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역사 롤링홀이 만들어낸 한국 인디의 빛나는 순간

<2025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 후기

by 진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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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9월,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는 강렬한 록 사운드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 9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진행된 ‘2025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은 홍대 인디 음악의 성지인 롤링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페스티벌이다. 공연의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체리필터, 크라잉넛과 같이 한국 인디의 시작을 함께한 밴드부터 넬, 브로콜리너마저, 우즈, 한로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 세대를 아우르는 팀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뜨겁게 호흡했다.


‘2025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은 사운드플래닛 메인 무대를 비롯해 사운드캠프, 사운드브리즈, 크로마, 버스킹 등 5개 스테이지에서 진행됐다. 스테이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춰 다양하게 음악을 골라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운드캠프는 크라잉넛, 카디, 트랜스 픽션 등 파워풀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밴드들이 무대에 올라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줬다면, 사운드브리즈에서는 브로콜리너마저, 볼빨간사춘기, 송소희 등 감성적인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따뜻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특히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라는 고급 호텔 리조트 부지에서 진행되는 페스티벌 인만큼, 다른 야외 페스티벌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을 자랑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겨주는 실내 스테이지에선 야외에서 노느라 흘린 땀을 식히며 쉴 수 있어 좋았고, 호텔 화장실이나 부대시설 이용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관객들은 불편함 없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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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2시, 그에 걸맞은 강렬하고 폭발적인 사운드가 메인 야외 무대에 울려 퍼졌다. JYP가 데이식스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6인조 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헤비메탈부터 반항적인 펑크록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보이며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를 데뷔 초부터 뚝심 있게 밀고 있는 밴드답게, 무대 위에서도 자신들의 개성 넘치는 색깔을 맘껏 뽐내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YB의 윤도현이 깜짝 등장해 예정에 없던 ‘박하사탕’을 함께 부른 순간은, 한국 인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겠다는 ‘2025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의 취지와 맞아떨어지는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페스티벌의 진정한 묘미는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밴드를 만나는 데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공연에선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내게 그런 새로운 설렘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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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서히 기울며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오후 5시, 넬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따스한 사운드를 듣자 비로소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걷는 시간’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마치 잘 짜인 무대 연출처럼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비눗방울이 날아올라 환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많은 추억의 명곡이 그렇듯, 관객들 모두가 이 노래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넬하면 ‘기억을 걷는 시간’, ‘Stay’ 같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곡만 떠올렸는데, 이번 무대를 통해 이들의 음악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환생의 밤’, ‘Star Shell’, ‘기생충’ 같이 록킹한 사운드가 연달아 이어질 때는 관객 모두가 몸을 흔들며 열광했다. 연륜 있는 밴드답게 안정된 연주와 탄탄한 사운드로 관객을 사로잡은 넬의 모습에서 밴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크라잉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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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열기가 절정에 이른 저녁 8시, 한국 인디씬의 30년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크라잉넛의 무대가 펼쳐졌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크라잉넛이 걸어온 길은 그대로 한국 인디씬의 역사가 된다. 음악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 인디씬의 시작을 1995년 4월 5일 홍대 클럽 ‘드럭’에서 열린 커트 코베인 추모 1주기 행사로 꼽는다. 당시 관객석에 있던 한 무리가 무대에 난입해 기타와 앰프를 부수며 말 그대로 난동을 부렸는데, 이를 본 클럽 사장이 정체를 묻자 이들은 자신들을 밴드라고 소개했다. 결국 사장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들은 오디션을 거쳐 ‘크라잉넛’이라는 팀으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렇게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국 인디씬의 중심에 서 온 크라잉넛은 여전히 그 시절의 파워풀한 에너지를 간직한 모습으로 공연을 이어갔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비둘기’, ‘명동콜링’ 등 히트곡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관객들은 노래에 맞춰 슬램을 하거나 떼창을 하는 등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몇 번을 봤던 무대이지만, 볼 때마다 신나고 새롭게 느껴지는 건 이들의 에너지와 음악이 세월에 녹슬지 않고 여전히 처음 그대로의 반짝이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라잉넛의 멤버 한경록은 이날 “락을 하면 저속노화에 좋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락을 하면 늙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건, 아마도 크라잉넛의 노래처럼 락이 어떠한 규칙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청춘의 다양한 감정을 노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25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에서는 한국 인디와 함께 30년을 걸어온 밴드부터 이제 막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신생 밴드까지, 각자의 개성 있는 색깔로 뜨겁게 청춘을 노래했다. 코로나19 등 여러 힘든 시기를 지나온 밴드들이 한데 모여 축제의 장을 열 수 있었던 데는, 꿋꿋이 홍대에서 자리를 지켜오며 한국 인디 문화를 형성하는데 힘써온 롤링홀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30년간 소규모 공연장에서 쌓여온 밴드와 팬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이번 축제를 시작으로 이제는 넓은 부지에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어지길,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한국 인디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원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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