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복수보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서로 화해하기까지
#1.
"... 그래도 다 지나갑니다...
마음건강, 몸건강 챙기시고요...
선생님이 보란 듯이 잘 살아가시는 게 진정한 복수가 아닐까요?"
상간녀에게 위자료를 청구해서 조정실에서 만나게 된 본처에게 드린 말씀이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지만, 두 딸을 키우며 20년간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차마 떨쳐내지 못해 연신 눈물을 흘리신다. 내 눈에도 안타까운 눈물이 맺혔다.
마음은 쉽게 전염되는 법이다. 때로는 여러 마디 말보다 한 방울의 눈물이 더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절대 조정할 수 없다던 그 분은 내가 제시한 조정권고안을 잘 생각해 보겠다며 돌아가셨다.
통상적으로 선고되는 상간사건의 위자료 액수는 혼인관계의 중요성이나 물가상승률 등에 비추어볼 때 지나치게 적어 보인다. 우리나라 모든 사건의 위자료가 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2.
"어른들이 잘해야 하는데... 같은 어른으로서 미안하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이번엔 이혼한 엄마 아빠의 네버엔딩 소송 전에 끼어 법원 조정실까지 오게 된 학생에게 전한 말이다.
재판장님이 학생을 조정에 불러놓고 걱정이 되셨는지 특별히 나에게 사건을 부탁하셨다. 최근 출간한 "법정희망일기" 책을 읽어보시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아마 소년사건 국선 이야기 편을 읽어보신 것 같다.
법원이 낯설고 어려울 학생을 위해 오렌지 주스와 쿠키를 준비해 두고, 편안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무뚝뚝한 사춘기라도 입을 열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 "MBTI 가 뭐야?"라는 질문부터!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묻자 엄마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냐는 질문에는 "바로 지금"이라 했다.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는 "제발 엄마아빠가 이 모든 싸움을 다 그만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진심을 전하자, 전남편과의 합의를 계속 거절하던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그런데... 그래도 여전히 합의를 하겠다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거 같으셔도 하실 수 있어요. 용기 내 보셔요. 엄마시잖아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엄마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지인의 부축을 받으며 한참을 대기실에 앉아 울었다.
떠나는 아이에게는 당장 엄마아빠가 싸움을 끝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오늘 법원에 나와서 솔직한 마음을 말해주어 긴 싸움이 훨씬 짧아지게 될 거라고...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시간은 의미가 있을 거라 말했다.
용서는 복수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 도돌이표처럼 돌아오기 때문이다.
#법정희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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