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화해하기까지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뭘까. 돈일까, 명예일까, 지식일까. 내 생각엔 ‘인정-나의 수고를 알아줌’인 것 같다. 재판의 승패 여부를 떠나 의뢰인이 나의 수고를 알아 주고 감사해하는 것, 재판부에서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
8년간이나 계속된 분쟁이 있었다. 운송회사와 운송기사 간의 분쟁이었다. 운송회사 측이 계속 궁지로 몰리는 상황에서 다크호스처럼 한 변호사님이 나타났다. 유리한 하급심 판결들을 만들어가며 기세를 올렸지만 대법원에서 기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결국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조정센터에도 여러 차례 회부된 사건이어서 나는 오랜 시간 그 변호사님이 쓴 서면들을 읽어보았다. 읽는 내내 한 가지 분명히 느껴진 점이 있었다. ‘아, 이분은 진심이구나!’
방대한 분량은 둘째였다. 법리만 나열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논문과 기사, 통계 자료로 사실관계와 주장을 뒷받침했다. 나아가 회사들의 절박한 사정과 심정을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한 것 같았다. 조정센터에서 만난 영세한 회사 사장님들은 대법원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긴 했지만, 이 변호사님에 대한 감사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정말 고맙지요. 저희가 법을 알겠습니까, 글을 쓸 줄 압니까. 저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졌지만 하고 싶은 말 후련하게 다 하게 해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5년 전에 시작된 같은 쟁점의 사건이 조정센터로 회부됐다. 상대방은 조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불출석했다. 회사 쪽 변호사님만 영상조정을 신청했다. 컴퓨터 화면 속의 변호사님은 혈색이 좋은 노신사였다. 나는 마이크를 대고 음성이 잘 들리시는지 확인한 후 인사를 건넸다.
“변호사님. 반갑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변호사님 서면을 읽어봤습니다. 너무 진심을 다해 열심히 써주셔서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오늘 영상으로나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는 했는데 성과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해서…. 대법원 판결이 많이 아쉽지요.”
“성과를 떠나서요, 변호사님. 제가 조정하면서 회사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하나같이 변호사님께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더군요. 자신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셨다고, 최선을 다해 애써 주셨다고요. 이 말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변호사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작은 모니터 속이라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울컥하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 밤을 새워 논문을 찾고, 허리가 아프도록 서면을 쓰고, 법원을 몇 번이고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수고와 헌신을 인정받는 순간, 비록 수억의 수임료는 받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변호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기울인 보이지 않는 수고를 가족들이 알아주고 고마워할 때, 직원이 야근을 하며 고생한 것을 사장이 진심으로 격려해 줄 때 그것이 꼭 물질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빛이 가득 차오를 것이다.
결국 사람을 빛나게 하는 건 수치로 따질 수 있는 성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수고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전해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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