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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Dec 06. 2023

전화 한 통 걸 곳이 생각나지 않을 때

위로를 만나다

위로가 필요해 전화를 걸었다.

'아차차..  내가 빌려준 돈이 있었지..?' 전화 너머 곧 보내주겠다며 미안해하는 첫마디에 원래 하려던 말이 쏙 넘어갔다. 위로를 받기는커녕 위로를 해줘야 하는 사람에게 하마터면 나 좀 달래 달라 투정 부릴 뻔했다.


괜찮다며 위로의 말을 전하며 나는 괜찮노라 쎈 척을 쿨하게 날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 가서 혼자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어디 갈 곳도 어디 투정 부릴 곳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가 너무 힘들다


힘들다는 말을 입밖에 내면 진짜 힘들어질까 봐 괜찮다 괜찮다 애써 함구한다. 위로의 말로 다독다독 타인에겐 그리 따뜻하면서 스스로에겐 겨울 한파보다도 냉정하다.


15년 지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지친 마음에 약속을 깨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내 맘이 이러하니 다음에 보자라며 약속을 깰 수 없어 군말 없이 약속 장소로 향한다.  

시간이 주는 편안함.  그들과의 관계는 시간이 다듬어준 이해가능한 범주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생성되어 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선 안 되는 말이 취기를 이기고 나름의 선을 지킨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관계는 더욱 적정선이라는 것이 생긴다.


친할수록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이 있다. 그 누구도 세워주지 않은 나름의 삶의 지침과 경계라는 것도 생긴다. 때로는 스스로를 지키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때론 독이 되기도 하는 경계.

오늘은 그 경계를 통해 배운 관계들 속에 지독하게 외로움을 경험한다. 누구나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음을 잠시 잊었다. 당연함을 인정하고 나니 지독한 외로움은 이내 별스럽지 않은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 중 하나가 된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무시한 채 들이킨 맥주 한잔에 두통이 사그라든다. 아마도 진통제 한 알에 아무렇지 않았던 듯 가라앉을 통증이었을 거다. 그렇게 진통효과와 더불어 진정효과도 함께 얻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보다 더한 효과다.

시원한 밤바람에 살짝 걸어오다 보니 언제 내렸는지 모를 비에 젖은 수건들이 눈에 보인다. 예보에 없던 비에 수건 주인도 예상 못한 상황이었을 거다. 축 늘어진 수건을 보니 탈수기에 들어가기 전 상태와 같이 비에 완전히 젖어 멀리서도 축축함이 전해진다. 괜스레 우울감에 젖었던 마음같이 보여 괜찮다 다독다독 응원의 말을 속삭인다.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응원의 말을 하고 있노라니 눈앞에 공사장 펜스가 맞이한다.


'오늘 무슨 날인가...?' 무수히 괜찮다 괜찮다를 다독이며 새로운 난관을 마주하는 연습을 하는 듯하다. 눈앞에 빠른 길이 막혀 계단을 내려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잠시 기가 막혔다가 이내 웃음이 난다.

어지간히 스스로를 사랑하는구나 어이없어 나는 웃음이었다. 각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들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이렇듯 상황과 사물에 자신을 빗대어 대리 응원을 해주는구나  싶어 자신에게도 거리 두는 스스로에 헛웃음과 동시에 기가 막힌 츤데레식 자기 사랑법에 기가 막힌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겨울 한파보다도 냉정하게 자신에게 혹독하게 한다했더니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응원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이게 또 곧잘 먹혀들고 있다.

집에 다다르니 거리에 어느새 떨어진 낙엽들이 어지럽다.

내일이면 말끔히 치워질 물에 젖은 낙엽들을 어두운 새벽 누군가는 열심히   빗질을 해대며 거리를 말끔히 정리할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지러운 거리는 정리가 될 것이고 누군가  깨끗이 치우면 또 어질러짐이 반복될 것이다.

오늘의 내 감정이 그랬고 내일의 내 감정이 또 그렇겠지.


위로가 필요했던 어느 날, 위로받은 나를 만났다.

귀가 얼얼한 것을 보니 밤바람이 꽤나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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