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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서 Apr 18. 2023

책 사다 놓고 안 읽는 사람

퇴근 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책 사다 놓고 안 읽는 사람 호칭 정하기' 란 제목의 글을 봤다. 트위터의 유저가 '책 사다 놓고 읽는 사람' 호칭 정하기 대회를 열었고, 그에 다른 유저들이 내놓은 기막힌 답변들을 캡처한

글이었다. '소장학파', '출판계의 빛과 소금', '집책광공' 등 센스 넘치는 호칭을 보며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 안으로 킥킥 대며 웃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호칭은 '소장학파'였다. 언제나 비장한 마음으로 책을 구매하지만, 한 두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는 나 같은 사람들은 책장에 책이 쌓일수록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이 생기마련이다. 이런 나를 '소장학파'라는 멋들어진 말로 규정지으니, 단순히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사람이 아닌 나만의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책을 소장하는 사람이 같았다. 마디로 좀 있어 보였달까.


나는 책을 구매하는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다. 신뢰할 수 있는 작가의 책이나 관심 있는 주제, 도서관에 없는 따끈따끈한 새 책을 주로 구매한다. 그중에서도 비문학에 비해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할 가능성이 큰 소설이나 

에세이는 먼저 읽은 책 중 소장가치가 있다고 느껴질 때만 구매하는 편이다. 책을 구매하는 기준이 높아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을 뺏다 넣었다 고민하지만, 막상 책이 오면 잘 읽지 않고 굳이 또 다른 책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나도 참 웃기다.


분명 책을 살 때는 그 순간에 가장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책을 받아본 순간 귀신같이 다른 책에 더 눈이 간다.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에서 추천해 준 책, 북스타그램 피드에 자주 올라오는 책 등 세상은 넓고 재미있는 책의 축복은 끝이 없다. 그렇게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책들을 몇 권씩 빌려 읽다 보면 어느새 새로 산 책은 잊히고 흥미가 뚝 떨어지고 만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책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읽을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잡은 물고기에는 떡밥을 주지 않는다'처럼 나는 '구매한 책에는 쉬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어제 '북클럽 문학동네' 웰컴 키트가 도착했다. 집에 오니 한참 고민하다 어렵게 정한 선택 도서 <가녀장의 시대>와 <인생의 역사>가 날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책장에 책을 꽂아 놓으려는데, 아직 읽지 않은 작년 선택 도서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책이 내게 말을 걸리 없지만 왠지 "쟤는 또 뭐야. 나는 잊은 거야?" 따져 묻는 거 같았다. 심지어 내 방엔 더 이상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 동생 몰래 동생 책장에 책을 꽂아놓고 나오다 딱 걸려 

제대로 한소리 들었다. 더럽고 치사해서 다시는 네 책장 안 쓴다! 씩씩대며 방에 돌아왔는데 읽지 않은 책들로

방이 어지러운 걸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장 정리를 할 때마다 매번 다짐으로만 끝났던 '책장 파먹기'를 

이제는 진짜 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조금만 방심하면 새로운 책에 팔기 쉬우니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는 책부터 사랑해 줘야지. 이래놓고 하루 만에 이웃 블로거님의 리뷰를 읽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 

동네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해 본 건 아무래도 비밀로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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