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리뷰
우리는 서로 깊이 이해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가족 같은 사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족이란 누구보다 서로를 위해주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한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을 봐온 가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만큼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살다 보면 내가 몰랐던 가족의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랄 때가 더 많다. 나와 비슷한 듯 달라서 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로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관계. 어쩌면 이게 진짜 ‘가족 같은 사이’일지도 모른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가족의 모습을 슬쩍 들추며, 단순하지만은 않은 가족의 이면을 드러내는 영화다. 첫 번째 이야기 ‘파더’는 남매 에밀리와 제프가 미국 북동부 시골 마을에 사는 아버지를 오랜만에 보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아직 부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그들의 예상대로 아버지는 정돈되지 않은 누추한 집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남매를 맞이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대화는 큰따옴표보다 줄임표의 연속이다. 겨우 시작한 대화는 경로를 이탈하며, 안부를 묻는 것 이상의 깊은 얘기로 연결되지 못한다. 물로 의미 없는 건배를 나누며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던 남매는 아버지가 손목에 찬 시계가 롤렉스임을 알아차리는데, 이것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알리는 힌트가 된다.
자식들이 떠난 후 아버지는 고급스러운 소파를 감추기 위해 대충 걸쳐두었던 낡은 담요를 치우고, 슈트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채 애인을 만나러 간다. 자연스러운 연기로 감쪽같이 자식들을 속인 아버지의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사실 그의 수상쩍은 행동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아 머쓱해진다. 우리는 누구나 상황에 맞춰 꺼내쓸 수 있는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여러 개 갖고 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라, 가끔 내 본모습을 숨긴 채 가족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나’라는 사람의 연기를 하기도 한다. 어쩌면 가족의 평화는 가족 구성원끼리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각자의 역할과 캐릭터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아버지는 남매가 생각하는 ‘혼자 살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노년 남성’의 전형적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식들에게 새로운 근심을 안기기보다 익숙한 걱정거리 속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 에피소드 ‘마더’ 역시 자신의 진짜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숨기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깐깐하고 엄해 보이는 어머니와 그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단정한 모범생 언니 티모시 그리고 펑키한 반항아 스타일의 동생 릴리스는 일 년에 딱 한 번 만나 티타임을 가지는 사이다. 릴리스는 여자 친구의 차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왔지만, 우버를 타고 왔다고 거짓말한다. 티타임 내내 예의 바른 아이처럼 어머니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하던 티모시는 화장실에 혼자 있게 되자,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살짝 지친 기색을 드러낸다. 일 년 만에 만난 어머니 앞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그녀 역시 나름의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약간의 척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어딘가 좀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침착하게 보여 어색하지만, 사실 이 어색함이야말로 이들의 관계에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지지도 않은 이 느슨한 관계가 주는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모녀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헤어진다.
마지막 챕터인 ‘시스터 브라더’에 나오는 쌍둥이 남매는 이전 가족들보다 좀 더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불의의 경비행기 사고로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은 빌리와 스카이는 파리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그들이 남긴 유품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남매는 부모님의 가짜 신분증 여러 개를 발견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옛날 사진을 보며 추억에 젖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은 각자의 경험과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부모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맞춰보며, 상실의 아픔을 함께 극복해 간다.
남매는 부모가 남긴 짐으로 꽉 차 있는 창고를 보러 갔다가, 정리는커녕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린다. 이들은 짐 정리를 다음으로 미루지만, 어쩌면 영영 그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잡동사니 속에는 부모님의 가짜 신분증처럼 감춰져 있었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진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애써 알려고 하거나 굳이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가족을 사랑할 수 있다.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부터 깊은 속마음까지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속속들이 알아야만 가족이 유지될 수 있을까? 서로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면서 가끔 안부를 챙기는 것. 누군가는 가족끼리 정 없어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고 선을 넘기 더 쉬워진다. 어떤 게 더 좋은 가족의 모습일지 정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어떤 관계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