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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서 May 01. 2023

내가 바로 요리의 신?!

망한 음식 살려내기

언젠가 엄마가 그랬다. '남이 만들어준 음식이 제일 맛있어!' 가족들 삼시세끼 챙기기 바쁜 엄마의 '나도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상 좀 받아보고 싶다'는 푸념 섞인 말인 걸 알았지만, 그 말에 백번 공감했던 나는 모른 척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닭볶음탕이 바닥에 달라 붙은 껌처럼 온종일 내 머릿속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달짝지근한 양념 옷을 입은 야들야들한 닭고기와 하도 끓여 물렁해진 당근과 고구마를 뜨끈한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여느 때처럼 엄마 찬스를 쓸까 하다 얼마 전 엄마의 '나도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 좀 먹고 싶다'는 말을 외면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래, 이번 주말은 내가 닭볶음탕 요리사다! 백종원 선생님의 레시피를 보니 생각보다 쉬워 보여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출처 불명의 자신감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닭볶음탕 재료만 사다 주면 내가 직접 해 먹겠다는 말에 엄마는 근래 들어 이렇게 반가운 말을 들어본 적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빠르게 재료를 사다 주셨다. 백주부의 코칭에 따라 흐르는 물에 닭을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집에 있는 양파와 당근 등을 꺼내 한 입 크기로 썰었다. 볶음용 팬에 빡빡 씻겨내 뽀얗게 변한 닭고기와 야채 그리고 양념을 넣어 함께 끓어주면 완성. 처음 만드는 음식이라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근사한 비주얼이 나와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나 요리에 소질 있는 거 아냐? 들뜬 마음으로 상을 차리고 동생에게 어서 한 입 먹어보라 재촉했다.

분명 눈이 똥그래진 채 나를 쳐다보며 엄지를 치켜세워주겠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동생을 쳐다봤는데, 닭다리를 크게 한 입 문 동생 표정이 오묘했다. 그리고 던진 한마디. "맛없어." 맛없다는 게 말 그대로 '무맛'이란다.

빨간 양념이 제대로 닭에 배어져 있는 거 같은데 아무 맛도 안 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동생이 날 놀리나 싶었는데 먹어 보니 정말 아무 맛이 안 나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고기에 양념이 충분히 밸 수 있게 몇 분을 졸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지만 나에겐 고민하고 좌절할 시간 따위 없었다. 이미 식사 시간이 꽤 지났고 나와 동생 모두 배고팠던 터라 어떻게든 맛없는 닭볶음탕을 살려내야 했다. 그런데 닭볶음탕 레시피는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아무 맛이 안나는 닭볶음탕을 살릴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 갑자기 머리 위에 반짝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한참 다이어트 할 때 닭가슴살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겠다고 타코맛 시즈닝을 샀는데, 왠지 이걸 뿌리면 다 죽어가는 닭볶음탕이 살아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다!를 외치며 닭볶음탕 위에 타코 시즈닝을 뿌리고 양념이 잘 배일 수 있도록 중불에 졸였다. 그렇게 최최종 버전의 닭볶음탕이 완성됐고 이번에도 동생에게 먼저 먹어보라 권했다. 동생의 평을 기다리는 데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결승을 앞두고 심사위원의 마지막 평가를 기다리는 참가자가 된 것처럼 떨렸다. 다행히 닭고기를 크게 한 입 문 동생의 표정이 아까와 달리 점점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결과는 대성공!


아무 맛도 안 나던 닭볶음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가 원하던 달짝지근한 맛이 살아나 꽤 맛있었다. 칭찬에 박한 동생도 맛있다며 닭볶음탕에 밥 한 그릇 뚝딱하는 걸 보니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나는 이날 닭볶음탕이라는 요리를 세상에 탄생시켰고, 영문 모를 이유로 본의 아니게 맛을 죽였다가 타코 시즈닝의 은혜를 입어 기적같이 소생시켰다. 사실 얼마 전에도 죽은 음식을 간신히 살렸던 적이 있다. 이번엔 장르를 바꿔 명란오일파스타에 도전했는데, 또 기미상궁 역할을 맡은 동생이 이번에도 파스타에서 삶은 면 맛만 나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었다면 당황해서 우왕좌왕했겠지만, 죽은 음식을 살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어렵지 않게 바로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오늘의 신의 한 수는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체다치즈. 체다치즈 한 장을 넣으니 귀신같이 파스타에 감칠맛이 살아났고, 설거지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둘다 깨끗이 그릇을 비울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마치 내가 '요리의 신'이 된 거 같았다. 그만큼 요리를 소름끼치게 잘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다) 오직 신만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치면, 나도 소생불가 상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음식을 다시 먹을 만하게 살려냈으니 요리의 신이 된 게 아닌가 싶었던 거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음식 맛을 기깔나게 잘 살리는 요리의 신이 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래도 죽은 음식을 간신히 살려내는 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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