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화해하기까지
형들이 해서 따라 했어요.
"형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했어요."
학교폭력 심의 자리에서 초등학생이 한 말이다. 놀이터에서 왜 욕을 했느냐는 어른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인지도 모르는 것 같은, 너무나 천진난만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일은 학교폭력 심의에서 끝나지 않았다. 형사고소로 이어졌고, 결국 소년 재판까지 가게 됐다. 10년 넘게 소년 사건 현장에서 일해 온 나도 솔직히 놀랐다. '이런 일이 재판까지 가나?' 싶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투다 서로 밀치고 욕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 심의가 열렸다. 심의 결과는 '양쪽 모두의 잘못'이었다. 그러자 먼저 학교폭력을 신고했던 쪽 부모가 심의 결과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상대 아이들을 경찰에 고소까지 한 것이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학생들은 가정법원의 소년재판을 앞두고 있었고, 별도로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되어 법원 조정에 오게 되었다.
조정실은 ‘피고 법정대리인’의 이름으로 온 부모들로 가득 들어찼다. 그 부모들은 "우리가 먼저 고소를 했어야 했는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조정 같은 건 필요 없다, 지금이라도 차라리 상대 아이를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요즘 학교폭력 현장에는 공공연한 규칙이 생겼다고 한다. "먼저 신고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야 할 학교가, 먼저 공격해야 살아남는 전쟁터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 씁쓸한 현실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최근 법률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학교폭력 관련 소송 건수는 2022년 51건에서 2025년 134건으로, 불과 3년 사이에 약 세 배 가까이 늘었다. 2025년 한 해에만 전년보다 40%나 급증했다. 행정법원은 올해 학교폭력 전담 재판부를 두 곳에서 네 곳으로 늘리면서, 경험 많은 부장판사도 따로 배치했다. 그야말로 학교폭력의 과잉화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이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최근 주목할 만한 판결도 잇따라 내리고 있다. 친구 외모를 몇 번 지적한 말, 선물을 주고받다 생긴 가벼운 다툼. 이런 일들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돼 징계까지 이어졌지만, 법원은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모두 학교폭력으로 볼 수는 없다"라며 잇따라 징계를 취소했던 것이다. 아이들 사이의 일상적인 갈등과 진짜 폭력은 구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어울리는 과정 속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어른들이 그 과정을 고소장과 소송으로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갈등을 풀어가는 법 대신, 상대방을 먼저 쓰러뜨려야 내가 산다는 것을 먼저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 사건은 복잡한 민·형사상 재판으로 가기 전에 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린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때, 양측이 더 이상 민·형사상 분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조속히 평화로운 일상 및 학업으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라는 문장을 담은 조정 권고를 양쪽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형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했어요." 어린 학생이 한 말이 오래 머릿속을 맴돈다. 아이들의 싸움을 전쟁으로 만든 것은 어른들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도, 결국 어른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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