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독법률가회 (CLF) 독서모임에서 “법정희망일기: 조정변호사가 써 내려간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이 책은 절반은 민사조정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나머지 절반은 제가 상임조정위원으로 일하기 전에 10년 정도 소년재판 국선보조인으로 일했던 이야기를 썼어요.
제가 처음 상임조정위원으로 위촉되었을 때는 대부분 전관 출신 분들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나이도 어린 편이었고요, 또 여성이었고 해서,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을까? 하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머리 염색을 안 해서 일부러 나이 들어 보여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그런데 실제로 조정을 해 보니까, 사람이 어떤 권위나 논리나 이성으로 설득이 되는 게 아니구나. “내 말을 잘 들어주어서”,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서”, “저 사람 참 애쓰네” 이런 출처불명의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설득하려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설득의 출발점이었다고 할까요! 설득해야겠다 생각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상대방은 이미 방어태세가 되는 거죠.
사실 조정의 본래적 의미 자체가 당사자의 자발적, 자율적 분쟁해결인데, 우리나라는 법원에서 주도적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직권으로 조정회부하고, 합의가 안되면 강제조정을 하고 하다 보니까 조정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판결 직전에 판사가 강제조정하면서, 이의 하는 쪽에 페널티 준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던 사례도 있었고요.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서 민간 주도형 조정기구를 만든다고 상임조정위원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요. 이렇게 말하면 그 취지대로 잘 운영되었는지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얼마 전에 상임조정위원 신규위촉식이 있었는데, 상임조정위원 연령대가 대폭 낮아졌어요. 전국 법원에 총 11개의 조정센터가 있는데 그중 8개 조정센터 위원장이 여성이 되었고, 또 대부분 70년대생으로 신규 임용이 되었거든요. 원래 10년 이상 변호사 경력이 필요한데, 예외적으로 조정위원 3년만 하면 상임조정위원 지원 자격을 줘요. 그래서 이번에 조정전담변호사로 3년 일하신 분들이 지원을 해서 많이 합격을 하셨습니다. 최연소 상임조정위원이 85년생이에요. 엄청 큰 변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저의 약점이 강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조정할 때 일단 잘 들으려고 노력해요. 당사자분들 말씀하실 때 아이고.. 그래요? 많이 힘드시겠네요.. 이런 추임새를 넣으면서 공감을 많이 해 드리려 하고 있고요. 사실 변호사님들 바쁘실 텐데 당사자분들 이야기 길게 하시면, 막으시기도 하고, 좀 빨리 끝내 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시기도 하시는데요. 변호사 입장에서는 법률적인 쟁점과는 관계없으니까 쓸데없는 말이다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이 사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소송하느라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아픈 분들이 많다 보니까... 실제로 가족끼리 소송하는 분들 중에 암이 걸리거나 몸이 아픈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조정할 때만이라도 조정 성립 여부를 떠나 위로해 드리자, 편안하게 해 드리자 이런 생각으로 조정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면 절대 조정안 하겠다 맘먹고 오셨다가도, 이야기하면서 감정이 해소되고, 또 해결점도 찾게 되는 드라마틱한 반전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인데요. 새엄마가 의붓딸에게 압류를 건 사건이 있었어요. 남편과 이혼하면서 위자료를 다달이 나눠서 받기로 했는데 성인이 된 의붓딸한테 연대보증을 세운 거예요. 아니, 어떻게 아무리 의붓딸이라도 딸한테 아빠 위자료 갚으라고 보증을 세우고 압류까지 하나 이렇게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새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분도 나름 딱한 사정이 있었어요. 남편이 무능하니까 혼자 일하면서 남의 자식들을 키운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까지 피웠어요. 그래서 이혼을 했는데 돈 한 푼 못 받고 갈 곳이 없어 늙으신 친정엄마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친정엄마도 몸이 편찮으셔서 낮에는 복지센터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밤에는 아픈 친정엄마를 돌보면서 고생고생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전남편이 계속 돈을 안 줘요. 그럼 딸을 통해서 압력을 넣으면, 마지못해 조금씩 주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조정실에서 딸이 “그래도 엄마는 엄마가 있잖아!”이렇게 소리치면서 막 우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새엄마도 울음이 터지고... 그런데 합의는 안되고... 그래서, 제가 일단 조정안을 보내드리겠다고 가시면서 두 분이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하고 조정을 마무리 지었어요.
