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인생의 명장면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김훈의 '개'를 읽다가 "광주리 속에서, 주인님의 물고기 몇 마리가 퍼덕거리면서 아침 햇살을 퉁겨냈다."
라는 담백한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든지,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에서 그 유명한 주제가 'we are young'의 노래와 함께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고교팀이 승패와 상관없이 과정 자체를 한껏 즐길 태세로 경기장에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장면은 내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명장면이 되어 주었다.
최근에 그런 명장명은 영화 '신의 악단'을 통해서 경험했다. 이 영화는 국제단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조건 충족을 위해 북한이 내부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것을 거짓이라도 증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당의 명령으로써 기독교 음악을 거짓 찬양할 악단을 구성하게 하고, 장교로 출연하는 정진운이 명령과 의무감에 따라 교인인 척 연기하기 위해 '광야에서'라는 노래를 기계적으로 부르며, 말 그대로 '그저'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새하얗게 눈이 쌓인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은 내 인생에서 만난 명장면의 하나가 되어 영화가 끝난 뒤로도 오랫동안 떠올랐다.
우리 중 누구나 이렇게 한 번쯤은 자신이 변화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 그렇게 기계적이고 의무감에 일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그동안 많은 시련과 힘든 시간들을 거쳐 왔던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과 성취감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지만 한번 그런 만남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광야를 걸으며 자기 자신을 만났을 정진운과 마찬가지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되면 로또가 내 인생의 구원이 되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내 안에서 구원을 찾았으므로...
분명한 것은 인생의 명장면은 온몸에 힘이 들어간, 눈을 부릅뜬 경계 태세에서는 주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영혼이 나긋나긋해져 있는 상태에서 무심코 가 닿은 상대방의 유독 맑고 깊은 눈망울이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바로 그때가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인생의 명장면이 아닐까.
내 인생의 명장면과 만나는 것, 이것이 마틴 부버가 말한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참 만남'의 순간일 것이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긴장 풀고, 부석사 불상의 부처님처럼 반개한 눈으로 나른하게, 레드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