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손 엄마가 그림을 그리면
내 아이에게 쓰는 편지 #1
일하는 엄마는 늘 아이에게 미안하지.
엄마가 일을 해서 미안해.
엄마가 잘 못 놀아줘서 미안해.
엄마가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미안함은 결국을 일을 해서 미안해로 항상 끝나더라.
그래서 일을 쉬어보니 미안함이 줄어들기는커녕 채워주지 못하는 다른 미안함이 또 차오르고.
그래서 엄마가 결심했어.
한 번씩 내가 사랑하는 너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그리고 그 편지에는 그림을 꼭 그려 넣어보자고 말이지.
엄마는 나이 40이 되도록 아직 화장도 예쁘게 잘 못하는 똥손 중의 똥손이야. 알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쁘게는 아니지만 끝까지 그려지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뭐지 아니?
바로 '네 얼굴'이야.
그림을 배워 본 적도 없고, 비율이 뭔지 대칭이 뭔지 이런 건 잘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네 얼굴은 수십 번 수백 번 그려도 또 그릴 수가 있더라.
그래서 네 얼굴을 그리며 그림일기 같은 편지를 써보려 해.
처음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공책에 그리다가,
어느 날은 스케치북에 그려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캔버스에 그려보기도 하다
너에게 한 권의 책으로 뽑아 줘볼까 싶은 맘에 하나씩 하나씩 기록해 두려 해.
이제는 네게 미안해를 남발하는 엄마가 아닌, 사랑해를 남발하는 엄마로.
너의 어린 시절은 사랑받은 기억으로 가득할 수 있게 여러 순간들을 기록해 두려 해.
그저 휘발 돼버리는 순간의 행복했던 찰나들을 사진으로 한번, 그림으로 두 번, 편지로 세 번
이렇게 쓰고, 그리고, 기록해 둘게.
언젠가 네가 지치고 힘이 드는 날 꺼내어 보고 잠시잠깐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계가가 될 수 있도록, 차곡차곡 기록해 둘게.
엄마에게, 엄마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 너에게.
엄마의 마음을 차곡차곡 적어둘게.
나중에 후에 네가 자라고 또 자라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들여다보게 될 날이 올 때까지
엄마의 사랑을 차곡차곡 그려둘게.
차곡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