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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Mar 22. 2021

나는 그 꿈을 정말 포기했을까?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우리 딸은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이 사육사였다. 사육사는 동물 배설물도 치워야 되고, 위험한 동물한테 공격받을 위험도 있고 등등의 이유를 대며 괜스레 사육사보다는 수의사가 어떠나며 슬쩍 떠보았지만, 자신의 꿈은 확고하다며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딸이 며칠 전에 갑자기 자신은 사육사의 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니 왜? 너 꼭 사육사라 될 거라고 했잖아?"

"응.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육사가 되려고 했는데, 동물이 죽는 건 너무 마음 아파서 못 볼 거 같아 포기했어."


아, 그러니까 동물이 싫어졌다거나, 사육사가 되면 힘들겠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진짜 동물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꿈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여서, 왠지 짠해졌다. 사실 딸의 꿈을 응원하기 하기 위해 강아지라도 키워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열대어 구피를 키워보기로 했다. 딸에게는 사육사가 꿈이니 네가 먹이를 책임지고 주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그런데, 튼튼하게 잘 지내던 구피가 수명을 다했는지 한 두 마리씩 죽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도 얼마 전에 게임 개발자가 되는 꿈을 포기해야겠다고 말했다. 또래들처럼 게임을 워낙 좋아하는 아들이었기에, 왜냐고 물어보니, "정말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라고 한다. 게다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한다. 아마 게임 방송을 하는 유튜버 느님이 돈의 중요성을 설파하신 것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 꿈이 무엇이었나, 왜 포기하게 되었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어렸을 때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책을 봐서, 친구들이 책벌레라고 놀릴 정도로 책을 좋아했었다. 도서관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는 책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도서관 사서님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햇빛이 환한 통창이 있는 도서관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신간을 누구보다 먼저 읽고, 책을 정리하기도 하며 지내는 상상을 하면 왠지 마음까지 차분해지고 포근해진다.


이런 나의 꿈은 언제 사라졌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방송반 활동을 할 적에는 신문방송학과에 가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다소 내성적인 나였기에 자신이 없었고, "에라 공부나 하자"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과는 법대 말고 갈 데가 있어?"라는 역시 다소 뜬금없는 아버지의 권유로 등 떠밀려 법대를 가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딸을 법조인으로 만드는 건 아버지의 로망이었지, 나의 꿈은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 없이 이 길에 들어선 것 치고는, 나름의 내 길과 적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가만 보니 우리 때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 교육 과정에는 진로와 직업을 탐색하는 교과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과목에는 "진로탐색"이라는 정식 교과도 있고. 중학교 1학년 전체가 아예 자유학기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재작년 아들 초등학교 반 공개수업을 떠올려 보니,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아이들 태반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 때보다 더 획일적인 장래희망이다. 우리 때는 "대통령"도 있었고, "미스 코리아"도 있었으니까


얼마 전에는 우리 딸이 출근하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커서 정 할 것이 없으면, 변호사가 되어야겠어."

"뭐라고? 왜?"

"응. 변호사가 다른 것보다 좀 쉬워 보이는 것 같아서."

"하하하. 아냐. 아냐. 엄마 힘들어. 변호사 쉬운 거 아니다. 너."


우리 딸은 왜 변호사가 쉬워 보였을까?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있는 법률 웹툰, "로투니"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 딸이 변호사가 된다면 많이 애처로울 것 같다. 늘 싸움 속에 사는 데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대신 지고 싸워야 하는 직업이니까 말이다. 가정생활과 일을 양립하기도 쉽지 않다. 남편은 아예 대놓고 반대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은퇴 후에 공공봉사 활동으로라도, 도서관 사서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아직 어렸을 적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평생 진로를 탐색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했다고 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변호사로서 어떤 전문 분야로 나가야 할까? 로펌에서 일해야 하나, 사내 변호사가 되어야 하나? 나는 로펌 변호사로 시작해서, 공무원 생활도 잠시 해 보았다가, 현재는 법원에서 전임으로 조정만을 담당하는 조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진로상담을 하겠다고 하는 후배들에게, 늘 "진로 고민은 나도 아직 하고 있는걸?"이라고 농반 진반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 같다. 빨리 은퇴해서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든, 그 꿈은 아이들의 것으로 놓아두어야겠다. 나도 환한 햇빛이 들어오는 통창을 가진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며, 차 한 잔을 마시며 신간을 들여다보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는 꿈을 간직한 채, 오늘 하루의 품앗이를 열심히 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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