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재즈로 물든 서울숲으로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 리뷰

by 진예서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서울숲을 휘감았다.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3일간 서울숲에서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가 개최되었다. 벌써 올해로 9회를 맞이한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Nature, Music&Love’라는 슬로건처럼 푸릇푸릇한 서울숲의 풍경과 재즈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9월 20일 토요일 공연에는 재즈 록 퓨전의 아이콘 마이크 스턴 밴드, 현대 재즈의 선두 주자 아론 팍스 리틀 빅부터 스텔라장, 박상아 퀸텟, 비츠냅, 더 사운드 오브 얀씨클럽 등 재즈를 기반으로 개성 넘치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팀들이 무대에 올라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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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은 이미 잘 알려진 피크닉 명소다. 고층 건물과 분주한 도로에 둘러싸여 있지만, 울창한 숲길에 들어서면 도심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내게 서울숲은 페스티벌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장소는 아니었다. 보통 서울에서 열리는 굵직한 페스티벌들은 주로 올림픽공원이나 난지한강공원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숲을 피크닉 명소로만 생각한 게 미안할 정도로, 이곳은 페스티벌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우선,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인 성수동에 있어 주변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무엇보다 수만 그루의 나무와 계절 꽃이 주는 싱그러운 분위기는 일상의 피로와 따분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은 이들에게 특별한 휴식을 선사한다. 이런 서울숲의 매력을 살려,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펫존’을 마련해 반려동물과 함께 축제를 즐기도록 만들었다. 관객들이 반려견과 나란히 돗자리에 앉아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다른 페스티벌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라 더욱 인상 깊었다.


또한, 배달의민족과 협업해 다회용기 사용을 장려한 것도 눈에 띄었다. 배달의민족은 현재 일부 지역에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대신 스테인리스 용기에 음식을 받아볼 수 있다. 페스티벌 측은 관람객을 위해 배달의민족 ‘다회용기 서비스 7천 원 할인쿠폰’을 제공했다. 관람객들은 쿠폰으로 저렴하게 친환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으며, ‘배달 픽업존’과 ‘반납존’도 따로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이용하기 더욱 편리했다. 요즘 국내외 많은 페스티벌이 친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서울숲재즈페스티벌도 지속 가능한 축제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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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무대인 선셋포레스트 스테이지에는 우리가 흔히 재즈하면 생각나는 음악을 선보이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팀들이 무대에 올랐다. 오프닝은 뮤지컬 에비타 팀의 특별무대로 시작됐다. 마이클리와 유리아 배우가 등장해 뮤지컬의 주요 삽입곡을 재즈풍으로 풀어내자, 시작 전 어수선했던 관객석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특히 유리아의 파워풀한 성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모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음에 등장한 박상아 퀸텟은 세련되면서도 섬세한 리듬을 선보이며 관객을 낭만적인 재즈의 세계로 안내했고, 스텔라장은 청아한 목소리로 한국어와 불어로 된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성수동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그녀는 “혹시나 반려견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창문을 조금 열고 나왔다.”며 미소 지었다.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선선한 바람을 타고 그의 반려견에게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의 마음에 진한 여운만큼은 확실히 전달한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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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등장한 아론 팍스 리틀 빅의 무대는 페스티벌을 함께한 일행들이 개인 일정으로 먼저 귀가해 혼자 감상하게 되었다. 무대를 보기 전. 나는 스스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건 바로, ‘최대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였다. 평소 나는 지난 일을 반추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에 머물지 못할 때가 많았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생각이 더욱 많아져, 잡념을 피하려 책이나 유튜브 영상으로 도피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핸드폰을 멀리 두고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였다. 사실 재즈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현대 재즈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불리는 이들의 무대가 쉽게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멜로디와 사운드에 집중하려고 노력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대 뒤편에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살결에 닿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선율까지. 현재에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감각들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오랜만에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지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아론 팍스 리틀 빅의 정교하면서도 풍부한 사운드는 그렇게 내 마음 깊숙이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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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스테이지에서는 각자의 개성 있는 색깔로 새로운 재즈의 세계를 열어가는 팀들이 무대에 올랐다. 평소 밴드 사운드를 좋아하고 재즈 힙합, 알앤비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는 나로서는 페스티벌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무대였다.


더 사운드 오브 얀씨 클럽은 힙합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인 얀씨클럽의 디렉터이자 디제이인 프로듀서 사모 키요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티스트가 뭉친 그룹이다. 곡과 공연마다 연주자 편성이 일부 혹은 전부 달라지며, 편성에 따른 새로운 방식의 편곡을 시도하기 때문에 매번 예측하기 어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디제이가 이끄는 재즈 공연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왠지 내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아 무대를 보기 전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이들의 무대는 시작부터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햇살이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와 어울리는 밝고 경쾌한 비트에 연주자들의 풍성한 연주가 더해지자,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무대를 가득 둘러싼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연주를 즐겼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색소폰과 플롯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묵직하고 깊이감 있는 색소폰과 쨍하면서 매끈한 음색의 플롯이 어우러져 멜로디를 이끌어 갈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 있었다. 사모 키요타는 이번이 자신의 첫 페스티벌 공연이라며, 다음엔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재즈와 힙합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 이들의 무대는 단순히 ‘첫 페스티벌 무대’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무대를 예고하는 화려한 서막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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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팀은 비츠냅이었다. 비츠냅은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이주원과 윤석철 트리오 드러머로 활동하는 국내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인 김영진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 팀 역시 재즈와 힙합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점심을 먹고 다소 나른해질 수 있는 오후, 그들이 들려주는 시원한 펑크 사운드와 흥겨운 재즈 연주는 관객들의 졸음을 단번에 내쫓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츠냅 공연에서는 색소폰과 일렉기타의 조합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앞서 들었던 플롯과 색소폰의 조합과는 또 확연히 다른 흥겹고 청량한 멜로디와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인 팀답게 흠잡을 데 없는 앙상블과 밀도 높은 즉흥연주를 보여주며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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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재즈페스티벌 부지 곳곳을 누비며 즐거운 음악을 선보인 팀도 있었다. 18인조 빅밴드 어노잉박스는 관객들이 있는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퍼레이드 공연을 펼쳤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흥겨운 연주가 울려 퍼졌고, 관객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듯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가며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무대를 만끽했다.


나에게 재즈는 친해지고 싶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보컬과 가사가 있는 곡에 익숙한 내게, 여러 악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가며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리듬과 멜로디는 늘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즈바나 클럽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다음으로 미루곤 했었다.


그런데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 만난 재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장르였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무대도 있었고, 몸으로 리듬을 타며 몰입할 수 있는 에너제틱한 무대도 있었다. 혹시 나처럼 재즈를 마냥 어렵고 까다로운 장르라고 생각했다면, 우선 피크닉을 즐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낭만적인 재즈 선율을 배경음악 삼아 서울숲의 상쾌한 공기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재즈와 놀라울 만큼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서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나만의 속도와 리듬에 맞춰 재즈와 가까워져 보길 바란다.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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