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니 Feb 14. 2019

다리가 두 번 부러지다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8

워킹맘으로 살다보니 늘 일과 육아와 살림에 쫗겨 종종걸음을 치며 살게 된다. 특히 법인에서 일할 때는 평균 100건 정도의 사건을 진행하면서 하루 몇 건씩 의견서를 쓰고 준비서면을 쓰고 재판을 다니는 와중에, 짬짬이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조정하고 셔틀기사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생필품을 구입하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걸음이 빨라질 수 밖에 없어서, 툭하면 넘어지고 어디 쓸려 다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급기야 3년 전 여름 넘어져 왼쪽 발등이 골절되었고, 한 1년 지나 이제 완전히 나았나 마음 놓을 때쯤 또다시 넘어져 똑같은 곳이 또 골절되었다.


두 번째 사고는 점심시간을 쪼개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작은 까페에 들러 사무실에서 먹으려고 샌드위치를 사들고 나오며 발생했다. 까페 계단을 헛디뎌 넘어져 버린 거다. 


문제는 까페 입구가 경사져 있어서 생각보다 계단 아래 바닥이 한참 낮았고, 매장과 입구가 너무 좁아 낑낑대며 나오다 보면 입구참의 계단이나 바닥 기울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행히 센스있는 까페 여직원이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주어서 응급처치를 해 주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장님께서 더운 여름에 함께 진땀을 흘리며 나를 부축해 인근 병원까지 데려다 주셨다.


사장님 혹시 영업배상책임보험 들어놓은 것 없으세요?

아니요. 그런 거 안들어 놨는데요?

아. 네. 알겠어요 그럼 제 실비로 치료비는 처리할께요. 대신 입구 경사로에 경사 주의 표지판 꼭 만들어 놔 주세요.


사실 영업장에서 넘어진 사고로 작게는 총 손해의 30%부터70%까지 영업장 책임을 인정하는 의견서를 많이 쓰다보니 보험에 가입되어 계시면 그 쪽 보험으로 처리할까 하는 생각이 있긴 했다. 그렇게 하면 위자료나 휴업손해(다쳐서 일을 못해 입은 손해)까지도 받을 수 있고, 혹 영업배상책임보험에 구내치료비 담보가 있다면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선 모든 치료비를 보상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장님은 작은 까페이다 보니 그런 보험이 있는지도 모르셨던 거 같다. 혹 아셨다해도 비싼 금액에 선뚯 가입을 못하셨을 수도 있고.


그래서 치료비는 가입해 두었던 실비보험으로 처리하고, 하루라도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사무실로 바로 복귀하여 하루도 못쉬고 일하였다는 후일담.


어쨌거나 사장님께서는 여러 번 문자로 안부를 물으면서 사고 직후 '경사 주의 표지판'을 세웠다고 알려오셨고, 명절엔 맛있는 떡까지 배달해 주셨으며, 1년 후 잊지 않으시고 완쾌되셨느냐는 문자와 함께 주스 쿠폰까지 발급해 주셨다.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고 나도 주스 쿠폰 쓰면서 쿠폰값보다 열 배 비싼 주스 한 통을 보답으로 포장해 갔다는 훈훈한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