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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Feb 23. 2019

부자 이모가 있나요?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9

망아지 같은 초등 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뉴저지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집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는 15년 전 돌연 미국에서 경영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이제는 미국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 미혼인 친구는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우리 아이들을 참 예뻐해 주었다. 이번에도 우리에게 집을 통째로 내주는 것도 모자라, 출퇴근하느라 바쁜 와중에, 편도 3시간 거리의 뉴욕을 손수 차를 운전해서 구경시켜 주고,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고, 짬짬이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오고, 시차적응이 안되어 새벽까지 깨서 노는 아이들 소리에 새벽에 한 차례씩 깨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게다가 왕복 6시간 거리의 공항 픽업까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은 마침 눈이 많이 내려 친구 학교 수업도 취소 되었다. 아이들은 이모가 집에 온다는 말에 신이 나 함께 눈싸움을 하러 나가자고 했다. 눈이 내리는 하얀 바닥에 금을 긋고, 딸아이와 나, 그리고 친구와 아들이 한 편이 되어 눈싸움을 했다. 꼬마 눈사람도 만들었다.


이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던지,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여러 번 떼를 썼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나에게도 있었던 친정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 이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자 이모, 동생과 나는 그 이모를 이렇게 불렀다. 친정엄마께서는 이모가 큰 호텔을 운영하고 돈을 아주 많이 번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부자 이모는 친정엄마가 안 계실 때도 우리 집에 가끔 들렀다가, 혼자 있는 나를 불러내어 큰 마트에 가신 다음, 사과 박스 하나를 들려주며 먹고 싶은 과자를 다 채워 넣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사주신 과자는 나와 동생이 한 달을 먹었다.  


내가 결혼을 할 때도 부자 이모는 예쁜 크리스털 유리잔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친정엄마 말씀으로는 이제 호텔사업이 잘 되지 않아 예전처럼 부자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게 이모는 여전히 부자 이모다. 아마도 어린 시절 우리 집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한 박스 가득 과자 선물을 안겨주시던 이모의 기억이 더 풍요롭게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국 이모의 기억이 내 유년시절 부자 이모의 기억처럼 풍성하게 남을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마음부자 이모가 될 수 있기를.


부자 이모가 있나요? 가난한 기억 속에 과자 한 박스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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