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였다.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때는 바야흐로 3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참 일로 바쁠 때였는데 막내이모가 강원도에서 지원해 주는 템플스테이가 있으니 대신 접수하겠노라 했다. 이모는 흘러드는 정보에 강하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10월에 백담사로 여행을 떠났다. 백담사를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던 내게 그곳은 막연히 사사 십육과 같은 구구셈 공식처럼 전두환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동서울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백담마을에 내려 우리는 조금 걷다가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가을 계절을 물들인 보라색과 분홍색의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소풍 가는 학생들처럼 신이 나 있었다. 중년이 되어버린 여인들 안에 아직 소녀가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뱉어내며,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보여주려고 서로의 이름을 급하게 부르곤 정해진 순서처럼 카메라를 들이댔다.
백담사까지 들어가는 버스길은 S자 곡선을 그리며, 굽이굽이 돌 때마다 가을이 찾아온 산자락 구석구석의 노란, 빨간, 초록색의 조화된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이것 봐, 내게 안긴 건 처음이지?" 하는 듯이 설악산 자락은 파티를 연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도착하니 4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였고, 한 방에 5명이 함께 1박을 하며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었다. 인사를 마친 스님께서는 삼배하는 방법부터 법당 벽화의 의미를 순서대로 설명해 주셨다. 선물도 있다길래 퀴즈에 열심히 손을 들어 올린 나는 결국 동물들 발자들이 찍힌 예쁜 손수건을 받았다. 아주 높은 만족도였다.
다음으로 우리는 스님의 지도에 따라 남녀 둘씩 짝을 지었다. 손수건으로 눈을 완전히 가린 짝꿍을 목적지까지 손을 잡고 안내하며 숲길을 이동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 짝꿍이 눈을 가리고 안내를 받아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모랑 했으면 더 높은 호흡을 맞추며 갔을 텐데 처음 뵙는 어르신과 손을 잡고 친한 척하기가 쉽진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모는 상대 분과 어색해서 손을 거의 잡지 않으려 해서 스님께 여러 번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남자 짝꿍과 손을 잡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끼워 손가락 대신 잡던 일이 설핏 떠올라 웃음이 났다.
중간중간 이모는 계속 귓속말로 날 웃겨 놓고서는 까르르 웃는 나에게 사찰이니 조용히 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내게 웃음 역치가 너무 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모는 속닥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사춘기 소녀는 낙엽만 굴러도 웃는다는데, 백담사의 기운으로 사춘기 감성이 살아났는지 이제는 이모만 봐도 웃음이 터져 버리는 것이었다.
다음 장소는 계곡이었다. 우리가 받은 미션은 흐르는 물을 향해 힘껏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당장 사랑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우리는 나중 순서이다 보니 숙제 검사를 곧 맡아야 하는 학생들처럼 긴장하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쩌렁쩌렁한 용기 있는 외침과 스님의 차분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스님은 "다시", "크게 다시 한번, 자신감 있게, 토해내면서!" 등을 외치시다가 말씀 끝에는 각 참여자에게 당신은 이런 성향이 있으니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며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참여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크게 동감하는 눈빛이었다.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을 간파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스님이라니!', ' 이건 동화책에서나 보던 이야기인데!'
이모도 크게 놀랐는지 우리는 연신 눈길을 주고받다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 스님 범상치가 않으시다. 그렇지?"
군대 관련 프로그램에서 애인이나 엄마를 부르며 낙하하는 건 본 적 있지만, 내 이름을 부르며 사랑고백을 한다는 것은 평상시 해보기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숙소에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참여자들과 통성명을 하고, 참여 이유 등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초면이라 그런지 상대에 대한 후한 칭찬과 덕담이 오갔고, 그것이 우리의 온도를 어느 만큼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각자 스님이 내주신 숙제를 했다. 자신의 장점들을 찾아 가짓수를 채워야 하는 것이었는데 바로바로 써지진 않아 한참을 생각하다 쓰고 쓰며 한 칸 한 칸씩을 채워갔다. 그리고 방 안에는 다시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나는 너무 고단해서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이모가 사람들에게 "회복 탄력성"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우와, 멋진 말이에요." 하며 화답하는 말들이 귓가에 실려오는 것을 들으며 깊은 잠이 들었다.
템플스테이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결국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산에서는 아침잠이 절로 사라지고, 스스로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도 올라오기 전 이른 아침의 식사지만 절에서의 공양시간은 항상 가장 기다려지기 마련이었다. 절밥은 건강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났다. 눈으로는 벽에 쓰인 문구들을 훑으며, 코와 입으로는 우리보다 더 일찍 일어나 따뜻한 밥을 준비해 주신 분들의 정성을 섭취하였다. 더욱 건강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울력이라 불리는, 함께 비를 들고 마당을 쓰는 즐거운 노동을 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비로 정갈하게 쓸린 자국이 난 마당을 보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는 다시 뵙는 스님 앞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주어진 과제를 발표했다. 전날 작성한 자신의 장점을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놀라운 일은 여기에서부터 일어났다. 참여자의 발표가 끝나면 스님께서는 발표한 이에게 장점이라 쓴 내용과 상관없는 코칭과 제안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가령, 어떤 어르신께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든지, 어떤 분께는 손끝에 음식을 잘하는 재주가 달려있으니 이를 살리라든지, 어떤 젊은이에게는 인플루언서가 잘 맞을 거라든지 하는 조언들이 이어졌다. 미발표자들은 과연 자신은 어떤 얘기를 듣게 될 것인가 하는 긴장감이 도는 표정이 역력한 채로 스님의 말씀에 점점 더 귀가 쏠리고 있었다. 실상 짧은 시간 만난 상대방을 보고 저리 간파해 내시는 스님의 능력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하도 생각이 나지 않다 못해 당시에는 명확했던 사항인, 허리가 잘록하다는 것까지 떠올려내어 장점으로 써낸 나로서는 스님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실지 너무도 궁금했다.
