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당선을 탄다.
맵이 알려준 대로 빠른 환승이 가능한 1-1 칸에 섰다.
열차 도착을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면 같은 공간 속 각자 다른 화면의 세상을 보는 사람들 풍경이 길게 이어지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전차 안은 쏟아져 나온 사람 수만큼 또 금세 가득 차기 마련이다. 사람들 어깨 사이 유리창으로 작은 빛을 쏟아내는 휴대폰을 응시하는 까만배경의 그림자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이 전차라인은 정말 기관사 없이 움직이는 것이 맞는가 궁금해진다. 이 많은 인원의 승객들이 기관사 없는 무인 시스템에 몸을 맡긴 채 조난당한 배가 등대를 응시하듯 손에 들린 문명의 이기를 응시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달리는 동안 AI로 사라지는 직업군들이 생길 거라는 유튜브로 배운 내용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어느 기관사가 근무 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애로사항은 있지만, 수많은 승객을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게 돕는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는 인터뷰 내용도 떠오른다. 승차 인원을 자가용 만석으로 바꿔 계산하면 전차 한 대당 6km 이상 길이는 족히 넘을 거라 한다.
더 많은 전차의 운전을 AI가 맡게 되면 경제적 비용은 절감되고, 기관사는 이제 햇빛을 못 보게 되거나 화장실 이용에 곤란을 겪는 일은 없어지겠지만 그와 함께 원래 오롯이 당신 몫이었을 자긍심과 자아실현의 기회도 사라지겠지. 그러면 첨단기술은 인간에게 여가와 예술을 누리게 할 시간을 부여해 주는 축복인 걸까? 아님 토사구팽으로 인간을 내치고야 마는, 우리를 우울과 허탈감으로 몰고 갈 독약인 걸까?
기관사가 동승하고 있지 않은 이 공간이, 마치 학생만 있고 교사라는 리더는 사라진 채 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학교 같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공포영화 속 기괴한 모습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무인 시스템의 도입 자체는 도덕을 포함하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도덕적 문제를 동반한다는 것을 학습을 통해서나 직관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싸한 느낌 그대로 이미 커버린 기계문명의 발전은 부모에게서 이제 독립해 버린 자녀처럼 더 이상 낳아준 인간의 노고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잉태 당시 그의 DNA에 브레이크는 달려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노동 해방 그리고 우리의 자아실현 기회 박탈과 경제 활동의 상실은 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어느 쪽이든 일어날 확률은 함께 올라가게 된다. 아날로그역에서 승차해 삐삐와 시티폰역, 스마트폰역을 거쳐 아직 탑승 중인 나는 어느 게임에서 어떤 패를 들고 있다 울거나 혹은 웃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달리는 전철에 탑승 중인 까닭에 그 변화가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
무인으로 돌아가는 신분당선의 상징은 붉은색이다. 책도 너무 가까운 물리적 거리에서는 흐리게 보이지만 적정거리를 두며 멀어질 때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앞으로 이 빨간색이 의미하는 바가 놀라운 기술 발전을 이룩한 인간의 열정을 자부하는 색으로 기록될지, 인간과 기계의 공존 불가 그리고 위태로운 불균형을 의미하는 경고등이었는지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명확해질 것이다.
다시 환승역이다.
나는 서둘러 내 손아귀 속 등대를 다시 켜고 두 눈을 작은 빛에 모은 채 다음 이동지로의 좌표를 찾으며 서둘러 조난에서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