사무실에 들어와서 이걸 어떻게 조정을 하나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사무실로 딸이 전화가 왔어요. 둘이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딸이 제시하는 금액에 합의를 봐주기로 했다는 거예요. 다시 올라오시라고 해서 임의조정을 했지요. 결국 새엄마지만 딸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집착일 수도 있지만요) 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송을 하게 되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죠. 이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잘 듣기만 해도 거의 70%는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냥 듣는 것이 쉽다고 생각되실 수 있는데, 진짜 편견 없이 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듣다가 내 생각이, 편견이 개입되면 충. 조. 평. 판, 그러니까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말들을 하기 쉽거든요. 말을 끝까지 듣기도 힘들고요. 법조인들이 잘하는 게 말 끊는 거잖아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하고, 이걸 상대방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게 조정위원의 역할인 것 같아요. 사실 현실적으로 재판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조정위원이 법원의 듣는 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조금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사해 보니까 조정을 한 번이라도 거쳤던 사건들은 조정이 불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심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비율, 그러니까 재판으로 갔더라도 다시 조정이나 화해권고로 끝나거나,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항소하지 않고 바로 확정되는 비율이 약 70% 정도에 이른다고 해요. 조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조사결과가 있는데요, 판결로 사건이 끝났을 경우에 집행문 발급비율이 50% 정도인데, 조정으로 사건이 끝났을 경우는 그 비율이 1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재판에서 이겼더라도 상대방 재산이 없으면 강제집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강제집행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조정으로 끝나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거니까 시도해 볼 실익이 있는 것이죠. CLF 변호사님들도 조정의 이런 장점들을 당사자들한테 잘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소년재판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제가 소년사건 국선보조인으로 지원하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 볼까 하는데요. 아무래도 보험사건을 많이 하다 보니까 가끔 죄책감이 드는 일들이 있었어요. CLF에서는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는 기독변호사의 소명을 이야기하는데, 보험회사 사건을 하다 보면 오히려 이런 분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예전에 기독변호사가 보험사건을 해도 되냐 하는 토론도 CLF에서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도 청소년들은 상대하는 일이니까 엄마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었거든요.
막상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러운 거예요. 고등학생 때 아이를 낳아서 학교도 그만두고 편찮으신 할머니랑 단둘이 키우는데 아기가 아파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다 잡혀온 학생, 아버지가 치매가 걸려 엄마는 집을 나가고 혼자 아버지를 돌보는데 아버지한테 배를 걷어차여서 장파열까지 온 학생, 새아빠랑 엄마랑 살다가 엄마가 갑자기 자살해 버려 친아빠를 찾아갔는데 애를 방치해서 혼자 사는 중학생 등등... 기구한 사연들이 너무 많았죠.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가슴에 맺혔어요.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했어요. 최근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나,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죠? 사실 화해나 합의에 대한 이야기는 인기가 없어요. 아니, 드라마에서도 실제로 나왔지만 합의를 해줬다고 하면 오히려 막 화내시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 사회는 소년범들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엄격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국선보조인 활동을 해보면, 그렇게 자극적인 사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소년범들은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행청소년들이거든요. 심지어 특별한 비행전력이 없는데도 자꾸 집을 나가고 태도가 불량하다고 보호자가 신고해서 잡혀 들어온 우범소년들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소년범들을 미화한다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니까요.
사실 청소년들의 재비행률이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환경 개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법정희망일기” 책 내용 중 “소년재판 후, 다시 연락 못 한 이유”라는 챕터에서 이 이야기를 썼는데요. 저 같은 국선보조인은 재판 단계에서만 이 아이들을 만나니까, 제가 국선보조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고, 교회 다닌다고 하면 같이 손잡고 기도하고, 의견서 잘 써주는 거 이 정도더라고요. 처음에는 시설 들어가면 선물도 보내주고 편지도 보내고 했는데, 지속적으로 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여러분들 잘 아시는 천종호 판사님이 대표적이고요, 청소년위탁시설인 둥지회복센터를 운영하시는 임윤택 목사님, 양 떼 커뮤니티 사역을 하시는 이요셉 목사님, 소년희망공장을 운영하시는 조호진 시인님.. 등등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하시는 분들이 숨어 계시더라고요. 제가 직접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돕기 어려우니까, 이런 분들을 조금이나마 후원하는 것도 우리 기독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또 “회복적 사법”에 대해서도 소개드리고 싶은데요, 제 책 “우리가 서로 화해하기까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관련해서 임수희 판사님이 쓰신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이라는 책도 추천해 드리고 싶은데요. 가해자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응보적 사법이라면, 회복적 사법은 피해 상황과 회복에 집중하는 것이에요. 특히, 청소년 비행의 경우에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피해회복과 더불어 가해자의 범죄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복적 사법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서울가정법원 소년사건 화해권고 절차예요. 이 일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화해권고위원 중 두 명은 상담위원님들이고, 한 명은 변호사로 팀을 짜서 하거든요. 변호사들은 조정할 때 얼마 원하냐? 양 쪽 물어보고 안되면 끝! 인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이 상담위원님들은 미리 가해자, 피해자 양쪽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화해권고기일 당일에도 한 네다섯 시간을 이야기를 들어요. 