이윽고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당장이라도 절 생활을 하면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내 안의 평화와 긴장감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스님에게 속으로 즉각 항의했다.
'아니, 스님 제게 절 생활이라니요. 무슨 당치도 않는 말씀이시옵니까. 그 말씀 거둬주옵소서. 저는 이 세속이 아주 좋다고요.'
그 말씀은 내게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의 부적합자라는 증표라도 받은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면 아마 정확할 것이다. 내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는지 스님은 다시 말을 이으셨다.
"아, 그렇다고 절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아마 하게 되면 누구보다 하얀 소의 의미를 빨리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하셨다.
그러면서 평상시 야외에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말씀을 덧붙이셨다.
전날 스님께 질문에 답을 다 듣진 못했지만 평상시 궁금했던 걸 꽤 질문을 했었더랬다. 누구는 철물점을 하고, 누구는 슈퍼마켓을 하고, 많은 일들 중 누구는 이 일을 하고, 누구는 왜 저 일을 하게 되는지가 궁금해왔던 나는 스님 역시 출가 시 어떤 분은 천태종에서, 또 어떤 분은 조계종에서 스님이 되기를 선택하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결국 무슨 답을 들었는지는 기억하진 못한다.
스님의 조언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린 상황에서 이모의 차례가 되었다. 스님은 잠잠히 들으시더니 앞으로 이모에게 자신의 장점을 100가지 이상 찾아 써보라고, 그러면 아마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하셨다. 좋은 덕담인 게 확실했다. 그래서 이모는 그런 능력으로 나를 웃겨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절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내게도 좋은 덕담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속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직장과 집을 도돌이표 찍으며 살고 있으며, 이렇다 할 명상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음악과는 좋은 친구이다. 이모는 아직 자신의 장점 노트를 다 채우진 못한 채 살고 있다. 우린 그렇게 좋았다 흐렸다 하는 날들을 반복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세속에 남은 내가 하얀 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은 당연한 순리이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하얀 소가 가리키는 추상적인 바보다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음으로 해서 비롯되는 온갖 희로애락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며, 이 세속 안에서 흠씬 부대끼며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인 것이다. 물론 당시 장점이었던 잘록한 허리같이 지금은 사라진 목록도 있지만 글을 쓴다처럼 추가된 목록도 있으니 그리 나쁜 수지타산은 아니다.
이모와 나는 지금도 힘들 때는 가끔씩 백담사에서의 일을 추억한다. 자신 안에 반짝거리는 빛이 있음을 알아봐 주신 영험한 능력의 스님을 만났던 곳, 백담사.
그곳은 전직 대통령이 머물었던 장소라는 정보적 의미는 지워지고, 내 존재의 가치를 찾게 해 준 특별한 곳으로 기억된다.
하얀 옷에 생활의 때가 끼듯 우리가 살아내다 삶에 찌든 때가 낀 것 같을 때 우리는 백담사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쯤에서 좌절할 우리가 아니지, 암." 하며 다시금 흐트러진 허리를 펴 자세를 곧추세워보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 찬란한 순간은 그렇게 내 안에서 영원처럼 길게 음미해보고 싶은 소중한 것이다.
때로는 3차원 사물을 2차원 평면의 벽이 그림자를 통해 실체를 받아내어 그 사물의 본질을 때로는 3차원 세계보다 더 잘 담아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금기숙 기증 특별전> 전시회에서 경험한 바 있다. 스님은 그렇듯 수행을 통해 비워내고 비워낸 커다란 벽과 존재로 득도하신 분이 아닐까.
나를 통해 스님의 영험함을 전해 듣고 그 후로 동기 중 한 명이 백담사를 다녀왔지만 템플스테이에서 스님을 뵙진 못했다고 했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신 스님의 영험한 능력은 마치 드라마의 여운과 같이 우리에게 아직 그 효험을 잃지 않고 있다.
나나 이모의 삶이 어제의 삶보다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과거의 나보다 하나씩 더 깨우쳐가며, 씩씩하게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내려는 힘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나는 어느 해 가을이 설악산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일 때 스님과 백담사를 조우하기 위해 다시 설악산의 품으로 경쾌한 발걸음을 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여기서 이대로 쓰러질 내가 아니지, 암" 하는 주술문 같기도 한, 나를 향한 응원문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