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리뷰
중학생 때 이모를 따라갔던 오르세미술관 전에서 인상주의의 아름다운 색채에 매료된 뒤로, 꾸준히 서양 미술에 관심을 가져왔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유명한 미술 작품을 찾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내가 보고 싶은 그림을 인쇄물이나 화면으로만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초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이미 나는 전시를 통해 원화의 강렬한 아우라를 경험했기에 그걸로는 좀처럼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2018년 가을, 미술 작품을 원 없이 감상하고 좋아하는 화가의 발자취를 좇겠다는 결심으로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36일간 21개의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질릴 정도로 실컷 서양 미술을 감상했지만, 원화를 향한 열망이 채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갈증만 더 심해졌다. 모니터와 책으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유화 물감의 질감이나 색채가 주는 황홀감 그리고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에너지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확신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보기 위해 매번 해외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라, 아쉬운 대로 국내 대형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가곤 했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개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기대가 컸던 전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특정 시기나 화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도 좋지만,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서양 미술사를 천천히 따라가는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더니즘까지 600년에 걸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해외로 반출한 적 없었던 주요 상설 컬렉션 25점을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서부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뛰어난 컬렉션 중 과연 어떤 작품이 한국에 왔을지 기대가 되었다.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부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2부 ‘바로크’, 3부 ‘로코코에서 계몽주의까지’, 4부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5부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까지’. 전시 동선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서양 미술의 큰 흐름은 물론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당시 유행 등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시기는 인상주의부터 현대미술까지의 시기이다. 이전 시기의 작품들은 종교적인 색채를 띤 작품이 많은데, 무교이기도 하고 성경을 잘 몰라서인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또한, 붓 터치가 거의 안 보이게끔 매끄럽게 표면이 처리된 그림들은 기술적으로 완벽함을 보여주지만, 그 완벽함 때문에 오히려 작품과 묘한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상상의 여지가 개입할 틈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잘 구성된 작품을 볼 때면 작가의 테크닉과 표현력에 감탄이 나왔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인상주의 이전 시대의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이다. 이 작품은 고야가 중병을 앓고 청각장애를 얻은 뒤 그린 초상화라고 한다. 왕실 화가였던 고야가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였으니, 초상화 속 주인공은 꽤 이름 있는 가문의 공작이었을 것이다. 보통 이 정도 권력을 가진 남자의 초상화는 대부분 입을 굳게 다문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응시하거나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그림 속 남자는 마치 액자 너머의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살짝 입술을 벌리고 있다. 만약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이런 모습을 찍었다면 대부분 바로 삭제했을 B컷 같다. 그런데 고야는 이 그림에서 일부러 인물이 말을 건네는 듯한 모습을 담아 새로운 실험을 선보였다. 보통 나는 초상화에서 인물의 생명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 그림 속 남성에게서는 지금도 액자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 전해졌다.
아마도 고야는 청력 장애를 얻은 뒤 사람의 입 모양을 보며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않았을까? 귀가 잘 안 들리는 고야에게는 어쩌면 입을 다문 사람보다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술을 벌린 사람의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년에 ‘말을 건네는 듯한’ 모습의 초상화를 그린 건 단순히 재미있는 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상화 속 인물이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지만,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고야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엘 그레코의 ‘참회하는 성 베드로’였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의 모습은 16세기 후반 화가들 사이에서 자주 다뤄진 소재다. 엘 그레코의 그림 속 베드로는 예수를 배반한 후회와 슬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비스듬히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눈물이 맺힌 베드로의 촉촉한 눈망울 속에서 그가 짊어진 죄책감의 무게와 고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기대했던 인상파~모더니즘 시기에서는 반가운 화가의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모네부터 에드가 드가, 호아킨 소로야 등 친숙한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 기약 없이 헤어진 친구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호야킨 소로야는 유럽 여행 이후 알게 된 화가라, 그의 작품을 실물로 많이 접하지 못해 항상 아쉬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딱 한점이었지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 그랑하의 마리아’를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눈부신 지중해의 햇살이 캔버스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결핵에 걸렸다가 회복 중인 자신의 딸 마리아를 그린 작품이다. 딸을 향한 소로야의 애정 어린 시선이 화사하고 맑은 색감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전시를 볼 때마다 늘 아쉬웠던 점은 여자 화가의 존재가 미미하다는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서양 미술사에서 남성 화가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여성 화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작품을 좀 더 많이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늘 컸었다. 이번 전시 후반부에는 베르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마리 로랑생, 수잔 발라동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적 혼을 불태웠던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전시장을 나오며, 앞으로 많은 여성 화가의 그림이 국내에 소개되고, 그들의 개인전이 활발히 열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았다.
이번 전시는 모두가 아는 화가의 유명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생각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화가의 작품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시를 미켈란젤로, 반 고흐, 모네 등 교과서에서 배운 유명 화가들의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서양 미술의 큰 흐름을 훑기에 더없이 좋은 구성과 동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도 비교적 쉽고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동선도 복잡하지 않아 전시장 내부를 산책하듯 걸으며 600년 미술사를 천천히 훑을 수 있다.
찬 바람이 부는 계절, 따뜻한 실내에서 서양 미술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2026년 2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