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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Sep 14. 2022

제주 우럭튀김 식당의 민경이 이모를 찾습니다.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우리 가족이 제주여행에서 꼭 들르는 식당이 있다. 월정리 해변 근처 "민경이네 어등포 식당"이다.


십여 년 전, 둘째가 아장아장 걸음마할 무렵이었다. 지금이야 식당과 카페가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월정리에 뭐가 별로 없었다.

소심하게 해물뚝배기만 주문하는 우리에게,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키가 겅중하게 큰 이모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여기 왔으면 우럭튀김을 꼭 먹어야 되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검증된  맛집도 아닌데 큰돈을 쓰기 싫어 손사래를 쳤다.

이모는 큰 눈을 꿈벅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유... 우럭튀김이 맛있는데~"

이모가 너무 아쉬워해서 오히려 미안해졌다.

"다음에 오면 꼭 먹어볼게요. 하하."


멸치볶음, 미역 초절임, 콩나물무침, 김치... 간단하고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이 나왔다. 그런데 시큰둥하던 남편이 눈을 번쩍 떴다.

"반찬 맛이 범상치 않은데..?"

먹으라는 우럭튀김은 시키지도 않은 주제에, 맛있다며 반찬을 두 번이나 리필해 먹었다. 뚝배기도 싹싹 비웠다.

이모는 둘째가 너무 귀엽다며 이뻐해 주셨다.


다음번 제주에 갔을 때 우린 공항에 내리자마자 민경이네로 갔다. 고민 없이 우. 럭. . 김. 정. 식. 을 시켰다. 튀겨서 바삭바삭하고 꼬들꼬들한 생선에 양념치킨 소스 같은데 조미료 맛은 하나도 안나는 간장소스가 잔뜩. 이모가 분해해 준 우럭튀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뼈다귀 하나하나까지 이미 뱃속으로! 심지어 남편은 접시를 핥을 기세다.


한동안 요리에 빠져있던 남편은 집에 돌아와 우럭튀김 요리에 도전했다. 우럭을 사 와서 튀기는 것 까지는 했는데, 도저히 소스 맛을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민경이 이모한테 비법소스 비결을 배워야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눈치였다.


그 후 제주 여행의 시작은 늘 민경이 이모와 함께였다. 둘째 딸의 키가 커갈수록 민경이 이모의 흰머리도 늘어갔다. 까맣고 매끈하던 피부도 조금씩 까칠해지셨다. 집에서 우럭을 튀겼다는 남편의 말에 킥킥 웃으셨다.

그 사이 민경이네 식당은 조금씩 입소문이 나서 지, 건물을 새로 올려  이전을 했다. 유명인들의 싸인도 한 벽면에 가득해졌다.


재작년인가... 둘째가 오빠와 싸우다 오빠 얼굴을 할퀴어서 상처가 났다. 둘 다 얼굴이 퉁퉁부은 채로 민경이네 식당에 갔다. 민경이 이모가 또 눈을 크게 뜨셨다

"아니, 오빠 얼굴이 왜 이래?"

"동생이 그랬어요~ 둘이 싸우다가."

내가 고자질하자 둘째 입이 삐죽 나왔다.

민경이 이모는,

"에이그,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괜히 그랬겠어? 이쁜 아가가. 그렇지?"

혼날까 봐 긴장했던 딸의 표정이 확 풀린다. 이모가 특별히 서비스라며 딸이 좋아하는 전복죽까지 주시자,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런데, 이번 제주여행에선 민경이 이모를 볼 수 없었다. 대신 얼굴이 하얗고 동글동글하고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어, 민경이 이모가 안 계시네요~?"

"그만뒀어요. 내가 말렸는데 요양보호사 해 본다고... 애도 없고 심심하니까... 맨날 식당에 있으니까 지겹대. 에휴."

"어머.. 두 분이 엄청 오래 같이 하셨잖아요."

"그럼~ 십 년도 훨씬 넘었지~."


멸치볶음, 미역 초절임, 콩나물무침, 김치... 나오는 반찬 종류도 맛도 똑같은데 눈을 크게 뜨고 반겨주는 민경이 이모가 없으니까 마음이 허전하다. 아이가 없어서 우리 둘째를 그리 예뻐해 주셨던 건가...


"그럼 방금 그 아주머니가 사장님인가 보네. 민경이 어머니. 민경이 이모는 월급만 받고 일하셨나 보다..."

식당 일보다 요양보호사가 더 고될 텐데... 내심 걱정 되었다.

"아니야. 민경이 이모는 싹싹하고 붙임성도 좋으니까 요양보호사도 잘하실 거야."

남편이 말했다.


민경이 이모! 왜 비법소스 비결도 안 알려주시고 훌쩍 가버리셨어요. 섭섭하게...

그런데, 왠지 다시 돌아오실 것만 같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젊은 여자분이 민경 씨이고, 주방에서 우럭을 튀기는 사장님이 민경 씨 어머님이시겠지만, 왠지 민경이 이모가 없는 민경이네는 민경이네가 아닌 것만 같다. 여전히 우럭튀김은 너무 맛있지만 말이다.


참고로, 항상 먹느라 바빠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관계로, 업체 사진 올립니다. 그러나 업체와 1도 이해관계없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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