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씨가 주연한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이 등장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학생시절 아무 죄도 없이 끔찍한 폭행을 당한 주인공 동은이 성장해서 가해자 딸의 담임교사가 되어 복수한다는 이야기이다.
드라마에서 가해자 연진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심지어 딸의 담임이 되어 찾아온 동은에게 또다시 모멸감을 준다. 피해자 동은이 폭행을 당할 때 당임선생님도, 부모도 동은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너는 잘못한 것이 없냐며 뺨을 때리고, 가해자 부모가 던져주는 돈에 눈이 멀어 얼른 합의를 해버린다.
이 모든 배경은 동은이 어른이 되어 잔인하게 복수극을 벌이는데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은이 스스로 원한을 키우고 가해자들에게 복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럼 드라마와 달리. 만약 동은이에게 어느 한 명이라도 진정한 사과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과거 십 년간 소년재판 국선변호 활동을 하면서 현실의 학교폭력사건을 종종 접해 보았다. 다만, 소년재판으로 오는 사건들은 드라마와 같이 극단적으로 끔찍한 폭력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학교폭력이라도 강력사건의 경우 소년사건이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그러하듯이, 대개 현실의 동은이 엄마들은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얼마면 합의를 하겠냐"는 태도를 보이는 연진이 부모들에게 분노한다.
그런데, 연진이 부모들도 이유가 있다. 실제 학교폭력 사건의 현장에서는 가해자나 가해자 부모가 사과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먼저 머리 숙이며 "죄송하다"는 진심을 전할 때, 화해의 실마리가 풀리는 법이다. 서로 실타래처럼 꼬이고 얽힌 감정 상태로 법원에서 만난 자리에서, 한 가해학생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편의상 피해학생을 동은이라고 하자.
"오늘 동은이와 동은 어머니 말씀을 직접 들으니 저도 가슴이 아프네요. 진작 찾아뵙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경찰이 피해자에게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저희가 전화드리기가 조심스러웠어요. 변호사가 합의 봐준다는 말에 모든 걸 맡겼었는데 제 생각이 짧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현실의 학교폭력은 대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피해학생에게도 가해학생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는 것이 상처의 치유와 바람직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가해학생도 끝없는 자책으로부터 회복되어 건강한 자아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도 인터뷰에서 많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더라는 말을 했다. 작가는 " '사과로 얻는 게 뭘까'를 고민했는데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거더라"며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잃게 되는데, 영광 같은 것이다. 그 사과를 받아야 원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제목을 '더 글로리'로 지었다. 세상의 피해자들에게 드리는 응원이다. 그들의 원점을 응원한다"고 밝혔다고 한다(2022.12.10.jtbc 박정선 기자).
‘분노사회’라고 불릴 만큼, 최근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갈등과 분노가 차고 넘친다.
상대를 향한 말이 칼날처럼 상대의 마음을 찌르고, 그렇게 난 멍과 상처는 또다시 더 큰 화가 되어 내게로 돌아오는 사회이다.
진정성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용기 있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미움과 용서의 경계에서
어느 쪽 방향으로 발자국을 내딛을 것인지는 결국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물론 통쾌한 복수극을 보고싶은 <더 글로리> 시청자들은 연진의 사과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더 글로리 2부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자세한 내용은 <법정희망일기:조정변호사가 써내려간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에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