽐내며 우아한 날갯짓으로 물 위에 안착해 무리를 이루거나 무리를 쫒으며 함께한다.
모든 갓 태어난 생명은 그 작은 크기에서 오는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기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리나 백로를 만날 때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은 모두 탄천이 어느 때라도 반겨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속이 정한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바퀴를 굴리며, 누군가는 달린다. 누군가는 혼자, 누군가는 자신이 소중히 하는 사람이나 강아지와...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자신이 축척한 에너지를 기꺼이 소비하게 모인 자들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의 표정이라도 평화가 깃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기꺼운 발걸음.
천국이 있다면 사람들은 바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매 순간 흘러가는 물은 같아 보여도 한 순간도 같지 않다. 그것은 매번 저 깊은 산속 작은 샘에서부터 길러 올려진 새로운 물이 흐르는 것이고, 작은 실개천들이 만나 화합하며 흐르게 되는 매번 새로운 물길이기 때문이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의 청량한 소리와 물 위로 뛰어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물결의 파동, 새들의 각기 다르게 분화된 성대를 비비대며 내는 소리를 들으며,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함께 탄천을 걷는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라는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고개를 들면 때로는 파란 하늘이, 때로는 노랗게 기운 달이 때로는 촘촘히 박힌 별들이, 낮은 산의 등성이가 빽빽이 키워내는 푸른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좀만 더 걸으면 산자락 아래 빼꼼히 서 있는 서울대병원 건물이 보인다. 저기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삭막한 기계음들이 들리는 저곳을 나와 두 발로 걸으며 자신의 귀로 청량한 물이 흐르는 소리와 물 위의 여유로운 자태로 앉은 새들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십사 기원해 본다.
다리가 기분 좋게 뻐근해온다.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돌아갈 때의 풍경은 좀 더 내 안에서 무르익어 있을 것이고, 탄천에 비치는 윤슬은 어느 때처럼 반짝거릴 것이다.
매번 걷는 탄천길은 새로 만나는 길, 내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가장 평화로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