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동전을 쓸 일이 잘 없지만 그 당시 여행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동전은 필수품이었다. 여행을 하던 중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으려던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한 적이 있던지라 나는 항상 돈을 맞춰서 지불하던 버릇이 있었다.
"동전은 항상 챙겨 다니지. 고맙다!"
그렇게 유럽여행을 시작했고, 며칠 뒤 친구가 챙기라고 한 동전이 어디에 쓰이는지 깨닫게 됐다.
바로 화장실 입장료였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던 쉽게 화장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공중 화장실, 지하철 화장실 등 우리는 급하면 갈 수 있는 무료 화장실이 많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돈을 주고 화장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는 화장실 입장료가 없다. 최소한 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유럽은 공중화장실 찾기가 힘들어 가끔은 유료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프랑스에서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던 적이 있다. 화장실 입구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앉아계셨고 옆에는 동전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나는 처음에 구걸하시는 분인 줄 알았다. 그 아저씨는 나의 급한 발걸음을 막아섰다. 아저씨는 동전 바구니를 가리켰고 당황스러웠다. 구걸하시는 분들 중 이렇게 적극적으로 동전을 요구하는 분은 본 적이 없었기에. 프랑스 스타일(에펠탑 앞에서 지나친 호객행위를 경험하고 왔기에...)이거니 생각했다. 이분들도 자리 경쟁이 치열하겠구나 생각했다. 꼭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나이트클럽 화장실의 이병헌을 마주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영화 <내부자들>
다음 화장실에는 동전 바구니만 하나 놓여있었다. 사람 없이. '이곳 아저씨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구나.' 생각하고 동전을 넣고 볼 일을 봤다. 참 재미있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무인 바구니도 있구나. 기술적으로 한 단계 발전한 형태구나 생각했다.
독일에서 화장실을 찾던 나는 신식 동전 바구니(?)를 발견했다. 동전 넣는 구멍이 문에 달려있었다. 괜히 사람들이 독일 기술력이 뛰어나다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때 깨달았다. 친구가 왜 동전을 많이 챙겨다니라고 했는지. 화장실 이용료부터 레스토랑과 호텔 팁까지 유럽은 동전 없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참 각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앞의 동전 그릇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들이 각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편리한 혜택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 사람이 앉아있다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팁이 따로 포함되어 있다면? 어떤 이는 당황스러울 것이며 일부 사람들은 불쾌감을 표현할지 모른다. 우리에겐 익숙한 일,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팁을 안 주면 "파트타임 잡들의 생활이 어렵지 않을까?", "훌륭한 서비스를 못 받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사교육 비용과 과도한 근로시간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 또한 그들에게 익숙한 일,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합리적인 완벽한 세상은 없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틀린 것 같다. 다른 나라 문화가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열등한 것 같다. 물론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나의 기준과 나의 세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듯이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그들의 기준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관점을 약간만 틀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생각처럼 그들의 주장도 논리성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을 뿐이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프리즘을 이용한 빛의 분산을 배운다. 하나의 빛줄기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빛들과 보이지 않는 적외선, 자외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줄기 빛은 수많은 색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합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빛나기 위해서는 빛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잊으면 안 된다. 빛은 다양성의 집합이다.
우리의 삶이 밝게 빛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의 빛들과 함께 해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걸리버 여행기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며 그 시대의 정치계와 과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다양한 나라들이 나온다. 거인국과 소인국, 라퓨타와 말들의 나라. 걸리버는 4개의 나라를 여행한 후 원래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순에 괴로워한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아마 어린 시절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분은 라퓨타와 말들의 나라 휴이넘에 대해서 잘 모를 수 있다. 동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사회 풍자적인 3,4장의 내용이 삭제되었다. 이전에는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삭제되기도 하였다.)