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엔 가족이 10년 만에 우리 집에
다 모였다. 몇 년 간 연락이 끊어져 모두를 애타게 만들었던 막내 삼촌부터 군대 제대 후 처음 보는 사촌 동생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집 안 가득 둥둥 떠다녔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과 전을 부치는 소리가 어우러져
정겨운 명절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 동생들은 도대체 집에서
뭘 먹는 건지 볼 때마다 키가 훌쩍 커져 있었는데,
앳된 얼굴은 거의 사라지고 어느새 제법 자기만의 멋을 낼 줄 아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놀이터로 뛰어가 시끄럽게 떠들며 놀기 바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괴물 놀이를
하기엔 서로의 몸과 머리가 너무 커져버렸다는 걸 깨달었을 때부터, 점점 말수가 줄어들더니
방에 틀어박혀 각자 핸드폰만 쳐다보기 바빴다.
데면데면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고
우리 사이의 어색한 공기는 이대로 영원히 지속될 거 같았다.
사실 나는 맏이로서 이 어색한 분위기를 내가 깨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아무도 나에게 그걸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책임감에 비해 말주변이 부족했던
나는 어떤 화제를 던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먼지 폴폴 쌓인 추억 속 케케묵은 장소를
비장의 무기 삼아 꺼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장소인 바로 그곳,
킨더랜드.
화정역에 위치한 키즈 카페인 킨더랜드는 방학 때면 꼭 한 번은 놀러 갔던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작은 엄마 두 분이 사시는 일산과 파주 근처여서
킨더랜드에서 자주 만났는데, 서울 동쪽 끝에 살았던 우리는 그곳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넘게 가야 했다.
평소 같으면 지하철에 앉아서 얌전히 책을 읽었을 나도 킨더랜드를 가는 날 만큼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 몸을 들썩였다.
킨더랜드의 가장 큰 매력은 꽤 큰 규모의 미로 같은 놀이시설이 있어서 몇 시간을 놀아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 한 명이 기어서
이동할 수 있는 터널이 여러 방향으로 연결된 놀이터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다양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끝에는 미끄럼틀이나 거대한 포켓몬 볼처럼
생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5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일일이 챙기기 귀찮아질 때면 난 그곳에 몸을 숨기고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바지의 무릎이 닳을 정도로 터널을 정신없이 기어 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해 괴물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러다 지치면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미니 영화관에 가 잠시 누워 쉬었고, 체력을 회복하면 방방이로 뛰어가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천장을 향해 높이 뛰곤 했다.
킨더랜드에서 놀던 그 시간들을 나만 기억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킨더랜드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다들 목소리가 높아지고 눈이 빛나는 게 느껴졌다.
그때의 추억을 돌아가며 한 조각씩 꺼내 놓을수록 우리 사이에 있었던 투명한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 혼자 좋았다고 간직하고 있을 추억이라 생각해 혼자 조용히 그곳을 그리워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킨더랜드에서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킨더랜드를 휘젓고 돌아다니던 꼬맹이들은 어느새 진로와 취업 걱정을 하는 보통의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는 결코 킨더랜드에서의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킨더랜드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성격도 생김새도 다 다른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