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주말에 금기숙 기증 특별전 보러 갈까?"
"좋아"
이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다. 그러고 나면 카톡에는 으레 이모가 검색한 전시회 관전 포인트 같은 이번 일정과 관련된 동영상들이 가벼운 진동 소리를 내며 내게 도착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카톡의 숫자 1만 지우고, 보통은 영상을 미리 보진 않는다. 나는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현장의 생동감을 느끼고자 하는 쪽인 것이다.
금기숙 기증 특별전은 입소문을 탔는지 우리처럼 전시회가 끝나기 전 실물 영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건물 바깥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줄지어 전시장 입구에 서자 많은 사람들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작품들이 반짝거리며 눈앞에 펼쳐진다.
철사와 리본끈으로 만들어진 옷 형상의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이 아름답다. 작은 환호성과 함께 공중에 달린 작품들이 바닥과 벽이라는 평면 공간을 만나 만들어내는, 작품보다 더 작품같은 옷의 그림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감상한다.
입어보지 못해 더 아름다울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미리 공부해 온 이모의 입을 통해 도슨트를 듣듯 작품 해설을 들으며 작품마다 내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감탄의 소리가 잦아짐을 느낀다.
이제 발걸음을 옮겨 전동화 선생님이 평생을 모아 기증하신 형형색색의 보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아래층으로 향한다.
일상에 사용되는 보자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보자기의 사용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관찰되는 것이라는데 한 땀 한 땀 자수로 수놓아진 보자기는 물건을 싸놓는 용도로만 사용되기엔 너무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우리나라 보자기의 자수의 가치를 알아보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보자기를 수집하고, 작품의 보존을 위해서 기증을 하셨다는 전동화 선생님 부부의 행적을 들으면서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으기보다 버리는 것을 살림의 우선순위로 삼아 온 나로서는 이렇게 가끔씩 전시회에 와서 감탄하는 일 외에 별달리 예술 생활과 관련이 있지 못한데, 평생 예술을 사랑하는 일 속에서 살아온 작가와 수집가의 모습에 문득 숙연한 마음이 든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시간을 절약하는 일도 아니요, 오히려 작업과 수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온갖 신경을 한 곳에 몰두해야 하는, 자신 그리고 환경과 싸움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공로의 시간을 들여 예술을 사랑해 온 사람들을 통해 그 따스한 빛의 온기를 쐬고, 삶의 향기를 맡고, 새 활력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전시회장으로 들어가기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한결 여유롭고, 영혼이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박물관에 꽤 긴 시간 머무른 우리는 뱃속 허기를 느끼곤 이모가 전에 사진으로 자랑하던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분명 와본 적이 있다는 이모의 발걸음을 따라왔지만 우리는 몇 번이나 조금 전 지나쳤던 거리를 다시 지나치고 또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우리는 가로수 근처 벤치에 앉아 준비해 온 빵과 손에 든 커피로 가벼운 요기를 한다. 조금만 먹기로 하지만 미치는 생각의 속도보다 손은 더 빠르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걷는 듯 헤매지만, 헤매는 듯 걷지는 않는다.
그러다 우리는 예상에도 없던 삼청동 가옥이 모여 있는 언덕까지 오르게 되었다. 한옥 건축물에 눈길을 빼앗겼던 우리는 뻥 뚫린 골목 사이로 우리를 향해 와락 안겨드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위엄 있는 모습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위대한 살아 있는 작품 앞에서 둘은 악속이나 한 듯 한동안 자리에 멈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만나는 주변의 사물들이 모두 예술 그 자체이나 항상 거기 있었기에 나의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환한 해의 온기가 머물러 있을 때 식당을 찾던 우리는 주위가 어둑해지고, 북악스카이의 주황 조명들이 랜드마크처럼 환한 불을 밝힌 한참 후에야 식당에 들어섰다. 목적지는 출발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조하문의 '내 아픔 아시는 당신에게' 노래를 듣다가, 남은 우리 때문에 영업종료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 아까 다 듣지 못한 조하문의 노래에 얽힌 이모의 청춘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안국동 거리를 걷는다.
예술이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직선거리라는 빠른 길과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시간을 들여 걷는 여정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고, 환희가 되는 것.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작품 하나 하나 머무는 시선에 시간을 들이고 길을 헤맨 오늘은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예술적인 여정이 되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에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보내온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신이 창조한 비록 완벽하지 않지만 온전한 작품일 '나'라는 작품을 사랑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하고...
어둑어둑 밤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해가 떠오르면 2% 이상 뭔가가 상당히 부족한 이 예술작품은 무거운 몸을 털어내고 다시 나의 일터로 향할 것이다. 오늘 전시장에 한참 동안 멈추어 서서 옛 어머니들의 바느질과 노고로 완성된 아름다운 보자기를 바라보던 그 황홀해하던 눈으로 이제 나를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긴 시간 사랑과 정성의 마음을 들여 작품을 완성해 나갔을 작가들을 생각하며, 작품을 작품답게 만들 은은한 주황색의 할로겐 조명 하나를 내 마음 속에도 달아보자 결심해 본다. 금기숙 작가의 얼기설기 철사를 엮어 만들어 낸 작품이 벽에 남긴 아름다운 그림자처럼, 내 얼굴에 어떤 무늬처럼 새겨진 나의 주름살을 사랑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