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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Mar 24. 2021

엄마와 딸과 봄 스카프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에고고! 너무 피곤하다~"

오늘도 고된 워킹맘의 일과를 마치고 이불에 푹 쓰러지는 나의 외마디 소리다.

조금 있으니, 엎드려 있는 나에게 이불을 가만가만 덮어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딸은 엄마 어깨가 나올세라, 발가락이 나올세라, 고사리 손으로 꼼꼼하게 이불을 조물조물 덮어준다.

"엄마,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이불 덮어줄게~"


"아! 딸이 있어 너무 좋다~"

나의 외마디 소리는 어느새 흐뭇함으로 바뀐다.

어렸을 때 느꼈던 친정엄마의 손길처럼, 딸아이의 손길도 너무 따뜻하다.

"엄마는 로미(필명) 같은 예쁜 딸이 있어서 너무 좋아~ 어디서 이렇게 이쁜 딸이 왔을까?

  하나님이 엄마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다고 이렇게 예쁜 선물을 보내주셨나 봐~"

말하면 도,

"나도 엄마가 너~무 좋아. 엄마도 너~무 예뻐"

라고 화답한다.


이렇게 이부자리에서 딸과 꽁냥 거리고 있으면,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쓱 들어오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로미랑 무슨 이야기했어? 나도 이야기해주면 안 돼?"

내심 부러운 눈치다. 그렇지만, 벌써 키가 170이 넘고, 코 밑에 솜털도 부숭숭 난 아들과 이런 대화를 하긴 좀 그렇다.

"응~ 별 이야기 아니야. 잘 자라고 그랬어. 우리 아들도 잘 자요~"

대충 짧은 인사로 마무리.


이번엔 남편이 다가온다.

"로미야~ 엄마랑 꼭 안고 있으니까 좋아? 아빠도 뽀뽀 한 번 해주면 안 돼?"

라고, 뽀뽀를 구걸해 보지만, 딸은 매몰차게 발차기를 한다.

"저리 가~ 저리 가!"

"아야~ 아야! 로미는 너무해. 엄마만 좋아하고. 힝~"

딸에게만 애교를 시전 하는 보통의 보수적인 남편, 내 딸의 아빠가 사라지자, 딸은 헤헤거리면서 내 품으로 폭 파고든다.


엄마 바라기 딸은 자신은 시집가지 않고 엄마랑 평생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입이 귀에까지 걸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내 결혼사진을 쓱 쳐다보며, 말한다.

"칫. 로미 좋아하는 남자 친구 생기면, 엄마 안녕~하고 얼른 떠나버릴걸?

 나중에 사춘기 돼서 엄마한테 막 화내고, 저리 가라고 하면 엄마 섭섭해서 어쩌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딸의 약속. 하지만, 상처 받기 전에 마음의 대비를 단단히 해 두어야 한다.

내가 해봐서 안다. 그 약속, 순식간에 까먹을 거란 걸.


친한 동창 친구 엄마가 최근 큰 뇌 수술을 받으시고 오래 병상에 계시다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다른 형제의 사정도 여의치 않아,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 혼자 배변 뒤처리까지 해 드리며 힘들게 엄마의 곁을 지키고 있다.

친구의 엄마는 친구 유학 뒷바라지 하면서, 좋은 직업으로 키워 내셨고, 친구와 엄마와의 관계는 보통의 모녀 사이보다 끈끈하다.

이런 친구가 엄마를 간병하느라 그토록 엄마가  애써 뒷바라지해서 이룬 자신의 일도 내려놓고, 자신의 삶도 놓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너무도 가까워서, 서로의 경계까지도 희미할 정도다.

엄마는 딸을 위해 자신을 없애고, 딸은 엄마를 위해 자신을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엄마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서로 내 마음과 같지 않다고 쉽게 속상해하고, 서로의 공감을 얻는 건 온 세상을 얻는 힘이 된다.


오늘도 딸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며, 학교는 왜 이렇게 일찍 가야 되느냐 툴툴대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잠시 서 있다현관 앞으로 다시 돌아와 두 팔을 내민다.

"엄마, 허그~"

엄마가 안아주면 좀 힘이 난다고 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라나.

"응. 우리 로미 힘내~ 엄마가 기도할게"

사실 아침에 늦게 준비한다고 잔소리할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러다간 입이 쑥 나온 채 가는 딸의 뒷모습을 기 일쑤이고, 나의 하루도 함께 흐려지기 때문에 이번엔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딸을 배웅하고, 나는 새로 장만한 봄 하늘색 스카프를 매고 출근을 했다.

봄이 왔는데, 엄마 옷은 칙칙한 가을 옷이라는 딸의 잔소리 때문이다.

잔소리를 하는 딸이 없었다면, 나는 봄이 와도 계속 칙칙한 갈색 쟈켓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었겠지?

딸이 내 곁에 있어 봄 하늘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봄은 따뜻하고 설레지만, 너무나 짧다. 또, 너무 짧아서 따뜻하고 설렌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딸의 손을 꼭 잡고 공원 한 바퀴를 돌아야겠다. 오는 길에 떡볶이도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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