먼저 피해자 입장에서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고, 그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고... 부모님한테도 똑같이 물어보고, 또다시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님한테 똑같이 반복시키고... 아, 저는 멋도 모르고 처음에 갔다가 다섯 시간을 그러고 있으니까 죽을 것 같은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변호사들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 합의문만 쓰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과정을 다 지켜보니까 기적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 경우가 많았어요. 절대 화해할 수 없을 것 같던 학교폭력 가해자, 피해자들이 서로 울고 미안하다고 하고, 용서한다고 하고.. 진정한 회복과 합의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조정위원을 하면서도 그때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할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주변에서 어떻게 에세이집을 쓰게 되었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제가 원래 소소하게 글을 써서 소통하는 습관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거 이야기하면 옛날 사람 인증이지만 새내기 변호사 시절 싸이월드에 “법정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재판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연재했었거든요. 그때는 송무 변호사 중에 젊은 여자 변호사가 별로 없다 보니까 재판 방청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서 제가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내기했다면서 결혼했냐고 물어본 적도 있고, 서류봉투 들고 법원으로 가자고 하니까 택시 아저씨가 사모님이 젊으신데 이혼하러 가시냐고 한 적도 있고요. 이렇게 재판을 하다 보면 웃긴 일도 있고, 또 힘들고 마음 아픈 일도 있었는데, 이런 감정들이 마음에 남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변호사는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걸 글로 써서 올리면 지인들이 함께 웃어주고, 공감해 주는 그런 소통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가 2018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니던 사무실에 사표를 내고 1년 정도 1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한 적이 있었어요. 이때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시작했어요. 여성센터에서 웹툰 그리기 수업도 수강했고요. 그래서 가끔 브런치에 웹툰도 올리고 소년사건 국선재판 이야기도 올렸어요. 상임조정위원으로 일한 후에는 주로 민사조정에 대한 에피소드를 올렸고요. 이렇게 써놓은 메모 같은 글들이 꽤 모이니까 민사조정 실무책도 내봤겠다, 이번에는 한 번 에세이집을 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민사조정 실무 책을 냈을 때처럼 출판사 몇 군데에 출판제안서와 샘플 원고를 보내보았는데, 대부분 퇴짜를 맞았어요. 그래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김형석 교수님 책을 읽고 있던 중에 도서출판 이 와우에서 원고를 모집한다는 문구를 보게 된 거죠. 어? 여기도 보내볼까 해서 적혀 있는 이메일로 원고와 출판제안서를 보냈더니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그런데 처음 보내준 원고로는 책을 내기가 어렵고, 여기에 제 이야기가 더해지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뉴스로 봐도 충분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제 생각과 느낌, 감정이라는 거예요.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분명히 사건에 대한 제 느낌과 감정이 있었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왜 글에 안보였을까? '아~ 일에 내 생각과 느낌을 개입시키지 말자는 직업병 같은 것이 있었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럼 제가 솔직해져야 하는 거네요? 용기를 내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맞대오. 그래서, 제가 “노력해 볼게요.”했더니, 대표님이
“노력보다는... 내려놓으면 될 것 같아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 정말 저한테 필요했던 이야기네요.” 이런 선문답 같은 대화를 했는데, 진짜 뭐랄까 글을 쓰고 안 쓰고를 떠나서 내 삶에 뭔가 큰 도전 같은 깨달음이 온 것 같았어요. 변호사를 하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참고, 내 생각이나 감정도 숨기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 억지로 참고 노력할 일이 아니라, 내려놓음이 필요하구나.. 이런 깨달음이 탁 왔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주말마다 한 꼭지씩 한 꼭지씩 글을 썼고요.. 원고를 완성하고 책이 출간되기까지 합해서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민사조정 실무 책을 출간한 뒤에는 대한변협이나 사법연수원에서 강의 요청도 들어오고, 학회 같은 곳에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해요. 그래서, 실무책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전문가 대접을 좀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저보다 훨씬 경험도 많으시고 강의도 잘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책을 냈다는 것이 크게 어필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꼭 자신이 잘 아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관심 있는 분야, 개척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해서 책으로 출판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쪽으로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세이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요. 저도 두 번째 책은 좀 힘들게 썼기 때문에 내가 왜 책을 낸다고 이러나, 도저히 못쓰겠다고 그냥 포기할까,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이 뭘까 고민을 많이 해 봤어요.. 고민 끝에 결론은 제가 누구를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고, 거기에 누군가 반응해 주는 게 좋아서다.라고 정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런 소통은 그냥 개인 SNS로도 가능하고, 그게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기도 하니까 꼭 책을 낼 필요는 사실 없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끝까지 탈고를 하고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출판사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원고를 보낼 때마다 대표님이 엄청나게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이 됐던 거 같아요.
막상 책을 내고 보니, 제 생각과 마음에 반응해 주시는 독자분들을 만나는 일이 참 기적 같고 뭉클한 것 같아요. 이렇게 CLF 독서모임에서 초대도 해 주시고, 결론적으로 책을 내면 제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시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후로는 함께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